이수만 전 매니저 '신현빈' ,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이야기
입력: 2016.01.04 10:14 / 수정: 2016.01.04 10:14

트로트 가수 조정민과 신현빈 회장./루체엔터테인먼트 제공
트로트 가수 조정민과 신현빈 회장./루체엔터테인먼트 제공

루체엔터테인먼트 회장 신현빈, 트로트 가수 조정민 매니저로 거듭나기까지…

[더팩트ㅣ김지현 기자] 대한민국 가요계의 최고 거물인 이수만 SM 회장은 원래 가수였다. 그의 매니저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인물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신현빈 회장이다. '서태지와아이들'의 데뷔 초기 방송매니저로 활동하며 일선매니저로20세기의 마지막을 풍미했던 그는 현재 트로트계의 새 요정이라 불리는 조정민을 발굴해 매니저로서 제 2의 인생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이수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식의 사회를 봐준 것은 바로 1990년 신 회장의 결혼식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열애 끝에 결혼을 결심하고 예비 장인을 만난 신 회장은 단칼에 거절 당했다. 국세청 고위 공무원 출신의 예비 장인은 이화여대를 나온 자신의 딸을 가수 매니저에게 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처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수만은 가요 프로듀서가 얼마나 멋있고 위대하며 유망한 직업인지 하객들에게 역설했고, 그 ‘연설’은 처가 식구들의 가요 매니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주효했다.

신 회장은 자신을 ‘한국 가요계 최초의 PD(Producing Director, 기획자) EP(Executive Producer, 제작자) RD(Road Manager, 현장 매니저) 겸업자’라고 부른다.

1985년 개그맨 출신 음반제작자 장고웅의 신촌뮤직으로 들어가 이수만과 최혜영의 매니저로 출발해 김수희의 매니저로 적을 옮긴 그는 이내 독립한다. 그 첫 작품은 김동환이었다. 1980년대 서울의 신촌에 블루스 록 포크 등을 하는 뮤지션들이 모였다면 방배동엔 작곡가 김지환을 중심으로 한 발라드 뮤지션과 그 외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모였다. 어느 날 방배동의 한 유흥업소에 간 신 회장은 거기서 악사로 일하던 김동환을 만났다.

당시 김동환은 낮에는 들국화의 최구희와 함께 밴드를 구성하고 콘서트 무대에 올랐으나 생계 문제로 밤에는 악사로서 밤무대에 섰던 것. 한눈에 김동환을 알아본 그는 즉시로 계약을 맺고 솔로 데뷔앨범 제작에 착수했다. 전 재산을 탈탈 터니 2000만 원이었다. 일단 ‘남행열차’의 작곡자 김진룡에게 작곡을 의뢰하고 제작에 들어갔지만 제작비 및 PR비가 부족하자 겁도 없이 ‘조폭’에게 1500만 원을 빌렸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묻어버린 아픔’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 음반은 40만 장 넘게 팔렸다.

당시 MBC 라디오 음악 PD들 사이에 그는 ‘청진동 해장국’으로 불렸다. 거의 매일 여의도 MBC 사옥에서 먹고 자다시피 했던 그는 새벽이면 승용차를 몰고 종로 청진동으로 달려가 당시 유명한 해장국집이었던 ‘청진동 해장국’의 해장국을 테이크아웃해 일찍 출근한 PD들에게 돌려 감동을 샀던 것.

그의 해장국 서비스는 후에 여러 매니저에게 전수(?)돼 ‘어머나’의 작곡자 윤명선이 박진영의 초기 매니저 시절 건강음료 경옥고를 들고 다녀 PD들이 그의 이름은 몰라도 경옥고로 기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집을 끝으로 김동환과 결별한 신 회장은 1989년 여의도 별관 뒤 동북빌딩 1층에서 운명적으로 이승철과 만나게 된다. 당시 이승철은 김태원과 함께 부활로 지구레코드에 전속돼 있었다. 신 회장은 친분이 있던 지구레코드 임정수 회장을 만나 이승철을 달라고 했고, 임 회장은 부활이 받아간 ‘마이킹’(선수금) 1500만 원에 부활과의 계약을 해지해줬다. 신 회장은 이승철과 전속계약을 맺는 대신 김태원은 도레미레코드에 소개해 ‘마지막 승부’의 탄생에 기여한다.

이승철의 성공은 국내 음반업계의 두 거물의 한숨을 자아낸다. 이승철을 내준 지구레코드 임 회장과 더불어 서태지와아이들의 음반으로 유명한 반도음반의 최삼랑 사장이다. 이렇게 성공한 신 회장은 곧바로 이듬해인 1990년 직접 음반 제작 유통사 동양레코드를 차리고 이후 7년간 승승장구한다. 그는 특히 소니뮤직 EME BMG 워너뮤직 폴리그램 등 당시 한국시장에 직접배급사로 들어온 다국적 레이블과의 직교류로 세계 음악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큰 공부를 한다. 그리고 이승철에 이어 ‘비의 이별’을 타이틀곡으로 한 박광현의 음반을 내고 40만 장 이상 판매하며 그를 스타덤에 올린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여파는 음반업계에도 엄청난 한파를 몰고 와 10개 이상의 음반 제작사 및 유통사들이 부도로 문을 닫았고, 다수의 소매점마저 빚을 떠안고 속속 문을 닫는 바람에 동양레코드는 쏟아져 들어오는 어음을 결제하지 못하고 결국 폐업하게 된다.

2012년 3월 연예계로 복귀한 그는 인맥관계를 활용하려 했지만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인심도 많이 사나워진 것을 통감했다. 이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팬엔터테인먼트의 박동아 회장이다. 그렇게 신 회장은 신사동호랭이를 만나 EXID를 데뷔시킨다. 또 다소니까지 제작하지만 이내 신사동호랭이에게 모두 넘기고 13억 원을 들여 혼자서 중국인 1명이 낀 7인조 보이그룹 엠파이어를 출범시킨다.

반응이 좋았지만 한꺼번에 3명이 군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눈물로 팀을 해체해야만 했다. 끝이 안 보였다. 세상이 변했나, 자신의 실력 혹은 운이 다했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낙담해 허송세월하던 지난해 여름이었다. 경북 안동의 지인의 장례식장에 조문하기 위해 승용차를 운전하고 고속도로에 막 접어들었을 때 가수 설운도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트로트 한 번 안 해볼래?”라는 내용이었다.

유일하게 김수희라는 트로트 가수의 매니저를 해본 적은 있지만 직접 트로트 음반을 프로듀싱해본 적은 없는 신 회장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경기도의 한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방향을 서울로 꺾었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조정민을 만났다.

30년 전으로 시간을 돌린 신 회장은 로드매니저가 돼 방송국부터 모든 스케줄에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차근차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여름 MBC ‘라디오스타’의 ‘쎄시봉 특집’ 무대에 조정민을 세울 수 있었고, 그녀는 이를 계기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서게 된다. ‘라디오스타’에 이어 KBS2 ‘불후의 명곡’을 통해 확실하게 스타덤에 진입했다는 것을 확인한 조정민은 최근 MBC ‘복면가왕’을 통해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조정민이 신 회장을 만나 잘됐듯, 신 회장 역시 조정민을 복덩이로 여긴다. 그녀를 만난 이후 루체가 예전의 동양레코드 못지않게 나날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엔 조정민 외에도 여성 힙합 트리오 립서비스, ‘히든 싱어’ 우승자 3명을 모은 발라드 트리오 더히든, 레이디가가의 투어에 비트박서로 자주 올랐던 힙합뮤지션 한요한 등의 ‘비밀병기’가 포진돼있다. 립서비스는 얼마 전 도쿄에서 단독 프로모션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그는 1년 365일 중 340일 정도 정장을 고수한다고 한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사전에 일찍 준비해 넥타이와 커프스버튼을 꼭 챙긴 격식을 차리는 데 소홀함이 없다. 그 이유는 매니저란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심 때문이다.

그의 목표지점은 아직 멀었다. 그러나 기준은 있다. ‘모두 즐겁자’는 게 모토다. 매니저도 연예인도 대중도 동시에 함께 즐겁고 행복해지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것, 의외로 간단하다. 하지만 쉽진 않아서 그것이 목표라고 한다.

kjh1222@tf.co.kr

사진= 루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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