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열정같은' 정재영 "열정까지 없으면 살 맛 나겠어요?"
입력: 2015.12.03 05:00 / 수정: 2015.12.02 07:47

정재영의 열정학개론. 배우 정재영이 열정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이새롬 기자
정재영의 열정학개론. 배우 정재영이 열정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이새롬 기자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정재영 "사랑해야 열정도 생기지"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배우 정재영(45)은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에서 일명 '영혼 탈곡기'로 불리는 시한폭탄 상사 하재관 부장기자 역을 연기한다.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는 게 조금 과장됐지만 불편한 상사이자 전형적인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겉으로 보기엔 배우는 매일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빡빡한 회사 생활, 보수적인 성향의 기자 사회 내 부장의 삶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렇지만 스크린을 떠나 배우 정재영에게도 그가 몸담은 조직에서 선배이자 후배로, 그리고 사회에선 40대 중반의 기성세대로서 하재관, 더 나아가 우리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배우도 기자나 다른 직장인처럼 똑같은 애환이 있어요. 일을 하다 보면 소신과 충돌하는 부분이 생기거든요. 지금이야 경제적인 문제는 없지만 예전에는 시나리오나 캐릭터를 떠나서 출연만 하게 해주면 무조건 하고 봤죠. 돈도 필요하고 경험을 많이 쌓아야 했으니까요. 하고 싶은 소신이고 나발이고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했죠. 지금도 뭐 시켜만 주면 하는 건 비슷해요(웃음). 그래도 요즘엔 제 비중이 크니까 이야기나 캐릭터가 마음에 들고 와 닿아야죠. 그래야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정재영 세대 차이. 정재영은 배우 세계의 중간층에서 선배와 후배 사이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다. /이새롬 기자
정재영 세대 차이. 정재영은 배우 세계의 중간층에서 선배와 후배 사이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다. /이새롬 기자

또 연기자들은 세대가 넓잖아요. 현장에 나가면 70대 고참 선배들도 있으니까 저는 중간 계층이라고 말하고 싶은데(웃음). 선배들한테는 예의 있게 행동해야 하고 신세대 후배들에겐 젊게 다가가야 하니 그런 부분도 애환이죠. 제가 보영이 연차일 땐 정신 없었죠. 주변이 다 선배니까 맞추고 배우느라고 긴장했어요. 저와 보영이 경력이 딱 20년 차이에요. 안성기 선배와 제가 20년 차이거든요? 안성기 선배가 엄청 어려운 대선배로 느껴지는데 저는 보영이와 거리가 가깝다고 느껴져요. 바꿔놓고 보면 보영이도 제가 얼마나 어렵게 느껴지겠어요."

정재영은 '현실적인 연기' 전문 배우답게 실감 나는 상사 하재관을 만든다. 그런데 연기는 연기일 뿐인가 보다. 정재영은 회사원이라는 단어만 듣고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진작에 관뒀을 걸요. 전 직장생활이나 조직과 맞지 않는 사람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사람이 모여 있는 자체가 힘들었어요. 저녁형 인간이어서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도 힘들 거고요. 굳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계속 일을 시키면서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는 실없는 상사가 돼 있을 것 같네요."

정재영, 은어 때문에 놀림 받아. 정재영이 젊은이들 사이에 사용되는 은어를 잘못 해석했다가 놀림을 받았다. /이새롬 기자
정재영, 은어 때문에 놀림 받아. 정재영이 젊은이들 사이에 사용되는 은어를 잘못 해석했다가 놀림을 받았다. /이새롬 기자

조금 썰렁한 농담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보니 '상사 정재영'이 저절로 상상 속에 그려졌다. 이토록 유쾌한 그에게도 기성세대에 접어들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기성세대라고 느껴질 때요?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면서 지루할 때? '겨울왕국'은 재밌었지만요(웃음). 랩을 못 알아듣지만 이해하려고 할 때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문화적인 차이를 느낄 때죠. 아는 척 흉내 냈다가 틀렸던 적도 있죠. 최근엔 메신저 '프사'(프로필 사진)란 단어를 듣고 '뭘 퍼?'라고 물어봤어요. '단톡방'을 '단카방'으로 잘못 말해서 놀림도 당했죠.

가치관으로는 과거에 소신이 더 강했다면 지금은 경험이 많아지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이런 사람이 좋고 싫다는 건 의미 없어요. 벽이 허물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나쁜 소신, 고집이 줄어든 거죠. 좋은 소신은 남아 있도록 해야 되는데 없어져서 문제죠. 불의를 봤을 때 피하고, 용기가 없어진다고 할까요. 배우니까 더욱 그런 문제에 나서지 못하겠더라고요. 직업적인 특성만 아니더라도 정의감이 조금 덜 사라졌을까요."

정재영 버럭한 사연. 정재영이 인터뷰 도중 하재관 부장으로 돌아가 버럭 연기를 시연했다. /이새롬 기자
정재영 '버럭'한 사연. 정재영이 인터뷰 도중 하재관 부장으로 돌아가 '버럭' 연기를 시연했다. /이새롬 기자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영화 제목과는 모순되지만 정재영은 인터뷰 내내 '그래도 열정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정페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요즘, 어른으로서 청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가득했다. 힘든 청년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열정, '기승전열정'이었다.

"요즘 너무 상향 평준화되지 않았어요? 다들 공부도 잘하고 스펙도 좋아서 누구나 사장님이 될 것 같은데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상황이 딱하고 안쓰러워요. 어렸을 땐 대학 가려고 공부하고, 대학 가면 취직하려고 공부한다는 게 참.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공부만 하다 죽으라는 건지. 첩첩산중이에요. 스펙보다 열정이 더 중요하죠. 열정까지 없으면 살 맛이 안 나잖아요. 사고사보다 자살이 더 많은 나라라니. 사회를 이렇게 만든 기성세대들이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죠.

열정은 곧 사랑이죠. 사랑해야 열정이 생기는 거니까요. 만약 열정이 없어지려고 해서 힘들다면 '왜 내가 이걸 시작했나' 처음을 생각하면 돼요. 그래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면 진짜 아닌 거겠죠."

정재영, 아니 하재관 부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번 인터뷰의 '야마'(주제)를 뽑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을 들은 지 3초 만에 넉살 좋은 정재영은 사라지고 '버럭 선생' 하재관 부장의 다그침이 떨어졌다.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열정만 있으면 다 생각나지. 고민하면 기가 막힌 제목이 나올 거야. 어디서 쉽게 가려고 하나?(웃음)'. 사실 저도 몰라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알면 기자 하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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