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침묵의 시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후 공개한 '침묵의 시선'은 인도 대학살 후 남겨진 생존자에 대해 이야기한다./엣나인필름 제공 |
'침묵의 시선', '어짜피 가슴만 아플 뿐인데 무엇 때문에 묻어둔 기억을 들춰내는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영화 '침묵의 시선'을 통해 그 어떤 누구도 과거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바로 침묵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만든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배급 엣나인필름)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시네필상을 수상한 '액트 오브 킬링'의 후속 시리즈. 유수 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된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 5관왕, 전 세계 37개 영화상을 휩쓸며 관심을 받았다.
우연한 계기로 인도에서 일어난 대학살 사건에 관심을 갖게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한국을 찾아 '침묵의 시선'기자간담회와 GV를 진행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엣나인필름 제공 |
일찍이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인도의 역사에 관심을 뒀던 오펜하이머 감독은 두 작품을 통해 군부독재 시절, 1965년 인도에서 일어난 대학살 사건을 조명한다. 오펜하이머의 카메라는 문서로 기록된 사건이 아닌 날것의 진실을 여과 없이 담아내는데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침묵의 시선'은 대학살 이후 살아남은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의 만남을 그렸다.
영화 속 중심인물은 안경사 아디. 아디가 친형 람리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알고자 가해자를 만나러 다니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람리는 인도 대학살 당시 잔인하게 살해된 인문이다. 비밀리에 사라졌던 100만 명의 희생자 중 유일하게 죽음을 목격당했다. 감독은 '액트 오브 킬링'을 만들던 중 람리를 죽인 가해자들의 무용담을 통해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회고한다.
'침묵의 시선'은 자칫 피해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다큐멘터리를 지양한다. 이때문에 아디와 가해자들의 또 다른 히스토리를 무심한 시선으로 기록할 뿐이다.
람리의 친동생 아디. 람리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파헤치고자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촬영한 가해자 관련 영상을 보고있는 람리의 친동생 아디. /엣나인필름 제공 |
아디는 자신의 형을 죽인 살인자들을 만나기 전 오펜하이머 감독이 촬영한 영상을 홀로 시청한다. 해당 영상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오펜하이머 감독이 북 수마트라 시골부터 도시를 오가며 촬영한 가해자들의 실제 모습이다. 그들은 람리를 살해한 과정에 대해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과거는 대학살이 아닌 '혁명의 시대'요, 그들이 죽인 희생자는 피해자가 아닌 공산당원이기 때문이다. 아디가 직접 가해자들을 만나 "당신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할 때도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영화는 대학살 이후 피해자들이 50년 동안 공포와 침묵 속에 살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오롯이 보여준다. 대학살로 무고하게 희생된 100만 명의 일반인은 여전히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로 여겨지는 왜곡된 진실이 그러하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침묵의 시선'에 대해 '공포 속의 침묵에 대한 한 편의 시'라고 표현했는데 그 시를 통해 침묵을 깨야 하는 필요성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침묵이 깨졌을 때 드러나는 고통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동시에 침묵하고 나아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는 것을 멈추고 그 파괴된 삶이 가져오는 침묵에 안간힘을 쓰고 귀 기울일 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한 '침묵의 시선'. 어머니 로하니가 피망을 자르며 죽은 아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
'어머니는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사셨어요' 람리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에 관해 8번째 아들 아디에게 이야기하고 있다./엣나인필름 제공 |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다채롭고 선명한 풍광을 담아냈다. 잔인하게 죽은 람리의 어머니 로하니가 노란 피망을 자르며 아들의 죽음을 곱씹는 장면은 오랜 잔상을 남길 만큼 강렬하다. 아들의 죽음 이후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평생을 산 아버지 루쿤이 부르는 '섹시섹시 섹시한 여자'의 의미없는 공허한 가사도 마찬가지다.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 비밀리에 상영된 것과 다르게 지난해 인도에서 개봉한 '침묵의 시선'은 그해 11월 10일,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와 자카르타 예술 협회의 초청을 받아 현지에서 가장 큰 상영관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자카르타 시내에는 영화를 홍보하는 배너가 걸렸으며 첫 상영회엔 수용 관객 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영화 속 주인공 아디는 현지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기인물이 됐다.
'그저 지난 일일 뿐이야.' 대학살 당시 람리를 잔인하게 죽인 가해자에게 안경을 맞춰주는 아디./엣나인필름 제공 |
이는 침묵을 깨뜨리고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그저 '긁어 부스럼'이 아닌 그만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아픈 상처를 또 한번 언급해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치유의 의미임을 알게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침묵의 시선'으로 일관하는 것이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과거의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 아디가 맞춰준 안경을 끼고 더 자세히, 그리고 주의깊게 침묵하는 시선들을 바라봐야한다. 9월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3분.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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