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의 펜질팬질] '이준기 너나 가져'라던 친구들, 보고 있나?
입력: 2015.07.10 08:21 / 수정: 2015.07.17 00:34

MBC 수목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배우 이준기. 그는 이 작품에서 뱀파이어 선비 김성열 역을 맡았다. /문병희 기자
MBC 수목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배우 이준기. 그는 이 작품에서 뱀파이어 선비 김성열 역을 맡았다. /문병희 기자

'밤선비'에서 또 한 번 입증된 배우 이준기 저력

# 2005년 12월 어느 날.

"난 요즘 XX가 좋더라."

"그래? 난 요즘 이준기."

"이준기가 누군데?"

"영화 '왕의 남자' 찍고 있는 배우야. 곧 '마이걸'에도 나와."

"너 가져."

"이준기 진짜 뜬다. 너 그때 가서 다른 말 하지 마."

"다른 말 안 하거든. 너나 가지세요."

드라마 마이걸 스틸. 이준기(오른쪽)는 마이걸로 인지도를 얻었다. /SBS 제공
드라마 '마이걸' 스틸. 이준기(오른쪽)는 '마이걸'로 인지도를 얻었다. /SBS 제공

어쩌면 당연하게도 "너나 가지라"던 저 친구는 몇 달 뒤 다른 말을 했다. '마이걸'을 본 뒤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며 이준기를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물론 이준기가 내 것도 아니고 내가 준다고 그 친구가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제 와서 말 바꾸고 난리"라며 타박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랬다.

이준기라는 배우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연극 '이' 덕분이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대본을 본 뒤 흥미를 느꼈고, 마침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기에 찾아가서 공연을 봤다. 이후 '이'에 푹 빠졌다.

그런 '이'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인공 공길 역에는 이준기가 캐스팅됐다고 했다. '왕의 남자'에 관심을 두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이준기의 사진이 돌았고 다들 '얼굴은 딱'이라고 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연기도 딱이었다. 필모그래피에 있던 영화 '호텔 비너스'와 '발레 교습소'는 그에 대한 호감을 더 올렸다. 이준기는 시쳇말로 '취향 저격 에이스'였다.

덕분에 미녀가 좋아한다는 석류 음료도 열심히 마시고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진 못했던 '플라이 대디'나 '첫눈'도 봤다. '왕의 남자'는 극장에서만 7번을 봤다.

이준기는 영화 왕의 남자로 예쁜 남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공길은 이준기의 아름다운 외모를 돋보이게 한 캐릭터였다. /영화 왕의 남자 스틸
이준기는 영화 '왕의 남자'로 '예쁜 남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공길은 이준기의 아름다운 외모를 돋보이게 한 캐릭터였다. /영화 '왕의 남자' 스틸

물론 이준기가 좋아서인 건 맞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가 선택하는 작품이 기호에 맞았다는 게 더 맞는 해석일 것 같다. '발레교습소'는 이준기가 나온다는 걸 인식하지 못 했을 때도 두, 세 번 봤던 작품이고, 사극을 좋아해 '일지매'부터 '아랑 사또전' '조선총잡이'까지 유난히 사극에서 강세를 보였던 이준기를 더 눈여겨볼 수 있었다.

때문에 '밤을 걷는 선비' 역시 고민의 여지없이 '본방 사수'를 결정했다. TV보는 게 일 가운데 하나다 보니 쉴 때는 되도록 TV를 켜지 않는데, '밤을 걷는 선비'는 첫 방송 몇 달 전부터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이준기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밤을 걷는 선비'에서 흡혈귀 김성열로 분한 그는 잘못하면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적나라한 송곳니 분장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 강한 연기를 펼쳤다. '투윅스' '조선총잡이' 등에서 봤던 능숙한 액션 연기나 '왕의 남자'에서 유난히 강조된 예쁜 얼굴까지 배우 이준기가 가진 특징들이 극에 두루 녹아났다.

밤을 걷는 선비 이준기 출연 장면. 그는 평범한 선비에서 흡혈귀가 돼 살아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MBC 방송 화면 캡처
'밤을 걷는 선비' 이준기 출연 장면. 그는 평범한 선비에서 흡혈귀가 돼 살아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MBC 방송 화면 캡처

기자인 저도 신기해서 자꾸 쳐다봤어요. 지난 7일 밤을 걷는 선비 제작 발표회가 열린 MBC신사옥 앞에는 이준기의 팬들이 보낸 화환이 가득했다. 관계자들이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입을 모았을 정도로 배우 이준기의 저력이 느껴졌다. /정진영 기자
"기자인 저도 신기해서 자꾸 쳐다봤어요." 지난 7일 '밤을 걷는 선비' 제작 발표회가 열린 MBC신사옥 앞에는 이준기의 팬들이 보낸 화환이 가득했다. 관계자들이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입을 모았을 정도로 배우 이준기의 저력이 느껴졌다. /정진영 기자

더 놀라운 건 '왕의 남자' 때는 '어떻게 남자가 저렇게 생길 수 있지'라는 생각만 들었던 선 고운 얼굴이 '밤을 걷는 선비'에서는 그다지 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그런 얼굴에만 시선이 가지 않는 건 아마 지난 10년간 이준기가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장점을 살리되 그런 장점이 지나치게 튀어 극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내공이 발휘된 것이다. 실제 데뷔 초창기에는 '이준기=머리발'이라는 공식이 알게 모르게 퍼져 작품에서 그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오는지에 지나치게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왕의 남자' 이준기의 시작은 강렬했다. 많은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고 빠른 시간에 두터운 마니아층이 형성됨과 동시에 안티도 많았다. 영화 '플라이 대디'가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 했을 때 '거 봐, 쟤 금방 거품 꺼질 줄 알았어'라고 고소해했던 사람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흥행 실패는 오히려 그를 스타가 아닌 배우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후 '개와 늑대의 시간' '화려한 휴가' '투윅스' '첫눈' 등에 출연하며 군대에 가 있던 2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대중과 만났다. 액션과 연기력이 모두 뒷받침 돼야 성공할 수 있는 작품들을 흔쾌히 선택했고 늘 기대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다.

물론 여전히 이준기의 외모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으면 왜 제작진이나 시청자가 그를 꾸준히 선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외모와 연기력, 작품에 임하는 태도까지 삼박자가 모두 맞아 들어가야 걸을 수 있는 길을 배우 이준기는 지금도 꿋꿋하게 걷고 있다.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afreec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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