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의 펜질팬질] '데스노트'에 쓴 김준수란 이름 석 자
입력: 2015.07.03 09:31 / 수정: 2015.07.03 15:41

뮤지컬계 티켓 파워라 불리는 김준수. 그는 데스노트에서 주인공 엘 역을 맡았다. /씨제스컬쳐 제공
'뮤지컬계 티켓 파워'라 불리는 김준수. 그는 '데스노트'에서 주인공 엘 역을 맡았다. /씨제스컬쳐 제공

김준수, 아이돌 아닌 뮤지컬 배우로 불리기 충분하다

그는 등장부터 소름끼쳤다. 음성변조를 한 것인지 원래 자신의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귀를 잡아 끄는 목소리가 들렸다. 실루엣에 가려진 그가 마침내 무대에 등장했을 때 충격은 상당했다. 뮤지컬 '데스노트'에 출연하고 있는 JYJ 멤버, 아니 뮤지컬 배우 김준수 이야기다.

김준수는 아이돌 가수다. 적어도 10년 이상 그랬다. 2015년 7월 현재도 그는 JYJ라는 아이돌 그룹의 일원이다. 때문에 지난 2011년 뮤지컬 '천국의 눈물'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를 향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필자는 김준수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았을 때 부른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오브 올'도 좋았고, 데뷔 후 목소리도 좋았다. 얼핏 여자인 것도 같은 김준수의 목소리엔 묘한 매력이 있다.

김준수는 뮤지컬 배우이기 이전에 아이돌 가수다. 그는 JYJ라는 그룹의 일원이다. /김슬기 기자
김준수는 뮤지컬 배우이기 이전에 아이돌 가수다. 그는 JYJ라는 그룹의 일원이다. /김슬기 기자

하지만 그가 뮤지컬에 출연한다고 했을 땐 반신반의했다. 노래 실력이야 단연 아이돌 그룹 멤버들 가운데 톱클래스에 속한다고 생각했지만 뮤지컬 발성에 맞을까는 의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김준수는 이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뮤지컬 '모차르트'와 '엘리자벳' '디셈버' '드라큘라' 등에 연이어 출연했다. JYJ 앨범 준비와 공연, 솔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서도 매년 한 편씩은 무대에 오른 셈이다.

마침내 지난달 '데스노트'가 막을 올렸다. 뮤지컬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하게 원캐스트를 선택했다. 지쳐서 쓰러질 수도, 성대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데도 원캐스트를 선택한다는 건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아이돌 JYJ가 아닌 뮤지컬 배우 김준수가.

며칠 전 '데스노트'가 공연되고 있는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 뮤지컬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영국에서도 인정받은 배우 홍광호와 사신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연기하는 강홍석, 박혜나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한참 극에 빠져들고 있을 때쯤 김준수가 등장했다. 그가 맡은 역은 세계적인 천재 수사관 엘. 얼굴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리고 김준수의 중성적이고 개성 있는 목소리는 엘과 환상적인 궁합을 이뤘다. 너무도 엘 같아서 처음엔 그가 김준수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 했을 정도였다. 그때 생각했다. 뮤지컬 배우의 자질이 오로지 뮤지컬 발성에 있는 건 아니라고.

데스노트의 엘로 분장한 김준수. 엘은 단 것을 좋아하는 피곤한 얼굴의 소유자다. /김준수 트위터
'데스노트'의 엘로 분장한 김준수. 엘은 단 것을 좋아하는 피곤한 얼굴의 소유자다. /김준수 트위터

엘은 사실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라이토 류크 렘 마사 등 '데스노트'의 여러 캐릭터들 가운데서도 엘은 유독 특성이 많다. 칠흑 같은 머리 색이나 다크서클이 내려온 피곤한 얼굴, 달콤한 것에 대한 집착, 다리를 벌리고 앉는 독특한 자세까지. 이런 엘의 개성을 그대로 따라하면 자칫 연기가 아닌 코스프레처럼 보일 공산이 크다.

김준수의 엘에게서는 코스프레가 아닌 연기를 해야겠단 고뇌가 느껴졌다. 그의 머리색은 원작의 검은색이 아닌 옅은 갈색이었고, 목소리는 더 강했다. 다소 유약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엘의 겉모습 대신 그의 강한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는 뮤지컬 '데스노트'를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영화와 확실히 차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몸이 흔들리는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발성이나 깔끔하지 않은 발음, 소리 크기 등이 보완되면 더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작은 아쉬움일 뿐, 전문 연기자가 아님에도 캐릭터에 몰입해 펼치는 연기와 섬세한 표현력, 그가 아니라면 만들어내기 힘들었을 환상적인 분위기는 왜 김준수가 '뮤지컬계의 티켓 파워'라 불리는지 실감케 했다.

김준수는 지난달 열린 '데스노트' 쇼케이스에서 전석 매진의 공을 다른 출연진에게 돌렸다. 이렇듯 겸손하기까지 한 그이기에 배우로서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것은 아닐까. 김준수가 출연할 다음 뮤지컬도 무조건 예매해야겠다.

"아, 그런데 팬도 구하기 힘들다는 김준수 뮤지컬 티켓은 어떻게 사야 하죠. 돈을 내겠다는데 티켓을 살 수가 없네."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afreeca@tf.co.kr]
[연예팀ㅣ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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