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탐사-연예인 건물주는 괴로워②] '을' 대표 "'갑'이여 상생합시다"
입력: 2015.05.22 10:03 / 수정: 2015.05.22 10:03

리쌍이 낸 명도소송에서 진 우장창창 서윤수 사장. 그는 합의안을 받아들여 기존 위치의 바로 옆 주차장 구역으로 벗어난 자리에서 상호명 그대로 막창집을 열고 있다. /남윤호 기자
리쌍이 낸 명도소송에서 진 '우장창창' 서윤수 사장. 그는 합의안을 받아들여 기존 위치의 바로 옆 주차장 구역으로 벗어난 자리에서 상호명 그대로 막창집을 열고 있다. /남윤호 기자

"건물주에겐 섭섭한 마음, 실질적으로 법이 문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은 몇 년 전부터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다 . 한창 '가로수길 붐'이 일었던 2013년, 목이 좋은 신사동 536-6번지는 또 다른 의미로 뜨거웠다. 가수 리쌍이 건물주가 되면서 1층에 있는 막창집과 자리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2013년 5월, 이곳은 건물주 대 세입자 '갑을 전쟁의 '핫 스팟'이었다.

리쌍과 맞서고 있는 이는 이 건물 1층에서 막창집을 운영하는 서윤수 사장이다. 그는 리쌍과 명도소송에서 진 뒤 합의안을 받아들여 기존 위치에서 옆 주차장 구역으로 벗어난 자리에서 상호명 그대로 막창집을 열고 있다. 그가 2010년부터 가게를 열었던 자리에는 리쌍의 포장마차가 들어서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상가세입자 보호단체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그를 14일 만났다. 공교롭게 그와 인터뷰하기 직전 리쌍의 개리가 자신의 포장마차 건물에 나타났다. '갑'과 '을'이 공존하는 모양새이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있다. '을' 대표 격으로 마주한 서윤수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2010년 우장창창을 오픈한 서 씨는 건물주가 리쌍으로 바뀐 뒤 세입자의 권리를 적극 주장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2010년 '우장창창'을 오픈한 서 씨는 건물주가 리쌍으로 바뀐 뒤 세입자의 권리를 적극 주장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공 들인 가게, 건물주 마음대로 나가라고 하다니"

-2010년 11월, 이곳(지금은 리쌍의 포차센터가 있는)에 가게 계약을 하셨죠?

"4억 원 넘게 공을 들였어요. 평범한 회사를 다니다가 보증금 4000만 원에 월세 300만 원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죠. '5년 이상 이 자리에서 장사하는 것'이 (전 건물주와) 구두상 계약 조건이었어요. 그런데 1년 반 뒤인 2012년 5월, 건물주가 바뀌었죠. 그땐 몰랐는데 알고 보니 리쌍이었더라고요. 건물주가 리쌍이라는 건 저한텐 별 상관없었어요. 우선은 가게를 지켜야 했고 제겐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건물주로 온 리쌍이 재건축 할 거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이해는 돼요. 본인들이 비싼 돈 들여 산 건물이니 재건축 하거나 임차인들을 나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저희는요? (전 건물주에게라도) 비싼 권리금 준 것도 있고, 공 들여서 단골을 만들고, 무엇보다 온 힘을 쏟아 가게를 차리고 겨우 1년 반을 운영했잖아요. 실질적으로 수익을 이제 걷어야 하는데 다른 곳으로 가 다시 시작하라 하니 막막했죠."

-'갑'은 단순히 재건축 때문에 나가라고 한 건가요?

"그래서 저희가 먼저 얘기했어요. (리쌍이) 재건축해서 새로운 사람한테 세를 줄 바엔 제가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누구보다 이 동네에서 잘할 자신이 있으니 우리가 있게 해 달라고요. 저희 장사가 잘 되면 임대료도 올려 주겠다고 했죠. 건물주에게도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리쌍 본인들이 제 자리에 가게를 둘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그때부터 양측 갈등이 폭발한 건가요?

"이전까지는 리쌍이 건물주로서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게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임대료를 올리는 대로 줄 생각이었고요. 그런데 제 자리에 그들이 다른 가게를 열려고 했다 하니 화가 나더라고요. 왜냐면 리쌍도 저희처럼 건물주 때문에 차려놓은 막창집을 뺀 적이 있거든요. 우리 처지와 같았던 이들이 '갑'으로서 횡포를 부리니 뭔가 싶었죠. 그들도 그 가게를 빼며 권리금 4억 정도를 날렸을 거예요."

-'을'의 처지였던 리쌍이 지금으로선 '갑'이 된 건가요?

"저희 '맘상모' 회원 중에 '라떼킹' 사건 주인공이 있어요. 이 가게 옆집이 바로 리쌍이 운영하는 막창집이었죠. 그래서 화가 나요. 본인들도 직접 겪은 문제잖아요, 이런 임대차법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걸요. 하지만 '아 이렇게 내가 약자인 상황이면 빼앗길 수 있구나. 그러면 나는 돈이 있으니 건물주가 돼서 이 위기를 나가겠다' 이런 것 아닌가요. 건물주보다는 법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바꿀 생각없이 빠진 걸로 보여요."

갑 리쌍과 을 서윤수 사장의 가게(왼쪽)가 나란히 운영되고 있다. /남윤호 기자
'갑' 리쌍과 '을' 서윤수 사장의 가게(왼쪽)가 나란히 운영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상가법이 큰 문제를 안고 있어"

-그럼 지금 상황은요?

"사실 다른 임차인들은 저한테 리쌍처럼 합의금도 제시하는 좋은 임대인을 만났다고 해요. 그런데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제가 그들이 건넨 합의금을 받고 근처에 또 가게를 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거예요. 근처 가게들도 바뀐 건물주가 나가라고 해서 다른 곳에 자리를 얻었다가 수차례 옮겨 다니는 일이 많거든요. 결과적으로 이건 건물주의 문제 이상으로 법이 잘못된 거죠."

-상가임대차 보호법요?

"보증금 규모에 관계 없이 모든 상가 건물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법 적용 범위가 넓어졌죠.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권 행사 기간도 보장됐고요. 쉽게 말하면 건물주에게 재산권과 소유권이 있다면 임차인에게는 영업권이 보장되는 거예요. 내 자리, 내 가게, 함부로 못 쫓아내는 법이요."

-'을'의 투쟁으로 이뤄 낸 결과네요?

"조선 시대에도 땅 주인에게 세를 걷을 권리는 있었지만 경작권은 실질적으로 일하는 농민들에게 있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 임대차 보호법은 어이없죠. 사람들 인식도 마찬가지예요. 소유권 개념이 워낙 크니까 "내 돈 주고 내 건물 샀는데 임차인 상황이 무슨 상관이냐" 하더라고요. 저희를 보는 시선이 안 좋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요, 항간에서는 '을의 갑질'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죠. 연예인이란 상대방 지위를 악용한다고요.

"'갑'이 연예인이라서 의도한 건 없지만 일단은 기본적으로 내 가게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내 인생을 쏟았으니 쉽게 포기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사회 운동가는 아니지만 불합리한 것들을 바꿔야 되지 않나 싶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갑'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법 자체가 문제였다고 봐요."

-그런 법이 지금 개정됐죠?

"12일 임시 국회가 열렸고 다음 날 바로 개정안이 발의됐어요. 이렇게 싸우니까 법이 바뀌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사회도 바뀌겠죠. 아직 갈 길은 멀어요. 임대인들이 악용할 구멍이 여전히 있거든요. 100% 만족할 정도로 법 조항이 개선된 건 아니지만 당장 임차인들한테 나가라고 할 순 없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요."

2013년 신사동 건물에 있던 우장창창(위)은 건물주 리쌍과 명도소송에서 져 옆 주차장 자리로 밀려났다. /이새롬 남윤호 기자
2013년 신사동 건물에 있던 '우장창창'(위)은 건물주 리쌍과 명도소송에서 져 옆 주차장 자리로 밀려났다. /이새롬 남윤호 기자

◆ "갑에게 바라는 점? 당연히 같이 살자는 것"

-'을'의 대표로서 어떤 세상을 꿈 꾸나요?

"이런 상가법이 2002년 이후 10년 만에 바뀌었고, 또 2년 만에 조금 변한 거잖아요. 처음에는 임차인 10%만 보호했는데 점점 비율도 늘어났고요. 하지만 여전히 저희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요. 사람들은 저희를 법대로 안 하는 '을'로 보잖아요. 그럴수록 우리의 이야기를 더 하려고요. 국회의원들은 주기적으로 바뀌겠지만 저희는 다음 국회를 바라보며 계속 싸우렵니다."

-지금 본인의 '갑'과 나란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입장 차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갑'이고 건물주고 임대인이었다면 세입자들을 내쫓을 수도 있었겠죠. 쫓겨나는 처지에선 억울할 것도 알고요. 그래서 그들을 무턱대고 원망하고 싶진 않아요. 섭섭한 건 많지만 실질적으로 바라는 건 같이 살자는 거예요. 법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였다면 달랐을 텐데, 악법 때문에 리쌍도 선의의 피해자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갑' 리쌍에게 바라는 게 그건가요?

"네, 상생요. 지금 이 가로수길이 번화한 건 상인들의 노력이 컸어요. 물론 건물주도 한몫했겠죠. 어찌 됐든 우리 장사가 잘 돼 상권이 좋아지고, 건물주에게 임대료 많이 챙겨 주면 다 같이 성장하는 셈이잖아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거죠. 사회가 가장 만만하게 보는 자영업자들의 힘을 보여드릴게요."

건물주 리쌍(왼쪽)과 세입자 서윤수 씨가 개정된 상가법으로 상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새롬 남윤호 기자
건물주 리쌍(왼쪽)과 세입자 서윤수 씨가 개정된 상가법으로 상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새롬 남윤호 기자

[더팩트 │ 박소영 기자 comet568@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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