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연예가클로즈업] '인사 논란' 빚은 영진위, 이번엔 '갑질 논란'
입력: 2015.05.12 06:00 / 수정: 2015.05.14 09:55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해 영화제 지도 점검 결과 등과 관련, 부산시의 외압논란이 불거진 뒤 영진위와 껄끄러운 상황이 분출됐다. /더팩트 DB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해 영화제 지도 점검 결과 등과 관련, 부산시의 외압논란이 불거진 뒤 영진위와 껄끄러운 상황이 분출됐다. /더팩트 DB

인사 논란 5개월 만에 불거진 영진위의 '갑질 논란'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의 연구위원을 지낸 인물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영진위 수장에 올랐다.

미국 UCLA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뒤 국내 한 대학에 몸담았다. 임명에 앞서 흘러나온 그의 내정 소식에 영화인들은 정통 영화 현장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대한다고 포기하면 영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문체부는 '영화타이틀 디자인, 애니메이션영화 제작 등 영상콘텐츠산업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인사를 밀어붙였다. 또 '한국 영화산업의 폭을 넓히고 영화가 창조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을 했지만 이는 천편일률적인 수사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범한 지 5개월째, 연초부터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인사문제로 뒤숭숭하던 영진위는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영화제 지원금 심사 및 삭감 등의 문제가 꼬였다. 영진위는 지난달 30일 홈페이지를 통해 2015년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공모 결과를 공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대폭 깎는 조치를 취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은 지난해 14억 5000만 원에서 무려 6억 5000만 원이나 줄었다. 거의 절반에 가깝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기존 2억 원의 지원 예산을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법정 다툼 등 골 깊은 갈등이 영화제 지원금 삭감 배경?

영화제 관계자와 영화계의 강력한 반발이 빗발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원금을 큰 폭으로 삭감하거나 끊어버린 배경에 여러가지 석연찮은 설들이 분분하다. 공교롭게도 이들 두 영화제가 그동안 영진위와 갈등을 겪어왔다는 점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지난해 영화제 지도 점검 결과 등과 관련 부산시의 외압논란이 불거진 뒤 영진위와 껄끄러운 상황이 분출됐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역시 영진위와 법정 다툼을 벌이는 등 골 깊은 감정 싸움을 한 공통점이 있다. 다만 영진위 측은 부산영화제 조직위와 부산시의 갈등 논란에 대해 영진위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영진위는 지난 1월 민원인의 임금체불 등을 이유로 각종 지원사업에서 청소년영화제를 배제시켰고 영화제 측은 "실질 임금을 줄 명분이 없는 민원인 2명에 대해 그들의 자격 조건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영진위가 일방적으로 임금 지불을 권고했다"고 맞섰다.

끝내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부산지방법원이 영진위의 청소년영화제에 대한 사업지원 배제 등의 집행을 정지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영진위는 국가보조금 자체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아니라고 응수했다. 결국 다음 달 다시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지만 영진위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 영화제는 말 그대로 을 중에서도 을이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국내 유일의 어린이, 청소년영화제이자 세계 3대 청소년영화제로 꼽힌다.  올해 지원금 2억원 전액이 삭감돼 존폐의 기로에 섰다. /더팩트 DB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국내 유일의 어린이, 청소년영화제이자 세계 3대 청소년영화제로 꼽힌다. 올해 지원금 2억원 전액이 삭감돼 존폐의 기로에 섰다. /더팩트 DB

◆영화제 존폐 위기, 만에 하나 보복성 갑질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동안 받던 15억 원 안팎의 지원금 중 올해처럼 지원 예산이 절반 가까이 대폭 삭감된 것은 처음이다. 감액 또는 지원배제의 근거로 영진위는 "2013년~2014년도 국제 영화제 평가 결과를 참고했다"고 밝혔지만, 이 기준으로만 보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경우 2013년도 평가 1위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글로벌국제영화제 지원사업은 국고지원에서 2011년부터 영화발전기금 지원, 2013년부터는 공모제로 전환, 이후 신규 지원영화제 지원 촉진과 특성화 영화제에 지원하는 방안이 추가됐다. 때문에 지원총액(35억) 대비 전체예산의 43%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지원돼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했다는게 영진위의 설명이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탄생 이후부터 현재까지 17년간 이끌어온 김종현 집행위원장은 "영진위가 투명성 없는 행정절차를 진행하고도 공정경쟁 특위라는 소위원회를 내세워 힘없는 쪽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과 다름 없다"고 전제한 뒤 "애초 행정 소송으로 맞선 것 자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억울함을 풀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영진위는 "청소년영화제를 올해 지원사업 심사대상에 포함하라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 결정에 따라 글로벌국제영화제 육성지원사업에 포함해 심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청소년영화제는 지난해 사업평가와 올해 사업계획 평가점수가 최소 기준점인 60점에 미달한데다 여러 분쟁으로 서울시와 성북구청의 지원에서 배제된 점이 심사결정에 참고가 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출범한 이래 전 세계 영화계가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했고,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국내 유일의 어린이, 청소년영화제이자 세계 3대 청소년영화제로 꼽힌다.

완전 삭감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개막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항간에서 '특정대학 출신 마피아'가 언급되는 가운데, 세계 무대로 한껏 발돋움한 의미있는 문화행사가 불필요한 다툼과 논란으로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만에 하나 보복성 갑질이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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