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영화인:生] 거장, 누가 그 이름에 돌을 얹나
입력: 2015.04.14 10:35 / 수정: 2015.04.14 16:00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 영화 감독 임권택(왼쪽)과 강제규가 지난 9일 동시에 신작 화장과 장수상회를 각각 개봉했다. /최진석 · 김슬기 기자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 영화 감독 임권택(왼쪽)과 강제규가 지난 9일 동시에 신작 '화장'과 '장수상회'를 각각 개봉했다. /최진석 · 김슬기 기자

거장이라는 이름에 영화를 가둬…영화를 평가하는 단순 잣대 아쉬움으로 남아

극장가는 외화로 뜨겁다. 올 1월부터 4월 현재까지 '대박' 흥행을 이끌어내지 못한 한국영화는 히트작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거장' 임권택(79) 강제규(53) 감독에게 관심이 쏠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영화계의 흐름을 보면 그 기대와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짐이 되는 모양새다. 영화의 메시지보다 '거장'이라는 이름값에 올인하는 홍보와 과한 기대 심리 조장이 오히려 영화에 독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영화를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두 감독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듯하다. 설령 그들을 알지 못하더라도 연출작을 듣는다면 '아! 그 영화'라며 무릎을 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서편재' '춘향뎐' 등을 포함한 102편의 영화,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휘날리며' 등은 개봉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회자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입봉해 1987년 '씨받이'로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또 '서편제'(1993)로 상하이 국제영화제 감독상, '취화선'(2002)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으로도 모자라 한국의 서정적인 감성과 특유의 색채를 담아내는 독보적인 존재로 한국 영화사와 함께 함께 살아왔다.

강제규 감독은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쉬리'(1998) '태극기 휘날리며'(2003)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쉬리'는 관객수 집계 방식이 상대적으로 부정확하던 당시에도 60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워 국민적 사랑을 받았으며 '태극기 휘날리며'로 당시 최고 흥행작인 '실미도'가 세운 1108만을 넘어 1174만을 기록했다. 이어 제50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최고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지난 9일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신작 화장 포스터./명필름 제공
지난 9일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신작 '화장' 포스터./명필름 제공

그런 두 사람이 같은 날인 지난 9일 오랜만에 컴백 작품을 내놓고 팬들을 만났다. 같은 날 개봉한 두 영화는 공교롭게도 두 감독이 꺼내 놓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임권택 감독은 '화장'(제작 명필름, 배급 리틀빅픽처스)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화장'은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많은 소설이라는 김훈 작가의 말처럼 인간 본성과 도덕적 관념 사이에서, 죽어가는 아내와 마음이 가는 젊은 여자 가운데서 고뇌하는 주인공 오상무(안성기 분)의 마음 안의 상(像)을 섬세하게 보여주며 삶과 사랑, 인간 본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개봉에 앞서 베니스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밴쿠버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영원한 현역'다운 면모를 입증했다. 노장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고 하지만 그를 보면 노장은 언제나 건재하다고 해야 할 듯하다.

'장수상회'(제작 빅픽쳐,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강제규 감독의 첫 번째 멜로 연출작으로 인생의 마지막,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순간에 불현듯 찾아온 사랑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해가는 성칠(박근형 분)과 금님(윤여정 분)의 70대 러브스토리와 이들의 연애를 곁에서 응원하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중년 배우의 묵직함과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노년의 로맨스를 그린 장수상회 강제규 감독(맨오른쪽)이 영화 마이웨이 이후 4년, 입봉 17년 만에 처음으로 멜로 영화를 연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년의 로맨스를 그린 '장수상회' 강제규 감독(맨오른쪽)이 영화 '마이웨이' 이후 4년, 입봉 17년 만에 처음으로 멜로 영화를 연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두 영화는 개봉과 함께 나란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결과 기준 박스오피스 2위와 4위에 올라 외화 강세 속에서 꾸준히 영화 팬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개봉 후 반응이 돌풍을 일으키지 못해서, 박스오피스 1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과 그들의 영화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 '거장'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신뢰감을 더했지만, 긍정적인 반응 이상으로 과한 기대감과 젊은층에게 '거장의 영화라니 뭔가 심오하고 어려울 것 같다'라는 식의 심적 부담을 안기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분위기보다 대단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온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어 냈다"면서 "모니터링 결과 그러한 점이 10대 20대 등 젊은 관객 층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담스럽고 어려워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관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감독과 함께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는 영화 '스물'(제작 영화나무, 배급 NEW)의 신인 감독 이병헌과 단순 비교하기도 한다. 흥행이라는 잣대로 영화의 질을 저울질하고 위아래를 결정하는 세태가 안타깝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하나의 시선 혹은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자세는 옳지 않다. 전통이 담긴 옛것이 소중한 이유는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세월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다. 그리고 발전은 그 옛것의 깊이에 새것의 신선함이 더해지고 그 안에서 많은 결과물이 파생될 때 순조롭다. 그런 면에서 최근 '거장'과 그들의 영화를 대하는 자세에 아쉬움이 남는다.

[더팩트ㅣ오세훈 기자 royzoh@tf.co.kr]
[연예팀ㅣ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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