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영화인:生] '버드맨' 김치 비하, 불편한가요?
입력: 2015.02.25 11:20 / 수정: 2015.02.25 11:20

영화 버드맨 인종 비하 논란. 버드맨이 영화 속 특정 장면과 대사로 아시아 비하 논란에 휘말렸다. /영화 버드맨 포스터
영화 '버드맨' 인종 비하 논란. '버드맨'이 영화 속 특정 장면과 대사로 아시아 비하 논란에 휘말렸다. /영화 '버드맨' 포스터

'버드맨', 오스카상으로 날다 亞 비하로 휘청

내 잘못보다 남의 잘못이 더 커 보인다고 했다. 내가 남을 찌를 때는 괜찮고, 누군가 나를 찌르면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논란을 대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는 이성적인 사고와 객관적인 잣대를 유지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영화 '버드맨'의 아시아 비하 논란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김치년'(속물적인 여자라는 뜻,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주로 쓰임)이라는 말에 대한 문제성이 제기된 적이 있다. 2~3년 전의 일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주로 개념 없는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에 사용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한국 여성을 저격할 때는 물론 한국인과 그 문화를 통틀어 비하할 때 '김치'라는 상징적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 문화 우수성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가 거꾸로 한국을 폄하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쓰이고 있는 것은 매운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에서라면 몰라도 국내에서조차 이런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제 얼굴에 침 뱉기와 같다.

결국 이런 비속어가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4관왕을 거머쥔 영화 '버드맨'(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서도 그려져 국내 여기저기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제작자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 트로피를 거머쥔 데 이어 오스카까지 점령한 이 영화는 국내 미개봉 작품이라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쏠렸지만 이와 함께 아시아를 비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소식이 함께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엠마 스톤 퍼킹 김치 극 중 마이클 키튼의 딸로 등장하는 엠마스톤은 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라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대사로 국내 팬들 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 버드맨 스틸
엠마 스톤 "퍼킹 김치" 극 중 마이클 키튼의 딸로 등장하는 엠마스톤은 "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라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대사로 국내 팬들 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 '버드맨' 스틸

영화를 본 일부 관객은 영화의 북미 개봉 후 '퍼킹 김치'(Funcking Kimchi)라는 대사와 영어를 못해 웃음거리가 된 일본인 기자, 몽고 사람을 몽골리안이 아닌 몽골로이드로 표현한 점 등을 꼬집으며 인종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아카데미 특수와 '킹스맨' '이미테이션 게임' 등 외화의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시장에서 '대박'이 예고되고 있지만, 불매 운동까지 벌어질 조짐마저 보인다. 이러한 불편함 속에는 그동안 한국인을 '돈벌레' 혹은 '마늘 냄새가 나는 사람들'로 폄하한 이미지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폴링다운'(1993), 뤽 배송 감독의 '택시'(1997),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크래쉬'(2004),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 등은 한국인 비하와 인종차별을 담아 논란이 된 바 있다.

비난의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극대화된 표현의 방식이진 않을까" "우리나라 영화를 봐도 중국인이나 백인, 일본인 등을 비하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부터 조심하고 반성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최고 영화 시상식 오스카 4관왕 영화 버드맨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라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버드맨 스틸
최고 영화 시상식 오스카 4관왕 영화 '버드맨'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라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버드맨' 스틸

동양 비하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 '버드맨' 국내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이가영화사 관계자는 <더팩트>에 "작품 내용 중에 엠마 스톤이 "여기서 더러운 김치 냄새가 진동해!"(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라고 외치는 장면은 캐릭터의 성격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일종의 과장된 표현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극 중 엠마 스톤은 억지로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상태로 우연히 들른 꽃집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설정됐다. 그래서 '퍼킹 김치'라는 대사가 사용된 것이다"며 "그걸로 한국인 비하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논란이 된 부분을 수정이나 삭제할 계획이 없다고 알렸다.

영화 관계자들의 말처럼 아시아인들이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리 웃음과 상황 설정이라도 사람의 가치를 위협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헤친 것에 대해선 비판받아 마땅한 일일까. 논란의 해답을 찾기 위한 판단은 영화를 관람하는 개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우리 역시 웃고 떠들며 타인·타 인종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고 다시 한 번 마음과 사고를 되잡는 기회로 삼는 게 중요해 보인다. 특히 우리를 대표하는 단어를 우리가 사용해 비하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우리가 하면서 남들 보고 하지말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한편 '버드맨'은 슈퍼 히어로 버드맨으로 톱스타의 인기를 누렸던 할리우드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이 예전의 꿈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에 도전하는 스토리를 담은 작품이다. 다음 달 3일 개봉 예정이다.

[더팩트ㅣ오세훈 기자 royzoh@tf.co.kr]
[연예팀ㅣ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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