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석 "사실 저도 '로맨틱' 좋아하는데요."
연달아 진행되는 인터뷰가 다소 피곤했는지 배우 김윤석(48)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하지만 단정한 옷매무새와 꼿꼿한 자세는 어느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취재진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나지막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말 한마디에 되려 긴장하는 건 기자다.
취재진마저 긴장하게 하는 28년차 배우 김윤석. 그가 최근 변화를 시도했다. 원톱 주연도 모자라는 그가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 제작 제이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을 만나 정우와 함께 2인 1역으로 호흡을 맞춘 것.
사실 김윤석은 오근태의 젊은 시절이 영화의 대부분 비중을 차지하는 탓에 분량이 적을 뿐더러 극 말미에나 등장한다. 거기에 어리숙하고 지고지순한 오근태를 연기한다니 그간 폭력배, 놀음꾼, 킬러 등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그에겐 변화 중에서도 나름 파격 축에 낀다.

지난주 서울 종로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김윤석을 직접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뭘 묻고 그러느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변화가 아니라 원래 내 성격이 로맨틱하다"고 대답했다.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어 더욱 식은땀이 흐른다.
농담도 진담 같은 진지한 눈빛, 굵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배우 김윤석이 출연한 '쎄시봉'은 한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킨 1970년대 스타 조영남(김인권 분)·이장희(진구-장현성 분)·윤형주(강하늘 분)·송창식(조복래 분)등을 배출한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전설적인 듀엣 트윈폴리오의 탄생 비화와 그들의 뮤즈를 민자영(한효주 분) 둘러싼 러브스토리를 담았다.
김윤석에게 젊은 배우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에 불만은 없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시나리오상 존재감이 미미했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나 김윤석인데 조금 더 (분량을) 챙겨줬겠지'하고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는 난색을 표하며 작품 선택엔 배역이나 분량은 전혀 영향가 없다고 손사레쳤다.
"말도 안돼요(웃음). 내가 처음에 봤던 시나리오 그대로 나왔어요. 오히려 시나리오가 100% 반영되서 만족스러웠고요. 2인 1역을 데뷔하고 처음 해본게 의미있는 거죠. 다 늙어서 '내가 나오는 장면이 모자라네. 난 출연 안해!'라고 거절하면 되나요(웃음)."

김윤석은 '쎄시봉'이란 작품을 기분좋은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한 번도 제 연기를 보며 100% 만족한 적은 없었고 이번에도 그렇지만, 이와는 별개로 음악과 로맨스가 함께한 영화에 참여하는 자체가 휴식과 같았다고 말한다.
"평소에 노래를 좋아해서 그런지 즐겁게 촬영한거 같아요(웃음). 쉬는 날엔 집에서 기타도 튕기고 그러거든요.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 스타'랑 '슈퍼스타 K'알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죠(웃음). 우리나라엔 천재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볼 때마다 푹 빠져서 봐요.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 하는지…. 이것도 음악 감상으로 껴주는거 맞죠?"

사실 '쎄시봉'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굵직한 가지는 20대 오근태와 민자영의 풋풋한 로맨스다. 동시에 청춘들의 꿈과 좌절, 현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비단 이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꾸는 꿈에도 닿아있어 관객들에게 저마다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오근태를 연기한 김윤석도 촬영 내내 다양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고 말했다.
"오근태를 연기하는 동안 20년동안 연기자로 살았던 나, 김윤석. 그리고 주위에 있던 동료들을 오랜만에 천천히 곱씹었던 것 같아요. 오근태는 현실이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대를 포기했던 동료들과 비슷한 인물이에요. 넥타이를 메고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너 그거 알아? 나 왕년에 배우 김윤석이랑 친했어'라고 어딘가에서 내 친구가 회사 후배한테 떠들고 있을거 같은 기분이 드네요(웃음). 상상하면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씁쓸한 미소를 보이던 김윤석은 20대 청춘, 뜨거웠던 무대를 회상하며 "그 순간만 느낄 수 있는 느낌, 아련함이 있다"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문득 20대 김윤석의 뮤즈, 그러니까 '그의 김희애'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첫사랑을 은근슬쩍 물었다. 분위기에 젖어 어물쩍넘어갈 줄 알았는데 40대의 '내공'은 그러는 법은 없다.
"왜 잘살고 있는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려고 하나요(웃음). 첫사랑이랑 결혼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젊었을 적엔 무대라는 장소, 연기에 미쳐있던 청춘을 보냈다고 강조하고 싶네요(웃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연기하는 거라서 마음껏 했죠. 현재를 사는 청춘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좀 더 네 맘대로 살았으면 해요. 그리고 저와 같은 40대를 사는 가장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도 있어요. 저요, 집에선 별거 없어요(웃음).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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