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반환점에 다다른 '미생'은 유독 원작과 관련된 논란이나 비판과 거리가 멀다. 이유는 원작과 연출의 자연스러운 조화에 있다. 웹툰 속 장면을 드라마로 구현할 때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고 또 원작에 없는 장면을 드라마에 맞게 창조해 극적 재미를 더했다.
드라마 '미생'이 중반에 다다른 시점에서 원작의 묘미를 가장 잘 살린 장면과 원작에 없지만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을 선정했다. 어떤 장면들이 있을까.

#1. "당신에게 사무현장의 전투화를 팔겠습니다!"
'미생' 4회 인턴들의 PT 시험 장면은 드라마 인기의 출발점이었다. 정규직 사원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선 인턴들의 노력이 노련한 임원들 앞에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안영이(강소라 분)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되기도 했다.
원작 웹툰에서도 PT 장면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안영이가 가장 돋보이는 가운데 장그래(임시완 분)와 한석윤(변요한 분)의 PT 역시 중요한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조별 PT를 준비하면서 주먹다짐까지 벌이게 됐는데 개별 과제가 파트너에게 필요한 물건을 파는 것이었다.
장그래와 한석윤은 개별 과제에서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한석윤은 원 인터내셔널 공장에서 만드는 천을 팔겠다고 제안했고, 장그래는 늘 현장을 강조한 한석윤에게 사무현장의 전투화인 슬리퍼를 내밀었다. 장그래가 어떻게 한석윤이 슬리퍼를 사도록 설득하는지가 중요했고 만화와 드라마 모두 이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특히 한석윤 역의 변요한이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장면 가운데 하나다.

6회 등장한 박대리(최귀화 분) 에피소드는 원작 팬들에게 과연 어떻게 영상으로 만들어질지 관심을 모은 장면이었다. 소심한 성격으로 거래처에 싫은 소리하지 못해 무시당하는 박대리와 함께 현장에 나간 장그래가 박대리의 실상을 그대로 본 뒤 벌어지는 이야기는 원작 전체에서 가장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정면 돌파로 원작 버금가는 명장면을 만들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화 속 천사의 날개를 그대로 구현했다. "무책임해지세요"라는 장그래의 얘기에 힘을 받아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당당하게 고하고 껍질을 깨 부수고 알몸이 되는 장면도 똑같이 전파를 탔다. 가장 만화스러운 장면을 드라마로 그려낸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2회에서 장그래가 처음으로 영업3팀에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장면이다. 만화를 드라마로 옮겨오는 데 큰 효과가 필요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만든 건 오상식 역의 이성민이 보여준 명연기 때문이다.
오상식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장그래가 실수로 중요한 서류를 흘리자 혼냈다. 그러나 그 잘못은 장그래가 아닌 영업2팀 인턴의 잘못이었다. 회식자리에서 영업2팀 고과장을 만난 오상식은 취한 목소리로 "딱풀 좀 챙겨주라고. 너희 애가 실수해서 우리 애만 혼났잖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방송 전 원작 캐릭터와 가장 닮지 않은 배우로 지목된 이성민이 오상식 과장으로 완벽하게 몰입한 순간이었다.
#1. "저에게 기회를 주실 수 있잖아요."
드라마에서 오상식은 장그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인턴을 팀에 넣었다는 이유와 낙하산이라는 이유로 장그래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오상식을 만난 장그래는 "왜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오상식은 "기회에도 자격이 있다"며 맞섰다. 그는 "기본도 안된 인간이 빽하나 믿고 에스컬레이터 ㄷ타는 세상 지지하지 않는다"며 낙하산인 장그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원작에 없던 이 장면은 회가 거듭하고 장그래가 자신의 노력으로 오상식에게 인정받는 과정에 설득력을 높였다. 또 오상식이 느끼는 동료애도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첫 회에서 안영이의 어마무시한 능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안영이는 타이트한 오피스룩을 입고 바이어 미팅에 나선다. 선배 남자 직원들은 모두 말리는데 바이어는 안영이의 엉덩이를 거침 없이 움켜 쥔다. 놀랍게도 바이어는 여자였고 안영이가 팔려는 물건은 가슴과 엉덩이 패드였다.
인턴이지만 차원이 다른 안영이의 외국어 능력과 결단력, 업무 수행 능력 등을 한눈에 알아차리게 된 내용이었다. 게다가 강소라의 섹시한 매력까지 느낄 수 있어 첫 회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3. "답은 자료에 다 나와 있어"
신념과 실적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상식과 영업 3팀의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가장 큰 화제가 됐다. 거래처에 2차 접대를 하지 않는다는 신념의 소유자 오상식이 자신의 신념을 져버린 듯싶었지만, 보기 좋게 계약에 성공하는 내용이었다.
이 역시 원작 웹툰에는 없던 이야기였다. 이전까지 늘 안좋은 소식만 있던 영업3팀이 오랜만에 해낸 큰 프로젝트라는 점과 직장인의 신념과 성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던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극적인 요소를 좋아하는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이제 '미생'은 절반 가까이 지내왔다. 지금까지 이야기 역시 원작 웹툰 절반 정도다. 원작만을 따라가서도, 아예 원작에 등을 돌려도 안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는 '미생'이 앞으로 또 어떤 싱크로율을 보여줄지,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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