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기증'의 출연배우 송일국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한 건물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왜 '현기증'을 선택했느냐고요?"
의외다. 여전히 배우 송일국(44)을 떠올리면 드라마 '주몽'(2006년) 탓인지 주연배우의 이미지가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그가 9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저예산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현기증'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번 작품이 자신을 처음으로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배우로 만들어 줬다며 '고마운 작품'이라 말한다.
배우 송일국. '삼둥이'이 아빠, 송도의 성자, 연극, 운동 마니아 등 그를 생각하면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대부분 연상되는 것들은 건강한 것과 맞닿아 있어 상쾌한 느낌이다. 최근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직접 마주한 송일국 또한 싱그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막을 올리는 연극 '나는 너다'에서 안중근 의사로 분한 송일국의 연습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 들어서자 말끔한 슈트 차림의 그가 힘차게 인사를 건넨다. 에너지로 가득한 그의 미소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현기증'에서 나약한 남편 상호를 연기한 배우 송일국(왼쪽)./영화 '현기증' 스틸 |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현기증'(감독 이돈구, 제작 한이야기 엔터테인먼트, 배급 메가박스플러스엠)은 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다뤘다. 평범했던 가족이 치명적인 사고 이후 무참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엄마 순임 역에 김영애, 첫째 딸 영희 역에 도지원, 둘째 딸 꽃잎 역은 김소은이 출연했다. 송일국은 아무것도 해줄게 없는 나약한 남편 상호로 분했다.
찰나의 '현기증'으로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 엄마 순임(김영애 분)은 심한 죄책감과 공포에 자신의 죄를 침묵하고 가족들은 그런 엄마에 분노한다. 엄마는 점점 이상 행동을 보이지만, 지켜보는 가족 모두는 각자 직면한 자신의 고통 때문에 서로를 돌볼 여력이 없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번 작품에서 상호를 연기한 송일국은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지 않다. 하지만 가장 먼저 출연을 결정했고 시나리오를 읽기도 전에 그 결심을 굳혔다. 저예산으로 진행된 작품, 투자자도 배우도 안갯속이었다. 과감한 결단의 이유가 궁금했다.
"이돈구 감독의 전작 '가시꽃'을 보고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단 생각을 오랜 시간 품고 있었어요. '가시꽃'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는데 그 장편을 300만 원이란 저예산에 완성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죠. 감독의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기증'은 시나리오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로지 이돈구 감독을 믿고 선택한 작품이었고 제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송일국은 '현기증'에서 자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새롬 기자 |
송일국은 '현기증'에서 자신의 비중이 적은 것 또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애초부터 작품을 선택하며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예산에 롱-테이크 장면도 많고 내용도 어둡고…. 굉장히 힘든 영화였어요. 촬영 내내 웃어 본적도 없고 배우들 모두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배우 송일국'에겐 정말 의미있는 작품이에요.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세요. 비중이 적다고. 예전의 저라면 절대 선택 안 했을 거에요(웃음)."
"아이가 생기고 연극을 하면서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변화한 것 같아요. 이렇게 힘 빼고 연기한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다시 말해서 멋 부리지 않고 연기한 게 처음이란 의미죠. 예전에는 나도 모르게 겉멋이 들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예를들어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연기 공부를 하기보단 근육을 만들고 외모에 신경 쓰고 그랬어요(웃음)."
송일국은 지난 2010년 초연한 윤석화 감독의 연극 '나는 너다'에서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4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는 연극을 통해 진정한 '배우'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됐다고 솔직히 말했다. /더팩트DB |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16년 차 배우 송일국, 그가 이제 와서 '진짜 연기다운 연기'를 하는 것 같다며 너털 웃음을 보인다. 지난 2010년 연극 '나는 너다' 초연 당시, 호되게 혼나가며 무대에 섰던 송일국은 그때를 회상하며 "비싼 수업료를 냈지만, '배우란 이런 거구나'를 확실히 배웠다"고 말했다.
"연기에 대해서 처음으로 갈망했던 적이 그때에요. 슬럼프도 왔었고…. 무대에 서니까 모자란 제 연기가 확실히 느껴지더라고요. 드라마나 영화는 편집이 되는데 연극은 그게 불가능하니까(웃음). 그때 처음으로 TV, 영화 예술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그전에는 대중들이 보는 내 외모, 이미지에 집중했던 거 같아요. '스타 송일국'에 집중한 거죠. '배우 송일국'이 아니라."
이제야 연기하는 '맛'을 알았다는 송일국은 이돈구 감독의 '현기증'으로 지난달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생애 처음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연기의 참맛'을 안 뒤 밟은 레드카펫은 송일국에게 그 어느 행사보다 의미있고 강렬한 경험으로 뇌리에 남았다.
평소 부지런한 성격 때문에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도 30분 일찍 도착한 송일국은 포토월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김슬기 기자 |
당시 부산에서 공개된 '현기증'의 반응은 뜨거웠고 영화 배우로 부산을 찾은 송일국은 관객과의 대화, 야외 무대인사 등을 통해 관객과 소통했다. 송일국은 부산의 추억을 회상하며 "내가 영화배우로 레드카펫을 밟을 줄 누가 알았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영화제에 처음 초청된 거니까 부지런히 가야한다는 마음에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간 거에요. 레드카펫 포토월 시간은 따로 있는데…. 그래서 사진도 몇 장 못 찍히고 현장 스태프들 지나다니는 통로로 들어갔어요(웃음). 혼자 멀뚱멀뚱 앉아서 기다렸어요. 가끔 지나치게 성실한 것도 안좋더라고요. 나중에 또 영화제에 초청받으면 제 시간에 가서 사진 많이 찍히고 싶어요(웃음). 그러니까 제 말은… 저 계속 영화하고 싶어요(웃음). 연기를 이제야 배워가는 기분이에요."
◆ 영화 '현기증' 메인 예고편(http://www.youtube.com/watch?v=fDGhmNoeR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