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나의 독재자' 설경구, 연기파도 표현할 수 없는 한가지
입력: 2014.11.08 07:00 / 수정: 2014.11.08 18:10
영화 나의 독재자의 주연 배우 설경구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영화 '나의 독재자'의 주연 배우 설경구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설경구(47). 한국의 연기파 배우 삼인을 꼽으라면 흔히들 최민식 송강호 그리고 그를 꼽는다. 그리고 설경구는 그중 가장 늦게 빛을 본 배우다.

1999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으로 빛을 보기시작한 설경구는 그간 영화 '오아시스'(2002년) '실미도'(2003년) '역도산'(2004년) '공공의 적'(2008년) '소원'(2013년)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배역을 제 색깔로 녹여냈다. 그가 표현할 수 없는 게 있긴 할까.

데뷔 21년 차 배우 설경구는 그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수많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영화 박하사탕 실미도 소원 역도산 스틸
데뷔 21년 차 배우 설경구는 그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수많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영화 '박하사탕' '실미도' '소원' '역도산' 스틸

그를 대중에게 알린 '박하사탕'. 설경구는 순수한 청년 김영호로 분했고 '실미도'에선 어두운 과거를 지닌 군인 강인찬이 됐다. '역도산'에선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러로, 지난해 '소원'에선 딸을 위해 한여름 코코몽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을 마다치 않는 '딸 바보' 동훈이 됐다.

올해로 데뷔 21년, 배우 설경구를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투박하고 꾸밈없는 그의 말투는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그의 필모그래피와 달리 소탈한 느낌을 풍긴다.

설경구는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또 한번 새로운 도전을 꾀했다. 30일 개봉한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 제작 반짝반짝영화사,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를 통해서다. '나의 독재자'는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 대역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설경구는 30일 개봉한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일성 대역을 연기하다 김일성에 빠져든 무명배우 성근을 연기했다./영화 나의 독재자포스터
설경구는 30일 개봉한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일성 대역을 연기하다 김일성에 빠져든 무명배우 성근을 연기했다./영화 '나의 독재자'포스터

'나의 독재자'에서 설경구는 무대 위 주인공을 꿈꾸던 무명배우 성근을 연기했다. 우연한 계기로 김일성 대역 오디션에 합격하고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온 기회에 아들 태식(박해일 분)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설경구는 김일성에 빠져든 성근을 연기하며 북한 사투리부터 복잡한 감정선 하나까지 섬세하게 녹여냈고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그는 "웃기는 소리 말라"고 민망해 했지만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진 못했다.

"호흡이 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관객 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작품선택을 하긴 어렵지만, 최근 상업성이 짙은 작품만 사랑받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거든요. 연기자로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배우끼리 긴 호흡으로 부딪히며 연기하는 순간인데 최근 그런 경험이 적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의 독재자'를 선택했어요. 좋은 배우가 있었고 호흡이 길었고, 후반 작업에 의지해야 하는 작품이 아니었으니까요."

호흡이 긴 작품을 갈망했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설경구는 연기를 통해 그간의 갈증을 증명한다. '나의 독재자'에서 그가 보여준 독백 연기 장면은 10분이 넘는 긴 호흡과 대사에도 불구하고 원-테이크 방식으로 촬영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며 배우, 시나리오, 감독의 '삼박자'가 모두 잘 맞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아들로 호흡을 맞춘 박해일은 시나리오와 콘티를 성경책처럼 끼고 다니는 배우죠. 그 정도로 성실하고 열정이 가득한 친구니까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죠. 시나리오는 탄탄했고. 이해준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 꼭 한번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작품을 함께 하면서 다시는 안 볼 뻔했지만(웃음), 저랑 공통점이 많더라고요."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에서 연기한 성근 캐릭터를 평범한 아버지라고 설명했다./이새롬 기자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에서 연기한 성근 캐릭터를 평범한 아버지라고 설명했다./이새롬 기자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로 자신이 연기한 성근 캐릭터가 주는 매력을 꼽았다. 그는 이해준 감독이 건넨 시나리오를 읽으며 김일성에 빠져 사는 '독재자 성근'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아버지' 성근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성근이란 인물은 김일성 대역이 직업이란 것 빼곤 그냥 1960년~1970년 당시를 살았던 평범한 아버지들을 대변하는 인물이에요. 항상 돈에 쪼들리고 본인을 위해서 살지 못하는 '우리네 아버지'있잖아요. (성근이) 내 아버지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헸어요. 그때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자신의 삶 없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았는데 자식들은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 같아요(웃음). 강압적으로 군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도 아버지를 '독재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는 작고 초라한 존재가 됐고 진짜 '독재자'는 어머니가 됐더라고요."

설경구는 자신의 속마음을 아버지에게 말로 표현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새롬 기자
설경구는 자신의 속마음을 아버지에게 '말'로 표현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새롬 기자

설경구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쓴웃음을 짓는다. 아버지와 여전히 관계가 서먹하다는 그는 유년시절 특별한 추억도, 애정표현을 한 경험도 없다고 말한다. 그를 '너무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원래 아들과 아버지는 다 그런 관계다"고 '툭' 내뱉는다.

"대학 시절까지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쓰면서도 제대로 된 애정표현 한 번 해본 경험이 없어요. 지난해 아버지가 갑자기 전화해서 뜬금없이 '미안하다'라고 하는데 울컥 화가 나더라고요. 그렇다고 아버지한테 딱히 다정한 말을 건네진 않아요(웃음). 그런 게 아들인 거 같아요. 아들이랑 제 관계도 그래요. 투박하죠. 아마 평생 표현하지 못할 거에요."

설경구는 끝까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모든 표현 가능할 것 같은 배우 설경구였지만, 그 또한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기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 하나쯤 있구나 싶었다.

"말로 하면 '공수표'가 되는 거에요. 마음으로 '짠' 한 게 진심이지."

◆ 영화 '나의 독재자' 메인예고편 (http://www.youtube.com/watch?v=OodUAaM73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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