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탐사-악녀가 웃는다②] '감초에서 주역으로' 악녀는 어떻게 변했나
입력: 2014.07.19 08:00 / 수정: 2014.07.18 21:47
못된 시어머니 등 식상한 악녀 캐릭터는 많이 진화했다. / SBS 시크릿가든 방송 캡처
못된 시어머니 등 식상한 악녀 캐릭터는 많이 진화했다. / SBS '시크릿가든' 방송 캡처

[더팩트ㅣ이건희 기자] #1. 밉상 여자 캐릭터 A : B씨, 이것 좀 도와줄래요? (남자 주인공과 데이트 약속이 있는 여자 주인공 B, 너무 착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결국 남자 주인공과 데이트는 A의 몫이다.)

#2. 못된 예비 시어머니 C : (돈 봉투를 내밀며) 우리 아들 만나지 마!
예비 며느리 D : 저는 아드님을 사랑합니다. (C는 컵에 가득 남긴 물을 D에게 끼얹는다.)

#3. 상처받은 여자 E :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를 뒤에서 바라보며) 네 남자, 내가 꼭 뺏을 거야!

TV 드라마 속 악녀가 달라졌다. 앞에 나온 장면들의 악녀처럼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새롭고 더욱 독해진 악녀들이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드라마의 악녀라면 못된 시어머니나 삼각관계에서 단순히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주인공과 경쟁하는 역에 그쳤다.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악녀 캐릭터들이 늘어났다. 악녀의 활약이 작품의 성공을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출발점에는 '아내의 유혹'이 있다.

아내의 유혹은 악녀 캐릭터와 효과를 완전히 뒤바꿨다. / SBS 제공
'아내의 유혹'은 악녀 캐릭터와 효과를 완전히 뒤바꿨다. / SBS 제공

◆ '아내의 유혹' 악녀 캐릭터 변화의 시작

악녀 캐릭터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9년 SBS '아내의 유혹'이었다. '아내의 유혹'은 여자 주인공과 악녀의 경계가 허물어진 대표적은 드라마였다. 시작부터 악녀는 구은재(장서희 분)의 남편 정교빈(변우빈 분)을 빼앗은 신애리(김서형 분)였다.

신애리는 정교빈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정교빈과 짜고 구은재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당시만 해도 시청자들은 신애리를 욕하기 바빴다. 하지만 구은재가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민소희로 변해 신애리보다 더욱 독한 행동을 일삼자 시청자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악녀인지 착한 주인공인지 아리송하게 구분되지 않는 '아내의 유혹'의 설정은 막장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악녀의 새로운 장을 구축했다.

'아내의 유혹'이 만든 효과는 컸다. '아내의 유혹' 이후로 드라마 속 악녀는 진화했다. 기존 드라마의 악녀의 성격도 변했고 악녀가 주인공보다 더 높은 인기를 거두기도 했다. 악녀가 더욱 악랄한 연기를 펼칠수록 드라마의 재미가 커진 것도 당연해졌다.

선덕여왕의 미실(왼쪽)과 야왕의 주다혜는 권력지향형 악녀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 MBC SBS 제공
'선덕여왕'의 미실(왼쪽)과 '야왕'의 주다혜는 권력지향형 악녀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 MBC SBS 제공

◆ 권력지향형 악역의 등장 '미실' '주다혜'

MBC '선덕여왕'과 SBS '야왕'은 그동안 남자들의 뒤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능력을 전면으로 배치하며 큰 화제가 됐다. 그 중심에는 미실(고현정 분)과 주다혜(수애 분)라는 캐릭터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남의 남자를 뺏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의 목적은 한 나라의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신라를 뒤에서 조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고 싶었다. 후에 선덕여왕이 된 덕만(이요원 분)과 두뇌 싸움, 권력 다툼은 매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역사적 사실과 권선징악이라는 드라마의 기본 구조에 결국 미실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의 더 큰 사랑을 받은 건 주인공이 아닌 미실이었다. 고현정은 미실 역으로 2009년 MBC 연기대상 대상을 거머쥐었다.

'야왕'의 주다혜는 현대극에서 볼 수 없던 악녀였다.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남자를 버리는 악녀는 많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주다혜의 꿈은 컸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남자를 이용하고 버릴 줄 알았다. 대통령 부인까지 올라간 주다혜 역시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드라마 속 악녀 사상 색다른 캐릭터 탄생을 확실하게 알렸다.

대표적 악녀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시어머니 역시 진화하고 달라졌다. / MBC 백년의 유산 오로라공주 방송 캡처
대표적 악녀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시어머니 역시 진화하고 달라졌다. / MBC '백년의 유산' '오로라공주' 방송 캡처

◆ 시어머니의 진화, 지능적 괴롭히기

드라마 속 못된 시어머니들도 달라졌다. 아들의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돈 봉투를 건네고 강제로 헤어지게 하는 건 구식이다. 결혼하고 나서 더 좋은 조건의 며느릿감이 나타나면 가차 없이 이혼시키는 게 요즘 트렌드다.

강제로 이혼이 안 된다면 며느리가 이혼하고 싶도록 만드는 게 못된 시어머니의 주요 임무가 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MBC '백년의 유산' 속 방영자(박원숙 분)다.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매사 며느리를 질투하고 모욕한다. 심지어 며느리의 불륜을 조작해 아들을 속인다. 이전 시어머니들이 아들의 결혼을 반대, 또 반대하다가 결국 두 손 들고 마는 것과 다르다. 물론 방영자는 며느리 민채원(유진 분)을 밀어내고 새 며느리 마홍주(심이영 분)를 얻었지만, 된통 당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인과응보다 .

시어머니가 없다고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은 방심해선 안 된다. '오로라 공주' 처럼 남편의 누나 세 명에게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황시몽(김보연 분) 황미몽(박해미 분) 황자몽(김혜은 분) 자매의 남동생 황마마(오창석 분) 사랑은 끔찍했다. 동생의 신혼방에 들어가 불경을 외는가 하면, 동생 앞에서는 자상하게 올케인 오로라(전소민 분)를 대하지만, 동생이 없을 때는 따돌리기 일쑤다. 황마마만 모르는 시집살이, 모든 시청자들은 다 알고 욕을 해댔다. 시몽 미몽 자몽 세 자매의 지능적인 괴롭히기가 통한 결과였다.

착하고 참한 외모의 악녀들의 반전 악행은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 MBC 기황후 방송 캡처,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방송 캡처
착하고 참한 외모의 악녀들의 반전 악행은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 MBC '기황후' 방송 캡처,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방송 캡처

◆ 웃는 얼굴에 침 뱉고 싶다? '타나실리' '채린'

악녀가 무조건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어졌다. 오히려 착하고 참한 외모의 캐릭터들이 겉과 속이 다른 악역 연기를 펼칠 때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악녀 가운데 한 명인 '기황후'의 타나실리(백진희 분)가 대표적이다. 가문을 등에 업고 타환(지창욱 분)과 정략결혼했지만, 타환은 기승냥(하지원 분)만을 바라봤고 타나실리는 어쩔 수 없이 악녀가 됐다. 전작 '금 나와라 뚝딱'에서 순종적이고 착한 캐릭터를 소화했던 백진희의 변신은 타나실리의 반전 매력을 강조할 수 있었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채린(손여은 분)도 보기와 달랐다. 채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전형적인 양갓집 규수 같은 외모와 성격이 눈에 띄었다. 그런 그가 남편이 전 아내와 낳은 딸을 때리고 괴롭힐지는 상상도 못 했다. 채린의 악행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리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녀린 여성 캐릭터의 예상치 못한 악행은 악녀로서 이미지를 굳히는 데 큰 힘이 됐다. 채린 역의 손여은 역시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최고 수혜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랑을 받았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에서도 많은 악녀들이 활약하고 있다.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 분)이나 '트로트의 연인'의 박수인(이세영 분) 등 악녀들은 욕은 먹으면서도 작품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리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변화하는 악녀가 없었다면 TV 드라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싱거웠을 것이다.

canusee@tf.co.kr
연예팀 ssent@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