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SM엔터테인먼트와 그룹 엑소 멤버 크리스 간 전속계약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 첫 조정기일이 열렸다. / 더팩트DB, 김슬기 기자 |
[더팩트 | 김경민 인턴기자] 지난 8일, 여느 때와 같이 선배로부터 취재 일정을 건네받았지만 이 날은 특히 식은땀 한 줄기가 등 자락에 주룩 흘러내렸다. 취재 장소에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법원이 떡하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처럼 소송 관련 당사자가 나오면 기자들이 마이크를 가져다 대며 "한 말씀 해주시죠!"라고 묻는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죄를 지은 것은 없지만 취재 장소로 적혀 있는 단어로 보자니 두려운 마음이 컸다. 더군다나 선배기자 없이 홀로 가는 부담감도 컸다. 그것도 취재 사건은 최근 연예계에 화제로 꼽히는 그룹 엑소 멤버 크리스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소송의 첫 조정기일이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그간 크리스 소송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고 사건 번호를 검색해 살펴보느라 분주했다. 가장 먼저 다가온 큰 장벽은 용어였다. 전속계약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 조정회부, 조정기일, 변론기일 등 일상에서 쉽게 듣지 못했던 생소한 단어들의 뜻을 찾아보며 이해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갔다.
법원으로 향하는 동안 다른 때보다도 더 쨍쨍한 햇볕에 긴장감까지 더해져 쉴 새 없이 땀이 쏟아졌다. 점점 법원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에는 한 손에 서류 가방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 사람들의 뒤를 쫓아 도착한 현장에는 영상 카메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대기하고 있었고, 무더운 날씨에도 긴 소매 정장을 갖춰 입은 변호인들이 모여 있었다.
슬쩍 옆에 앉아 있으니 "구체적으로 상대편에서 무엇을 내세우는 것이냐" "이번 소송 합의 가능성은 있는 거냐?"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등 소송과 관련한 대화가 들렸다. 조정이 공개로 진행될지 비공개로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변호인들의 대화는 천금 같은 정보였다. 그때 만큼은 해리포터의 투명망토라도 훔쳐서 그들의 옆에 바짝 다가서서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변호인단과 조정장의 미소를 보며 첫 법원 취재가 순조로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렸다. / 더팩트DB |
눈앞에 있는 모니터에 222호 조정실이 나타나고 관계자는 "우이판(크리스의 본명) 씨"를 부르며 조정 시작을 알렸다. 변호인단 틈에 껴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지만 관계자의 "취재진은 10분 후에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조정실 입장이 막혔다. 그래도 직접 조정실 안에 들어가서 양측 변호인단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느새 긴장감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10분 후, 조정실의 문이 열렸고 조정장과 변호인단이 환한 미소로 타 매체 선배기자 2명과 인턴기자를 맞이했다. 조정실 한 켠에 서서 펜을 들고 내용을 적을 준비를 하는데 조정장의 첫마디가 예상과는 달랐다. 조정장은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해 잠시 들어오라고 했다"며 "조정 내용 공개는 어렵겠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선배기자들은 "그럼 조정을 마친 후 변호인단들 잠시 인터뷰 좀 해달라"고 제안했고, 변호인단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그 미소를 믿은 것은 인턴기자뿐이었다. 인턴기자는 조정실 밖에서 변호인단에게 무엇을 물어볼지 질문을 적고 있었지만 현장에 함께 있던 선배기자들은 이미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취재에 대한 걱정을 늘어놨다.
아니나다를까 조정실에서 나온 변호인들은 좀 전까지 보여줬던 미소를 그대로 입에 머금은 채 "드릴 말씀이 없다"고 법원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바짝 뒤쫓았지만 변호인단은 "원고와 피고 측 모두 언론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준비한 질문과 멘트 중 변호인단에게 건넬 수 있었던 것은 "한 말씀만 해주세요!"라는 외침이 전부였다.
현장에 분명히 있었는데도 막상 기사로 풀어내려니 무엇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 예상을 빗나간 상황에 더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을 겪은 선배기자들은 '양측 묵묵부답' '조정기일 합의 실패'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분석까지 곁들인 기사들을 보며 '법원 기사'의 형태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다.
항상 취재 현장이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한 경험이었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기사를 빡!' 쓸 수 있는 노련함을 키우겠다는 다짐도 깊이 새겼다.
shine@tf.co.kr
연예팀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