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연의 어떤씨네] '혹성탈출2' 개봉일 변경, 꼼수 혹은 시장 논리?
입력: 2014.07.10 12:07 / 수정: 2014.07.10 12:07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 개봉을 일주일 앞당긴 가운데 중소 영화사가 이를 강렬히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갈등을 빚고 있다./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 개봉을 일주일 앞당긴 가운데 중소 영화사가 이를 강렬히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갈등을 빚고 있다./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더팩트ㅣ김가연 기자] 외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2)'이 갑작스럽게 개봉일을 바꾸면서 영화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 '혹성탈출2'는 원래 16일 개봉예정이었지만, 개봉을 며칠 앞두고 10일로 바꿨다. 지난 4일 '혹성탈출2' 직배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과 폭발적인 기대가 이어지고 있어 관객에게 좀 더 빨리 영화를 선보이고자 미국 개봉일에 맞춰 10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혹성탈출2'가 개봉일을 갑자기 바꾼 여파는 컸다. 10일 개봉하기로 한 다른 수입사들로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10일 개봉할 예정이었던 외화 '사보타지' 수입사 메인타이틀픽쳐스 이창언 대표는 여러 차례 성명서를 내고 "변칙개봉과 특정영화의 스크린 독점 중단을 요청합니다. '혹성탈출2'의 변칙개봉 확정으로 한국 영화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힘의 논리, 꼼수와 탐욕이 중소영화사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혹성탈출2'의 갑작스런 조기 개봉으로 10일 예정됐던 '사보타지'는 24일로, '주온: 끝과 시작'은 16일로 각각 개봉이 미뤄졌다. 하지만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좋은 친구들'과 외화 '드래프트 데이' '램페이지' 등은 그대로 10일 개봉했다. '혹성탈출2'와 같은 날 개봉하면 타격은 입겠지만, 개봉일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는 자료를 통해 "상도의를 무시한 변칙적 개봉에 충격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며 조기 개봉 철회를 촉구했다. 제협은 "한국의 영화제작사는 물론 중소 영화수입·배급사들이 깊은 혼란에 빠졌다"고 말하면서 현상의 심각성을 알렸다.

메인타이틀픽쳐스 측이 작성한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변칙 개봉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3차 성명서./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메인타이틀픽쳐스 측이 작성한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변칙 개봉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3차 성명서./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혹성탈출2'의 개봉일 변경을 두고 상도덕을 어기는 행위며 영화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말이 많다. 자본의 논리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국내 영화계의 상도덕이 있기에 '혹성탈출2'의 개봉일 변경은 '변칙 개봉'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두 가지로 견해가 엇갈린다. '혹성탈출2'의 처지에서 보면 자본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과 시기가 맞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다른 영화가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적절히 조절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성탈출2'의 측면에선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 맞다. '혹성탈출2'는 오는 23일 개봉예정인 '군도: 민란의 시대'을 피하면서 전 세계 개봉일에 맞춰 원래 16일로 잡았다. 먼저 개봉해서 한 주라도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앞서 개봉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예상외로 관객몰이에 실패하고 '신의 한 수'가 빛을 보면서 공백이 생겼다. '혹성탈출2'는 이 지점을 노려 개봉일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혹성탈출2'의 전편 격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년)이 누적 관객 300만 명에 조금 못 미친 약 278만 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통계기준)을 불러모았으니 '혹성탈출2'는 조금이라도 관객을 더 모으고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500만~600만 명을 넘어서는 안정적인 흥행작이라면 개봉일이 무슨 상관이겠는가만은 '혹성탈출2' 전편은 흥행을 크게 거두지 못했으니 개봉일을 변경해서라도 관객몰이를 하겠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화 수입사 관계자는 "같은 수입사 입장에서 '혹성탈출2'의 논리도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은 초성수기 시장이다. 매주마다 기대작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 주라도 먼저 점령하지 못하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없다. 영화의 만듦새가 좋든 좋지 않든 우선 관객이 많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면 다른 외화 수입사들도 형편은 비슷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혹성탈출2'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고정적인 관객 층이 없는 상태라면 개봉일은 중요하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제 몫을 다하지 못했고 분명 그 틈을 노릴 수 있었다. 특히 '혹성탈출2'는 국외에서의 영화 평도 나쁘지 않으니 욕심이 났을 법하다. 하지만 섣부른 결정인 것 같다"고 씁쓸한 현실을 대변했다.

하지만 개봉일 변경이 가져온 여파가 생각보다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국내 영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일례로 '혹성탈출2'가 개봉일을 바꾸자 벌써 몇 편은 개봉일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바꿨다. 영화사들은 제작에 못지 않게 홍보·마케팅비를 적게는 몇 천만 원, 많게는 수 십억 원을 쓴다. 개봉일을 정해놓고 그에 맞는 홍보 활동을 벌이는데 이 것이 갑자기 바뀔 경우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중소 수입사 관계자는 "외화는 홍보 마케팅 비용으로 많이 책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봉일이 바뀌는 일이 많지 않으니 그것에 맞게 계획을 짠다. 이렇게 갑자기 한 주 밀리면 그 홍보비용이 더 든다. 다른 영화에 피해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수입사 관계자는 "'혹성탈출2'의 전작이 관객 수가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외화의 경우 몇몇 블록버스터 SF 영화를 제외하고는 300만 명을 넘기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혹성탈출2'도 기대작과 대작 가운데 하나다. 피해서 개봉일을 잡았는데 갑자기 바꾸면 혼란스럽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의 개봉일 변경으로 당초 10일 개봉을 예정했던 외화 사보타지(왼쪽)와 주온은 개봉일을 미뤘다./영화 포스터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의 개봉일 변경으로 당초 10일 개봉을 예정했던 외화 '사보타지'(왼쪽)와 '주온'은 개봉일을 미뤘다./영화 포스터

'혹성탈출2'의 개봉일 변경을 보는 관객의 반응은 싸늘하다. 좋은 영화라면 개봉일을 당겨서 관객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개봉일을 문제 삼지 말고 관객을 끌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타박이다. 한국 영화 시장 질서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지만, 관객의 구미를 당기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이라는 것이다. 최근 '역린'부터 '표적'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까지 관객의 기대를 100% 충족시킬 만한 한국 영화가 없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는 최근 박스오피스를 보면 알 수 있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와 '신의 한 수'의 대결을 보자. 누가 봐도 '신의 한 수'가 지는 게임이었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개봉 첫 주 1500개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스크린에서 관객을 만났다. 하지만 '신의 한 수'가 개봉되자마자 상영관 수는 급격하게 줄었고 개봉 3주차인 지금은 800개가 안 된다.

그 사이 '신의 한 수'는 입소문을 탔고 스크린 500개로 시작해 700개로 상영관을 늘렸다. 아무리 대작이고 상영관을 많이 잡아도 작품이 좋지 않으면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당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니 개봉일과 영화관 수를 탓하지 말고 좋은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주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혹성탈출2'의 개봉일 변경과 이를 질타하는 쪽 모두 제 이익을 챙기겠다고 나서는 꼴이니 누구의 입장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다. '혹성탈출2'가 개봉하면 다른 영화의 스크린이 축소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것이 한국영화계의 현실이다. 한 영화를 탓하기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영화 시장 구조를 바꾸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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