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씨네리뷰] 약점만 드러낸 '역린', 관객의 노여움은 어찌할까
입력: 2014.04.30 07:30 / 수정: 2014.04.30 09:36
제작비 100억 원,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 역린은 지지부진한 전개와 불필요한 캐릭터 설정으로 내실은 채우지 못한 채 속 빈 강정으로 남았다. /영화 포스터
제작비 100억 원,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 '역린'은 지지부진한 전개와 불필요한 캐릭터 설정으로 내실은 채우지 못한 채 '속 빈 강정'으로 남았다. /영화 포스터

[김가연 기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떠들썩한 소문이나 큰 기대에 비해 실속이 없거나 소문이 실제와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이 이 속담과 딱 맞아떨어질 듯싶다. 제작비 100억 원, 현빈과 정재영 한지민을 비롯한 초호화 캐스팅. 하지만 '속 빈 강정'이었다. '역린'은 좋은 소재와 좋은 배우를 한 데 버무리지 못했고 외관만 화려한 껍데기로 남았다.

'역린'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등 작품에서 많이 조명한 정조를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를 이끄는 큰 줄기는 역사 속에 한 줄로 남은 정유역변이다. 정유역변은 지난 1777년 자객이 왕을 암살하려고 존현각까지 침투한 사건을 말한다. 이재규 감독은 역사적 사건을 끄집어내 허구를 적절히 혼합해 '역린'을 만들었다.

'역적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쓰고 왕위에 오른 정조(현빈)의 자리는 위태위태하다. 어느 한 사람도 그의 편에 서지 않으며 왕좌를 위협한다. 정조의 할머니인 정순왕후(한지민)와 그의 무리는 호시탐탐 정조의 자리를 노린다. 정치적 군사적 영역에서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없는 정조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의 곁을 지키는 자는 상책(정재영)과 홍국영(박성웅). 이들은 누군가 왕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 정조를 지키려 애쓴다.

정조를 연기한 현빈을 포함해 8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역린은 매우 많은 것을 담으려는 듯 캐릭터의 분별성을 잃어 산만하다./영화 스틸컷
정조를 연기한 현빈을 포함해 8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역린'은 매우 많은 것을 담으려는 듯 캐릭터의 분별성을 잃어 산만하다./영화 스틸컷

'역린'은 배우 현빈을 전면에 내세운 모양새다. 정조로 분한 현빈의 탄탄한 등근육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며 현빈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현빈의 분량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아마 정재영 조정석 한지민 박성웅 김성령 정은채 조재현 등 8명의 배우가 모두 제 목소리를 내야 했을 것이다. '역린'의 오점은 여기에 있다. 어떤 배우에게도 선택과 집중이 되지 않은 것. 마치 하나의 사과를 8개로 나눠 먹은 듯하다.

캐릭터의 분별성을 잃은 '역린'은 많은 인물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팽팽하게 맞서야 할 인물들은 중심을 잃었으며 갈등의 구조는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연결식으로 이어지니 이야기 흐름은 뚝뚝 끊기고 전개는 지지부진하다. 상영시간은 2시간 15분으로 길지만, 마지막 클라이막스 단 20분을 위해 115분을 지루하게 이어가는 꼴이다. 전개를 단편적으로 이어가고자 장면 장면을 연결하니 매끄럽지 못하다.

불필요한 인물 관계도 피로하다. 허무맹랑한 출생의 비밀과 러브 라인. 다소 과한 관계 설정은 관객들의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감동해야 할 장면이 관객에게 제대로 다가오지 못하니 핵심을 짚지 못한 채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하다.

배우 면면만 보자면 나쁘지 않다. 처음으로 사극을 연기한 현빈은 정조가 가진 부드러움과 강인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으며 제 몫을 다했다. 비밀을 숨긴 상책을 연기한 정재영은 반전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며 박성웅은 본연의 강렬한 카리스마로 '여심'을 사로잡는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살수를 연기한 조정석이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정조와 팽팽히 맞서는 그는 악역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했다.

역린에 출연한 조재현 김성령 박성웅 정은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들의 어우러짐이 아쉽다./영화 스틸컷
'역린'에 출연한 조재현 김성령 박성웅 정은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들의 어우러짐이 아쉽다./영화 스틸컷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정순왕후를 연기한 한지민이다. 정순왕후 역으로 처음 악역에 도전한 한지민은 당분간 악역을 선택하기란 어려울 듯하다. 과한 말투와 표정,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한지민은 정조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해 극의 활력을 떨어뜨려 버렸다.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 한 가지 장점을 꼽자면 이재규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장면이다. MBC '다모'에서 보여준 세련된 영상과 과감한 장면을 그대로 영화에 가져왔다. 그의 영상미를 좋아한 관객이라면 120분 동안 보여줄 '이재규식' 액션에 손을 들어줄 것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우왕좌왕한 '역린'은 결국 약점만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역린'이 범한 가장 큰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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