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씨네리뷰] '우아한 거짓말' 가장 잔인한 이야기, 이토록 우아하게 풀 수가…
입력: 2014.03.02 09:00 / 수정: 2014.03.01 20:41

김희애와 고아성 김향기 김유정 등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영화 스틸컷
김희애와 고아성 김향기 김유정 등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영화 스틸컷

[김가연 기자] "당신도 혹시 예비 살인자는 아닙니까?"

유난히 인상 깊은 대사가 많은 영화 '우아한 거짓말'(이한 감독, 유비유필름·무비락 제작)의 한 구절이다. 학교 내 집단따돌림의 심각성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만,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예비 살인자란 단어가 주는 어감이 썩 좋지 않지만, 실제로 집단따돌림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우아한 거짓말'은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14살 소녀 천지(김향기)가 숨겨놓은 비밀을 찾아가는 천지의 언니 만지(고아성)와 엄마 현숙(김희애)의 이야기를 그렸다. 숨겨놓은 비밀의 실체는 집단따돌림. 중학생인 천지는 반 아이들의 집단따돌림으로 죽음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그 후 현숙과 만지는 그 과정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그리고 천지가 남겨놓은 진짜 '비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영화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집단 따돌림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따라가면서 함께 상처받은 관객들을 위로한다. 영화는 '웃프다'(웃기다와 슬프다는 뜻의 합한 신조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웃기는 장면에서 함박 웃음이 나오려고 하면 슬픈 장면으로 눈물을 쏙 뺀다.

우아한 거짓말에 출연한 김희애(왼쪽)가 영화를 본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려 눈길을 끈다./김슬기 인턴기자
'우아한 거짓말'에 출연한 김희애(왼쪽)가 영화를 본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려 눈길을 끈다./김슬기 인턴기자

강한 소재를 다루는 방법은 말랑말랑하고 유연하지만, 영화에서 그리는 현실은 못이 박힌다. 천지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면 '세상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이 번뜩 든다. 어른들이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 그곳에서는 더 잔인한 비극이 일어난다.

영화의 한 장면. 천지의 따돌림을 주동하는 화연(김유정)의 생일, 생일파티의 시작은 2시지만 화연은 천지에게만 3시라고 이야기한다. 늦게 온 천지를 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문자 메시지 전체 창에서 이야기한다. 사방에서 울리는 '깨톡' 소리를 듣는 천지. 아이들은 교묘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천지를 괴롭힌다. SNS와 메시지 창이 발달로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은 좀 더 견고해졌다. 이 틀을 깨고 나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천지는 깨지 않고 자신을 버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천지가 숨겨놓은 비밀의 실을 찾아가는 엄마 현숙과 언니 만지. 두 사람은 천지의 죽음으로 한층 더 성장한다. 만지는 천지의 뒤를 쫓으면서 화연을 만난다. 만지는 자신이 몰랐던 천지의 이야기를 알아가고 끈끈한 가족애도 만들면서 스스로 한층 성장한다.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남겨진 현숙과 만지는 천지의 죽음으로 희로애락을 겪는다. 앞으로 꼭 슬프리라는 보장은 없고, 웃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은 없다. 누구나 사는 것은 똑같듯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행복하거나 슬퍼하는 느낌을 강요하진 않는다. 결말이 가진 여백의 미가 눈에 띈다.

영화에서 열연한 김희애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와 연출자 이한 감독.(왼쪽부터)/김슬기 인턴기자
영화에서 열연한 김희애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와 연출자 이한 감독.(왼쪽부터)/김슬기 인턴기자

'우아한 거짓말'이 가진 메시지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김희애가 오죽하면 '내가 연기를 가장 못 했다'고 말했을 정도. 김희애를 비롯해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등 어린 배우들은 200% 자신의 몫을 다 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만지 역을 맡은 고아성은 제 옷을 입은 듯 무덤덤한 여고생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김유정 김향기 두 어린 배우의 연기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해지기까지 하다. 김유정이 맡은 앙큼하고 영악한 화연, 김향기가 연기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천지는 모두 어려운 역할이다. 감정의 변화가 크며 섬세한 연기가 필요하다. 자칫 우울한 감정에 빠질 수 있고 일부러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두 여배우는 감정을 잘 조절하면서 관객을 영화 속에 폭 빠져들게 한다. 앞날이 창창한 여배우의 성장을 기대할 만한 대목이다.

'우아한 거짓말'이 가진 메시지는 다양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의 무관심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는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설 때 한쪽은 마음 묵직하게, 한쪽은 따스한 느낌이 동시에 든다. 독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던 '우아한 거짓말'은 가장 잔인한 비극을 가장 세련되게 풀었다. 개봉은 오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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