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연 기자] "아이돌이 왜 노래는 안 하고…."
눈을 '깜짝'하니 2013년의 마지막,12월의 첫째주가 지나가고 있다. 올해를 반성하며 마지막 달이라도 교양있게(?) 보내자는 마음에 주말에 볼만한 영화를 훑어봤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올 한해 영화계의 크고 작은 이슈들을 곱씹어 보게 됐다. 문득 지난 10월 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생각났다. 구름처럼 몰렸던 소녀팬들의 뜨거운 함성소리가 또 다시 귓등을 울렸다.

2013년, 무대 위를 누비던 '오빠들'이 과감하게 마이크를 내려놓고 선택한 두 번째 직업은 영화배우였다. '오빠'들은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가수가 아닌 배우로 참석해 당당하게 레드카펫을 거닐었다. 빅뱅의 탑(26·본명 최승현), 엠블랙의 이준(25·본명 이창선), 2PM의 옥택연(24)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이 말쑥한 슈트를 입고 해운대 야외무대에 등장했을 때 소녀팬들은 환호했고 그간 영화제에서 볼 수 없던 교복을 입은 여고생 무리가 만들어 낸 생경한 풍경은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충무로에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등장한 것이 올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해 걸그룹 미쓰에이의 수지(19·본명 배수지)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으로 '국민 첫사랑'이란 수식어와 더불어 연기력과 흥행, 모두를 거머쥐었다. 올해 '동창생(감독 박홍수)'에서 주인공을 맡아 열연한 최승현 또한 2010년 '포화 속으로(감독 이재한)'에서 스크린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다.

하지만 올 한해 유독 아이돌 출신 배우의 스크린 등장이 이슈가 됐던 이유는 그 수도 많았거니와 그들이 작품 안에서 주인공 혹은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열연했기 때문이다.
이준은 10월 개봉한 '배우는 배우다(감독 신연식)'에서 주인공오영 역을 맡아 베드신부터 강도 높은 액션연기를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준이 보여준 배우라는 직업에 갖는 열정이 더욱 그랬다. 그는 '배우는 배우다' 제작보고회에서 작품에 출연한 계기에 대해 설명하며 "시나리오가 굉장히 좋았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심한 상태였다"며 2009년 영화 '닌자 어쌔씬' 이후 스크린 컴백을 갈망했던 속내를 털어놨다.
최승현 또한 '포화 속으로' 이후 3년 만에 '동창생'으로 스크린에 돌아와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그는 '동창생'에서 남파 공작원 리명훈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표현부터 강도 높은 액션연기를 소화했다.
영화가 개봉한 뒤 '동창생'은 '최승현을 위한 영화'라는 호평 혹은 혹평을 받았다. 최승현은 이후 인터뷰를 통해 "촬영을 하면서 무대 위에 있는 아우라를 벗어 던지기 위해 노력했다. 빅뱅의 탑도 아니고 최승현도 아닌 리명훈이 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2PM 멤버 준호와 택연은 상대적으로 작은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준호는 지난 7월 개봉한 '감시자'에서 감시반의 멤버이자 일명 '다람쥐'라는 별명을 가진 캐릭터를 맡아 열연했다. 설경구, 한효주, 정우성 등 연기력이 빼어난 배우들 사이에서도 준호는 특유의 매력으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같은 팀 멤버인 옥택연 또한 지난달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결혼전야(감독 홍지영)'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브라운관을 통해 '연기돌'이란 수식어를 얻은 옥택연이었지만, 그 또한 준호처럼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캐릭터를 선택했다.
옥택연은 작품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비중이 작아서 오히려 좋았다. 차근차근 배워가고 싶다"고 겸손히 설명했다. 그는 "뭇사람들이 소위'연기돌'에게 갖고 있는 시선에 대해 누구보다 잘안다"며 "어떤 변명보다 꾸준히 연기해서 사람들이 가진, 그리고 가질 수밖에 없는 선입견을 깨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스크린 속 활약을 지켜보는 시각은 반반이다. 모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흥행을 위해 연기력이 기존 배우보다 부족한 아이돌을 캐스팅하는 일도 많다"라며 "준비가 된 아이돌 배우도 있지만, 스타성만 믿고 아이돌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는 작품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기력이 빼어나지만 스타성이 없는 무명 배우들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져 속상하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반면 '연기돌'이란 수식어가 주홍글씨처럼 느껴진다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모 그룹의 소속사 관계자는 "신인 연기자를 바라보는 것보다 아이돌 출신 배우를 대하는 사람들의 잣대가 엄격한 것 같다"며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현장에서 보니 '아이돌 출신'이라는 타이틀로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관계자들이 생각 외로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돌이 언제까지 아이돌일 수 있느냐. 그들도 나이를 먹는다"며 "아이돌은 수명이 짧은 직업이기에 데뷔 전부터 나중에 무엇을 할지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소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그룹으로 가수 활동을 하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꿈이나 장래희망까지 아이돌 그룹의 멤버나 가수는 아니다. 과정으로 생각하는 친구들 또한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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