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탐사보도-오! 나의 날씨여신①] 기상캐스터의 폭풍 같은 24시…오늘도 바람이 분다
- 오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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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8.31 11:32 / 수정: 2012.08.31 11:32
[ 오영경 기자] 두 차례 연거푸 지나간 태풍에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다시 늦여름 후텁지근한 날씨가 시작됐다. 이맘 때쯤이면 그 누구보다 정신 없이 바쁘고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날씨 소식을 전달하는 기상캐스터들이 그들이다. 이번주 <더팩트 탐사보도>에서는 '날씨여신'으로 불리는 이들의 삶을 밀착 취재했다.
강렬했던 태풍 '볼라벤'이 전국을 휩쓸고 간 다음날이자 '덴빈'이 다가오기 직전이었던 29일 오후, 여의도 MBC 기상센터에서 잠깐의 여유를 틈타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 한 기상캐스터를 만났다. 현직에 있는 기상캐스터 중 '최고참 선배'인 MBC 현인아 선임 캐스터로부터 기상캐스터의 24시간과 역사, 명과 암 등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는 현인아 캐스터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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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 예보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현인아 기상캐스터./ 노시훈 기자
◆'날씨여신'의 하루는?…기상캐스터의 24시
나는 MBC 기상캐스터 현인아다. 매일 같이 뉴스에서 사람들에게 오늘과 내일의 날씨를 전해주는 이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16년째에 접어들었다. 후배들은 현직에 있는 기상캐스터 중 최고참인 나를 보고 우스갯소리로 '기상캐스터계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후배들의 방송을 체크하고 코칭해줘야 하는 선임 캐스터인 나의 하루는 일반 직장인들보다 조금 늦은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의 출근으로 시작된다. 일반 기상캐스터들은 방송 시간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달라진다. 오전 6시 뉴스의 날씨 담당인 경우, 새벽 3시에 출근해 정오 무렵 퇴근한다.
밤 사이 들어온 국내외 날씨 정보들을 체크하는 것은 하루 일의 시작이자 기상캐스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과거, 현재, 미래를 파악해야 하고 유럽-일본 기상청 자료 등을 분석해야 한다. 또 간밤의 우리 날씨 방송 모니터는 물론, 타사 방송까지 모니터해 오늘 날씨 예보의 메인 틀을 미리 정해놓는다. 하지만 날씨는 가변성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예보가 나오면 또 새로운 밥상을 차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날씨 예보 방송에서 이리저리 바뀌며 펼쳐지는 예쁜 컴퓨터그래픽 역시 기상캐스터가 챙겨야 할 몫이다. 디자이너와 의논해 순서와 배열은 어떻게 할 건지, 숫자가 나을지 지도가 나을지 등을 결정한다.
방송을 위한 분장과 의상 준비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MBC의 경우 각 기상캐스터들을 담당하는 개인 코디네이터가 있다. 일주일 정도의 날씨를 미리 받아보고 이에 맞춰 의상을 부탁하면 코디가 협찬 받아온 의상 중에서 그날 그날의 날씨에 맞춰 결정한다. 비옷은 항상 여벌로 준비해두는 편이고 가을엔 스카프, 겨울엔 털목도리, 장갑 등 계절감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도 시기에 맞춰 챙겨다닌다. 메이크업의 경우 사내에 아티스트가 따로 있지만 개인에 따라 미용실에서 받고오는 경우도 많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방송이다. 날씨 예보는 생방송이 대부분이지만 9시 뉴스데스크의 경우 6시 정도에 미리 녹화를 해둔다. 하지만 이 역시 예보가 바뀔 경우 방송 직전 녹화를 새로 하거나 생방송으로 나가기도 한다. 녹화장은 방송에서 보는 모습과 달리 썰렁하다.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푸르죽죽한 배경을 뒤로 한 채 마치 그래픽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며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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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에 있는 기상캐스터 중 최고참인 MBC 현인아 캐스터./ 노시훈 기자
◆ 남자로 시작-여자가 대세…기상캐스터의 역사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우리를 '날씨여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기상캐스터'란 직업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와 관심도가 높아졌고 여성이 기상캐스터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 기상캐스터는 모두 남자였지만 현재는 남자 기상캐스터는 거의 없고 여자가 대부분이다. 국내 기상예보의 시초는 제1호 기상캐스터인 김동완 통보관의 예보였다. 1970년대 동양방송(TBC)에서 일상생활과 접목한 일기 예보를 시작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김 통보관은 80년대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문을 닫자 MBC로 적을 옮겼다.
1990년대까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기상캐스터는 여성 기상캐스터 1호인 KBS 이익선 캐스터를 시작으로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이후 현재는 연기자로 전업한 MBC 김혜은, 프리랜서 선언을 한 방송인 안혜경, 박은지 등 여성 기상캐스터들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고 지금은 기상캐스터를 꿈꾸는 20대 여성들이 많아져 채용 경쟁률이 치열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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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도 빗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잠이 깬다는 현인아 기상캐스터./ 노시훈 기자
◆ 의상논란부터 욕 전화까지…기상캐스터의 명과 암
기상캐스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짐과 동시에 '빛과 그림자'도 드러났다. 최근엔 기상캐스터들이 선정적인 의상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들의 노출 논란을 바라볼 때 걱정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 물론 나도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젊은 시절엔 나 역시 날씨와 맞는 의상보다도 내가 튀고 예뻐보이는 의상을 입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로 인해 날씨를 느낄 수 있는 의상이 기상 예보에 가장 적절한 옷차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기상캐스터는 외로운 직업이다. 칭찬보다는 욕을 먹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날씨 예보가 빗나갔을 때 받는 욕 전화는 우리 때부터 무수하게 거쳐온 일상이다. 기상센터에 걸려오는 전화의 70%는 욕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면서 일해야 한다.
나는 '폭우를 가장 많이 겪은 캐스터' 중 한 명이다. 어느 선배는 나를 보고 재해를 몰고다닌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가장 힘든 게 폭우로 이재민이 넘쳐나는데 또 비가 온다고 말해야 될 때다. 예보 전 뉴스에서는 할아버지가 집을 잃으셨단 인터뷰가 나오는데 그런 예보를 해야하는 상황이 너무 미안하다.
나는 요즘에도 꿈을 꾼다. 사실 어젯밤에도 꿨다. 새벽 방송에 지각해 예보가 제시간에 못나가는 꿈. 기상캐스터가 되기 전 잠결이 어두웠던 나는 요즘은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깬다. 언제 비가 오고 폭우가 될 지 모르기 때문에 매순간 넋놓고 있을 수가 없는 나. 이게 바로 내 직업 기상캐스터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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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연예팀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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