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확인 동영상: 절대 클릭금지'에서 정미 역을 맡은 강별./이새롬 기자 |
[김가연 기자] 요즘 스크린과 브라운관은 3~40대 배우들이 꽉 잡고 있다. 브라운관에서는 꽃중년 아저씨들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스크린은 과감한 노출이 돋보이는 '19금' 영화들이 중·장년 관객층을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20대 초반의 어린 여배우는 가뭄에 콩이 나듯 찾아보기 어렵다.
그중 눈에 띄는 인물이 신예 강별이다. 1990년생으로 올해 22살이 된 강별은 최근 개봉작 '미확인 동영상: 절대 클릭금지(이하 미확인 동영상)'으로 처음 스크린 주연에 도전했다. 평도 나쁘지 않다. 영화는 '국민 여동생' 박보영의 차기작으로 홍보됐지만, 강별은 박보영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개성 있는 마스크와 절제된 연기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개봉 후 영화 첫 무대 인사를 마친 다음 날 강별을 만났다. 실제 강별은 '미확인 동영상' 속 정미와 영화 '완득이'의 윤하, 그리고 SBS '옥탑방 왕세자' 레이디 미미, 그 중간 어디쯤 있었다. 유쾌하고 밝고 거침없으며 의사 표현과 주관이 뚜렷한, '요즘 20대'였다.
신인배우 강별이 <더팩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강별이 이번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고등학생 정미다. 봐서는 안되는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정미를 그 이후부터 점점 성격이 변해가고, 언니 세희(박보영 분)는 위험에 빠진 정미를 구하기 위해 남자친구 준혁(주원 분)과 동영상의 저주를 풀기 위해 애쓴다. 정미는 내적인 반전이 확연히 드러나는 인물. 심리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하지만 연기 초보인 강별에겐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결국 강별은 김태경 감독에게 일대일 연기 훈련까지 받았다.
"캐스팅되고 나서 감독님이 걱정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대일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매일 정미 분량의 신을 디지털 카메라에 직접 담아서 연습했죠. 가져가서 감독님께 보여 드리고 지적한 부분은 다시 연습하고…. 실제 정미가 돼서 감독님에게 문자도 하루에 한통씩 꼬박 보냈어요.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죠. 진짜 정미가 되기 위해 많이 애 써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꾸준히 몇 달 동안 연기 연습을 했던 덕분일까. 영화 속에서 강별은 돋보인다. 공포 영화답게 귀를 찢는 듯한 비명도 잘 지르고, 정미가 변해가는 과정도 흐트러짐 없이 보여준다. 맞고 넘어지고, 깨지는 장면에서도 강별은 몸을 던졌다. 액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강별은 큰 눈을 더욱 반짝였다. '절대 대역이 아니다'고 재차 강조하며 현장 뒷이야기를 술술 풀었다.
"정말 대역 안 쓰고 제가 모두 했어요(웃음). 죽는 장면에서는 와이어를 달고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죽는 장면만 두 번째인데, 이럴 때는 기분이 정말 묘하더라고요. 죽기 전 혼란스러운 상황에 유리 조각을 손과 발로 밟고 가는 장면이요? 실제 유리랑 슈가 글라스가 섞여 있었어요. 소품이 넉넉하지 않아서 실제 유리 파편을 좀 섞었죠. 리허설을 많이 하고 '한 번에 가자'고 했는데 다행히 금방 끝났어요. 촬영 끝나고 보니 손바닥과 무릎이 다 까지고…. 힘들었어요(웃음)."
강별이 영화에서 밸리 댄스를 추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지만, 실제 영화에선 많이 잘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강별의 연기 포인트는 액션과 더불어 밸리 댄스다. 극 중 정미는 밸리 댄스 동영상을 직접 찍어 포털사이트에 올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얻곤 한다. 그는 이 때문에 밸리 댄스를 열심히 연습했는데 막상 편집본에는 많이 잘려나갔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밸리 연습은 촬영 전에 학원에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찍을 때도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매우 많이 잘렸더라고요(웃음). 좀 아쉽기도 했지만 할 수 없죠. 그때 춘 안무요? 사실 그 장면이 정미 즉흥적인 '필'로 추어야 하는데 제가 연습한 정석대로 춰서…. 안무가 기억이 나긴 하는데 그 당시 배웠던 음악을 들으면 다시 출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몸 쓰는 연기가 체질인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제대로 된 액션 연기를 하고 싶어요."
강별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죽는 장면을 두 번이나 찍어 봤다', '유리 파편이 손바닥을 긁었다'는 이야기에도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먼저 보였다. 영화 중간 강별에 속옷만 입은 채 춤을 추는 갑작스러운 노출 장면 역시 '쿨'하게 촬영했다.
"그 장면 좀 갑작스러웠죠? 그런데 사실 훌러덩 벗고 추는 것도 아닌데요.(웃음) 그냥 비키니를 입고 춤을 추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배려를 해 주셔서 현장에는 소수의 스태프만 제외하고 아무도 안 계셨어요. 사각지대에 딱 카메라 4대만 있는 셈이었죠. 음악도 정말 좋아서 흘러가듯 춤을 잘 출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 장면이 정미라는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불편함 없이 촬영했어요."
강별이 주원을 유혹하는 장면에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라고 고백했다. |
강별의 명장면 중 또 하나. 극 중에서 성격이 변해버린 정미가 언니의 남자친구 준혁을 유혹하는 신이다. 정미가 핫팬츠를 입고 능글맞은 웃음으로 무릎을 살짝 접고 다리를 들어 올리며 은근슬쩍 준혁을 바라보는 이 장면에서 실제로 관객들은 웃음보를 터트렸다. 갑자기 준혁에게 들이대는 정미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을 터. 이 이야기를 하자 강별은 관객들보다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 장면 정말 재밌고 어색했어요. 주원오빠와는 같은 소속사라 더 친한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이에요. 노골적으로 유혹해야 하는데 서로 보면 웃음부터 나고…. 오빠도 얼마나 많이 웃었는데요. 그래서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NG가 나면 쑥스러우니 한 번에 가자'고 했죠. 진짜로 현장에서 촬영을 금방 끝낸 것 같아요."
실제 성격을 물으니 '미확인 동영상' 속 정미와 '완득이' 윤하, '옥탑방 왕세자' 레이디 미미의 중간쯤이라고 말했다. |
최근 몇년 사이 공포 영화의 흐름은 사회상을 적절하게 녹여 대중의 호응을 이끄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미확인 동영상'도 같은 맥락이다. 인터넷 문화와 소셜 네트워크, 익명의 댓글 등 최근 한국 문화의 경향을 정확히 반영했다. 이 영화가 주고 싶은 공포도 익명이 주는 오싹함이다. 그래서 영화는 피를 튀기지 않아도 싸늘한 분위기를 낸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연예인들 역시 달라졌다. 소셜 네트워크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익명과 댓글이라는 이름 모를 존재들이 언제나 그들을 괴롭힌다. 강별 역시 댓글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부모님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견디지 못했다.
"인터넷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연예면은 하나도 빠짐없이 체크하죠. 물론 좋은 댓글도 많아요. 하지만 안 좋은 댓글도 많죠(웃음). 보고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댓글은 부모님에 대해 안 좋게 표현한 것이었어요.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것은 좋은데 그 화살이 부모님에게 가는 것은 정말…. 이 영화를 보시고 많은 분이 댓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넷 댓글과 더불어 어느새 문화 트렌드가 된 'OO녀, XX남'에 대한 이야기도 물었다. 극 중 정미는 원치 않은 동영상 공개로 '밸리댄스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지하철에서도 온통 관심은 정미. 자기들끼리 수군대면서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정미의 사진을 몰래 찍는다. 이를 못 참은 정미는 자신을 찍었던 친구들과 싸우고, 그 모습을 또 다른 시민이 찍는다. '싸움이 나도 먼저 찍고 보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극 반영했다.
"지하철 장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저는 가상으로 체험한 것이잖아요. 많은 사람이 저만 보고 있고, 손가락질하는 기분. 가상이지만 실제로 기분이 정말 안 좋더라고요. 발가벗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정미 역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화제가 된 것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실제로 'OO녀'들이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왜곡돼서 그렇게 됐다면 상당히 참기 어려울 것 같아요."
<더팩트>독자들을 위해 하트 포즈를 취한 강별. |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을 반짝거리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던 강별과 한 시간 가량 남짓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실제 성격이 궁금했다. 강별은 "실제로요? 저 굉장히 단순해요(웃음). 왈가닥답기도 하고도.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자유롭기도 하죠.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것도 즐겨요. 가끔 제 홍보도 하고 얼마나 좋은데요"라고 말하며 또 해맑게 웃었다.
주원과 같은 소속사 선후배로 친하게 지낸다는 그. 요즘 주원이 KBS2 '각시탈'로 주목받고 있는데 부럽지 않으냐고 묻자 강별은 바로 "부러워요"라고 말하며 "가끔 문자를 주고받는데, 굉장히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요즘 날이 갈수록 멋있어지는 것 같아요. '각시탈'도 잘되고, 우리 영화도 잘 되면 참 좋을 텐데요…"라고 말끝을 흐리며 또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인터뷰 당일은 마침 지현우의 폭탄 고백 후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온종일 인터뷰 때문에 인터넷을 보지 못했다는 강별에게 지현우-유인나의 이야기를 건네자 "정말요? 여자로서 굉장히 부러운 것 아닌가요? 배우로서라면 조금 다른 상황이겠지만요. 저 같음요? 고백 받아보고 나서 말씀드릴게요"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 20대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강별은 수줍게 웃으면서 "제가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3번 정도 해 본 것 같아요. 강렬한 연애 말고, 풋풋한 연애 정도만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함께 연기하고 싶은 남자배우를 꼽아달라고 했다. 이 순간, 강별은 인터뷰하던 중 가장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에게 "꼭 남자배우가 아니더라도, 같이 하고 싶은 여자배우는?" 그리고 재차 "한 명이 아니더라도 여러 명도 괜찮다"는 질문을 더했지만 결국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
"글쎄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성별을 떠나서 함께 해보고 싶은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선생님 혹은 나이 많은 배우분들이 있으신 현장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성장해가는 느낌이 있거든요. 특히 MBC '인연만들기'에선 강남길, 영화 '완득이'에선 김윤석 선배님을 보고 혼자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전 아직 선생님들이 계신 현장이 좋아요."
강별은 당차고 거침없고 확실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캐릭터에 온전히 표현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얼마나 더 성장할까'가 궁금해지는 그런 여배우였다. 내년에 만날 강별이 기다려진다.
강별은 사진 찍는 동안도 시종일관 밝고 유쾌했다. |
더팩트 연예팀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