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반토막' 모건, SK하이닉스 실적·주가 오르자 한 달 만에 목표가 소폭 상향
해외 IB 의존도 높은 국내 증시 문제 지적도
한 달 전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단숨에 54% 낮춘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최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소폭 상향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서예원 기자 |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주가 시장에서 한 달 만에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의 '겨울이 다가온다'는 보고서로 외인 수급 이탈로 연일 폭락하더니, 주가가 급반등하자 반성문을 위장한 목표가 상향 보고서를 다시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사이 국내 반도체주와 코스피 지수는 크게 들썩였다. 삼성전자는 30거래일 연속 외인 매도세로 52주 신저가를 재차 갈아치웠고, 모건스탠리의 표적이 된 SK하이닉스는 한 달 사이 주가가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면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2700선 진입을 바라보던 코스피는 2500대 후반과 2600 초반 사이에서 두 달째 헤매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해외 IB의 말 한마디로 애먼 국내 증시만 피해를 봤다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나온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최근 SK하이닉스의 3분기 호실적 발표 이후 보고서를 통해 목표주가를 기존 12만원에서 13만원으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평가가 단기적으로 틀렸다"고 언급했다.
모건스탠리의 이번 보고서는 한 달 전 발간한 SK하이닉스의 부정 평가를 유지하면서도 '틀렸다'를 언급한 게 특징이다. 다만 틀렸다는 표현은 앞서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전망이 다소 낙관적이었고, 실제 실적은 더욱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자신들의 평가가 맞았다고 해석한 반어법에 가깝다.
그러나 시장이 받아들이는 체감은 모건스탠리가 보고서를 통해 시장에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SK하이닉스 주가가 모건스탠리의 목표가 하향 보고서 발간 이후 주가가 폭락했으나, 이후 발표된 3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자 SK하이닉스를 향한 모건스탠리의 부정 평가를 보란 듯이 뒤집어 통쾌하다는 여론이 모건스탠리가 '반성문' 보고서에 숨겨 놓은 속내보다 더욱 주목받고 있어서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15일 '겨울이 다가온다'는 제목으로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절반 이상 낮추고, 투자 의견도 '비중 확대'에서 '비중 축소'로 한 번에 두 단계 내리면서 사실상 매도 리포트를 발간했다.
투자자들에는 모건스탠리의 하향 리포트는 충격으로 다가온 듯하다. 당시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의 뉴욕증시 질주를 지켜보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주요 공급사인 SK하이닉스의 기대 실적이 양호하고 주가도 함께 오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주가가 모건스탠리의 부정 평가 이후 19일 장(추석 명절 후 첫 장)에서 하루 만에 6.14% 내리면서 15만원대까지 추락한 게 이를 대변한다.
이후 SK하이닉스가 다시 20만원대 주가(25일, 20만1000원)로 복귀하기까지는 3달 여가 걸렸다. 28일과 29일장에서 약세를 보이나 낙폭이 과하진 않다. 원인은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돈 3분기 실적 결과다. 주가를 내린 원인은 해외 IB의 부정 평가였으나, 주가를 다시 올린 원인은 해외 IB의 평가가 아닌 펀더멘탈(실적 등 기초체력)인 셈이다.
국내 반도체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건스탠리의 지난달 '반도체 겨울론' 보고서 발간 이후 공교롭게도 추락한 주가 회복에 애를 먹고 있다. /더팩트 DB |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해외 IB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SK하이닉스 주가가 모건스탠리의 목표주가 반토막 전망 이후 다시 19~20만원대로 올라서긴 했으나,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냈고 몸집이 큰 대형주인 만큼 국내 증시 전반 분위기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나오기 때문이다
타깃이던 SK하이닉스 뿐만 아니라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주주들도 모건스탠리에 원망 섞인 시선을 보낸다. 삼성전자는 모건스탠리가 보고서를 통해 언급하진 않았으나 당시 모건스탠리가 전반적으로 반도체 업종에 대한 부정 전망을 내놓았으니 삼성전자를 주시하던 외인 투자자들의 줄이탈이 발생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서다.
안 그래도 9월 들어 6만원대 중반까지 밀려났던 삼성전자는 모건스탠리의 '반도체 겨울론' 보고서 이후 연일 약세를 거듭하면서 전날(28일) 52주 신저가(5만5700원) 역사를 다시 썼다. 이 사이 외인은 역대 최장 기간인 30거래일 연속 매도라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전자는 오는 31일 확정 실적 발표를 앞둔 가운데 여전히 5만원대 주가에 머물고 있다.
시장에서는 해외 IB의 입김이 너무 과도하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동시에 국내 증권사가 발간하는 보고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로 보인다는 해석도 있다. 글로벌 영향력이 강한 해외 IB의 리포트를 맹신하는 일부 투자자들도 문제지만, 국내 증시 부양책을 펼치고 있는 금융당국 차원에서도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봐야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모건스탠리가 괜히 '한국 반도체 저승사자'로 불리겠나. 한 두번이 아니란 얘기다. 목표가 하향 후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주 수급이 전반적으로 많이 빠졌다. 이번 보고서도 일종의 반성문처럼 보이나, 세부 내용은 이전 평가와 결이 다르지 않다. 실제 주가가 오르자 그제서야 목표가 하향이 과도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라며 "모건스탠리의 반도체에 대한 평가는 더욱 지켜봐야 그 결말을 알겠지만, 이번 리포트를 보면 결국 또 '아니면 말고'식이 아니겠나"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해외 IB의 말 한마디에 국내 증시가 과도하게 흔들리는 것도 문제다. 모건스탠리는 SK하이닉스의 목표가 반토막 보고서를 발간하기 이틀 전 공교롭게도 SK하이닉스 주식 100만주를 매도했다. 해외 IB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 뿐만 아니라 국내 증권사, 금융당국도 이 사안을 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