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유인·시세조종 등 시장질서 교란 주장
금감원 조사 이후 시세조종 관련 소송 유력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영풍·MBK 파트너스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
[더팩트 | 김태환 기자] MBK 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이 대규모 법적 소송을 예고했다.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과 관련한 가처분 신청이 두 차례에 걸쳐 기각된 이후 투자자 유인 행위, 시세조종을 빌미로 MBK·영풍의 시장교란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고려아연은 22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K·영풍의 시장질서 교란행위와 관련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는 기자회견에서 "MBK와 영풍이 연이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결정이 날 때까지 일방적 주장을 유포하며 시장에 온갖 불확실성과 혼란을 불어넣은 것은 주가조작, 사기적 부정거래 등 시장 교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 "저들(MBK·영풍)이 해온 행태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명확히 밝힌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특히 MBK·영풍이 자신들의 자사주 매입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로 연이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기덕 대표는 "MBK와 영풍이 연이은 가처분 신청을 일단 제기해 두고, 결정이 날 때까지 일방적 주장을 유포하며 시장에 온갖 불확실성과 혼란을 불어넣어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함으로써 주당 6만원이나 더 높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 매수에 청약하는 대신 MBK의 공개 매수에 응하도록 유인하고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MBK가 공개매수 주식 매입가를 증액한 것도 시장 교란행위라 주장했다. MBK가 초반에 주당 66만원으로 가격을 설정한 뒤 75만원으로 증액했고, 추가로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과 동일한 83만원으로 증액했다. 특히 스스로 증액이 없다는 말을 번복한 점 등을 봤을 때 자신들의 공개매수에 응하도록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시장 교란행위라는 설명이다.
고려아연은 한화, LG화학, 현대자동차 등 우군들이 있어 충분히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사업 관계 맺고 있는 각 법인들이 다 각자의 생각이 있겠지만, 올해 실시한 정기주총에선 모두 우리 안건에 동의해 주셨다"면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주주 법인들의 이탈은 전혀 없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7.5%의 지분을 들고 있는 '단일 대주주'인 국민연금도 고려아연의 편에 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어떻게 판단할지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이번 국정감사 때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장기적 성장과 수익률 제고 관점에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걸 믿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고려아연이 현재 경영체제에서 우수한 성장과 수익률을 기록했기 때문에 김태현 이사장의 말대로면 고려아연 편에 설 것이라는 의미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는 국가핵심기술 신청도 순조로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외국 기업에 인수될 수 있는데, MBK가 경영권을 확보해도 훗날 해외 자본 등에 매각하기 어려워진다.
박 대표는 "지난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국가핵심기술판정신청서를 제출했고 2차 검토를 위해 자료요청과 분석 요청을 받아 자료를 제공한 상태다"면서 "고려아연의 기술은 국가 기간 산업으로 상정하고 개발해 왔기에 분명 등재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등 특정 해외기업이나 국가 자본을 활용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고려아연이 글로벌 기업이기에 주주구성을 제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표는 "고려아연의 현재 주주구성에서 외국인 지분이 18%나 된다"면서 "고려아연은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에서 사업을 하기에 (특정 국가 주주의) 제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
대규모 차입으로 인해 신사업과 경영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고려아연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박 대표는 "일반적으로 부채비율 100% 미만은 우량한 회사로 보는데, 고려아연은 지금까지 개별 재무재표 기준 20%대 부채비율 유지해 왔을 만큼 우량한 회사"라면서 "차입을 진행할 때도 은행과 금융기관 등 대주단이 내부적으로도 재무적 판단을 통해 차입을 승인했기에, 객관적으로도 고려아연의 재무 안정성은 검증됐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내일(23일) 자사주 공개매수가 끝난 뒤에는 영풍과 소송전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려아연은 구체적인 소송전 일정이나 계획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MBK·영풍 측의 반격을 예방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박 대표는 "MBK·영풍 대응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 아니다"면서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시도되는 소송은 시세조종과 관련한 민형사 소송이 유력하다.
고려아연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14일 MBK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 고려아연 주가가 최고가를 찍고 2시간 만에 폭락했고, 직전 거래일 종가 대비 0.1% 떨어진 가격으로 마감한 것과 관련해 MBK가 의도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은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한 상태다.
시세조종은 자본시장법 제176조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되며, 시세조종으로 인해 손해를 본 기업이나 투자자의 경우 손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장 교란행위의 경우 정말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한 특정 행위를 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운 반면 시세 조종은 명확히 주식을 매입한 시점이나 자금의 흐름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금융당국에서 예의주시한다고 발언이 나온 만큼 조사 결과도 시세 조종에 무게를 두게 된다면 충분히 법적 소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 대표의 기자회견과 관련해 MBK·영풍 측은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 말씀드린다"며 "어제 가처분 판결은 자사주 공개매수 위법성은 본안 소송을 통해 다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주주들이 저희 MBK 파트너스와 영풍의 공개매수에 참여해 주신 것은 최윤범 회장의 전횡으로 고려아연 기업 거버넌스가 훼손됐고,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가 하락했다는 최대주주의 진심 어린 우려를 지지해 주셨기 때문"이라며 "주주분들의 현명한 판단까지 폄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윤범 회장은 수많은 의혹으로 점철된 이그니오 투자 건,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들,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관여 의혹 등에 대해서 이제라도 주주들에게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kimthi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