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시민단체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 비자금 의혹 밝혀야"
이혼 소송 새 국면…노태우 측근 "돈 줬다면 'SK→노태우' 상식"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노태우 비자금'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혼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비자금 메모'와 관련해 SK 유입설을 반박하는 내용의 증언들이 잇달아 나오는 중이다.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 해당 비자금의 존재를 알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입장에서는 코너에 몰리고 있는 셈이다.
17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에서 노 관장을 비롯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의혹이 지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지난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이어 전날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국감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 비자금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법사위에서는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고, 기재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사실상 비자금을 증여했다는 점에서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노태우 비자금' 의혹이 국감장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것은 이미 예견됐다. 지난 6월 노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이 나온 이후 노 관장 측이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남긴 '선경(SK) 300억 메모',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 사진 등을 제출해 승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 관장 측은 현재로서 추징 방법이 없다는 판단 아래 '비자금 메모'를 법원에 제출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치권은 당사자가 사망하더라도 범죄 수익이라면 추징, 환수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하는 등 해당 '비자금 메모'의 실체에 대해 큰 관심을 쏟았다.
'노태우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정치권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더팩트 DB |
비자금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정치권은 알려진 300억원 외 추가 은닉 자금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지난 8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자금이 메모로 알려진 300억원 등 김 여사의 904억원, 2007~2008년 적발했지만 검찰·국세청이 묵인한 214억원+α,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동아시아문화센터로 기부된 147억원, 지난해 노태우센터로 출연된 5억원 등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노 관장은 '노태우 비자금' 문제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노 관장과 동생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아무런 사유 없이 불출석했다. 노 이사장은 지난 12일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 심포지엄이 열린 두원공대 파주캠퍼스 대강당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국감 재출석 요구에 응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나중에 말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노태우 비자금' 이슈는 정치권에서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 모두 환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는 최근 "'노태우 비자금'을 반드시 국고로 환수해 사법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며 검찰·국세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5·18기념재단도 지난 14일 대검찰청에 노 관장과 김 여사, 노 이사장을 조세범처벌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이들 단체 모두 이혼 소송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된 '비자금 메모'를 근거로 노 관장이 그동안 숨겨온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부정 축재 은닉 재산의 실체를 스스로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왼쪽)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위반 등에 대한 고발장 접수를 앞두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
'노태우 비자금'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이혼 소송 2심에서 재산분할 1조3808억원을 이끌어낸 노 관장 측의 주장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당초 노 관장 측은 '비자금 메모'를 제시하며 노 전 대통령이 건넨 자금이 SK 성장에 마중물이 됐다고 주장했는데, 'SK가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약속한 돈'이라는 정반대의 증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윤석천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돈을 줬다면, 최종현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줬다는 게 상식 아닌가"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SK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남겨 놓은 게 '300억원 메모'라는 것이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최측근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비자금 300억원'을 놓고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밝힌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SK 2인자였던 손길승 명예회장도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SK에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노 관장 입장에서 완전히 코너에 몰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자금과 관련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진 데다 국민적 눈총, 검찰의 칼날 등도 매섭다. 특히 300억원이 '건넨 자금' 아닌 '받은 자금'이라고 인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등 이혼 소송이 새 국면을 맞는 것은 상고심을 앞둔 노 관장에게 상당히 불리한 흐름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추후 상고심에서는 (노 관장 측이 제출한) 비자금 관련 증거에 대한 타당성 확인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