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보유 목적 단순투자서 일반투자로 상향
소액주주 만난 임종훈·'5인 공동체' 제안 임종윤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간 경영권 분쟁이 하반기에도 이어질 모양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서다빈 기자]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간 경영권 분쟁이 하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으로 이뤄진 대주주 3인 연합은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했다. 이들은 임시주총을 열어 정관을 변경해 이사회 정원을 늘려 신규 이사를 선임한다는 계획이지만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이를 막고 있다.
표심 잡기 위한 행보가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의 2대주주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할 수 있게 투자 목적을 변경했다. 양측은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또 소액주주연대의 지지를 이끌기 위한 행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국민연금 투자 목적 변경, 주주권 행사 나서나?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한미약품 주식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동시에 한미약품 지분 일부를 처분해 기존 9.95%에서 9.43%로 줄었다고 공시했다. 국민연금이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하면서 한미약품에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는 상장사 주식의 5% 이상을 보유하게 될 경우, 보유 상황과 목적 등을 공시해야 한다. 관련 사항에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5일 이내 보고·공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분 보유 목적은 경영 참여, 단순 투자, 일반 투자 등 세가지로 나뉜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주주권 행사의 적극성이다. 경영 참여의 경우 회사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적극적인 투자 형태다.
단순 투자는 기업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기업의 경영권에 영향력을 직접 행사하거나 관여하지는 않는다. 일반 투자도 적극적인 투자 형태로 볼 수 있다. 일반 투자는 경영 간섭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임원의 선임과 해임 △배당 제안 △정관변경 △보수 산정 △배당 확대 △임원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 청구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단순투자에 비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셈이다.
국민연금이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하면서 한미약품에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오는 9월로 예상되는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도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한미약품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약 6.18%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6월 열린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에서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동시에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선임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 당시 국민연금은 임종윤 이사의 저조한 이사회 참여율과 신동국 회장의 과도한 겸임을 반대 사유로 꼽았다.
국민연금이 임종윤 사내이사의 선임을 반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 당시 임종윤 사내이사 측이 냈던 안건에 모두 반대 입장을 냈다. 모녀 측(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의 안건에는 모두 찬성했다.
신동국 회장이 지난달 모녀 측과 의결권 공동 행사 약정과 대주주 3인 연합을 구성한 가운데,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인물이 양 측에 모두 존재하는 만큼 추후 표 대결에 있어 국민연금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는 미지수다.
임종훈 대표이사(오른쪽)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임종윤 사내이사는 한발 물러나 임종훈 대표이사와 대주주 3인 연합에게 '5인 대주주 경영공동체'를 결성하자는 제안을 담은 선언문을 발송했다. /박헌우 기자 |
◆ 침묵 깨고 소통 나선 임종훈 대표이사…임종윤 이사 행보에 주목
올해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 이후 침묵을 이어오던 임종훈 대표이사도 이례적인 소통에 나섰다. 임종훈 대표이사는 지난달 30일 한미사이언스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지난 13일 소액주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임종훈 대표이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5월 가족 모두가 합심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합의했는데 지켜지지 않아 매우 안타깝고 아쉽다"며 "다른 대주주(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들께서 언급하셨던 '한국형 선진 전문경영인' 체제는 이미 현재 한미사이언스를 중심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침묵을 유지하던 임종훈 대표이사가 직접 나선 이유는 지난달 29일 한미사이언스의 대주주 3인 연합이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위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임종훈 대표이사는 소액주주연대와도 만났다. 임종훈 대표이사는 소액주주와 만나 3인 연합이 요구한 임시주주총회 개최와 관련해 의문이 든다고 언급했다.
임종훈 대표이사는 "임시주주총회 관련해서 반대를 하고 있지 않지만, 필요한 게 뭔지에 대해 문의를 한 상황"이라며 "어떤 게 필요하셔서 이사회 인원수 조정을 원하시고, 임시주주총회를 여시는지 등 궁금한 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임종훈 대표이사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임종윤 사내이사는 한발 물러나 임종훈 대표이사와 대주주 3인 연합에게 '5인 대주주 경영공동체'를 결성하자는 제안을 담은 선언문을 발송했다.
선언문에는 △의결권 공동 행사 조건 △의사결정 조건 △양도 제한 조건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미사이언스의 경영권 소유 주주들 간의 협약을 통해 회사의 경영권을 공유하는 경영 공동체를 결성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임종윤 사내이사의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주주 3인 연합이 손을 잡고 의결권 공동 행사 약정을 했으며, 임종윤 사내이사는 임주현 부회장과 소송을 진행하며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임주현 부회장은 지난 3월 임종윤 이사를 상대로 대여금 266억원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낸 가압류 신청이 지난달 말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임종윤 사내이사 측 관계자는 "아직 (선언문에) 날인을 받지 못한 상태"며 "현재 날인을 받기 위해 진행 중이다"고 전했다.
대주주 3인 연합 측이 확보한 지분은 48.19%다. 형제 측의 지분은 29.07%로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확보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지분 6.14%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과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사진은 송영숙 회장(왼쪽부터)과 임주현 부회장, 신동국 회장, 임종윤 사내이사, 임종훈 대표이사. /한미그룹, 한양정밀, 더팩트 DB |
◆ 흔들리는 소액주주 표심
대주주 3인 연합은 임시 주총에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정원을 기존 10명에서 12명으로 변경하는 정관 개정(변경)의 건과 신규 이사선임(사내이사 2인, 기타 비상무이사 1인) 등을 의결하는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정관 개정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인 66.7%가 찬성해야 한다. 대주주 3인 연합 측이 확보한 지분은 48.19%다. 형제 측의 지분은 29.07%로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확보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국민연금공단과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만,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 당시 형제 측의 승리를 이끌었던 소액주주들의 민심도 예전과 같지 않다.
이준용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지난달 26일 임주현 부회장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임종윤, 임종훈 형제는 회사 가치를 200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만 해놓고 주총 이후 사실상 보여준 게 하나도 없어 소액주주 입장에선 실망감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번 임종훈 대표이사와의 간담회가 끝나고 만난 이준용 대표는 임종훈 대표이사에게 쌓인 오해는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임종훈 대표이사가 상속세에 대한 질문에는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준용 대표는 "임종훈 대표와 임종윤 이사의 상속세 문제가 해결돼야 오버행 이슈가 해결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해 줄 것을 당부했다"며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간의 소통의 부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저희가 느끼기에는 임시주총 이전에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준용 대표는 어느 한 쪽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준용 대표는 "대주주 3인 연합과 형제 측 모두 주주들을 위한 주가부양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공개 매수와 장내 매수를 기준으로 주가 부양 의지가 높은 쪽을 선택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직원들의 피로도도 상당할 것"이라며 "지난 3월 진행됐던 표 대결 상황과 달라진 점이 너무 많아 어떤 쪽이 승리한다고 예측하기도 어렵다. 기업의 호실적이 경영권 분쟁에 가려지고 있는 만큼 경영진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