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해외직구 전면 제한 발표…소비자 반발에 철회
알리 어린이 제품서 유해물칠 검출, 안전성 우려 여전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 해외직구 대책과 관련한 추가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우지수 기자] 정부가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상품에 대한 해외 직접구매(직구) 금지 정책을 소비자 반발에 결국 철회했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해외 플랫폼에서 들이는 직구 상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제한 범위가 커 소비자 선택 폭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기준치를 넘은 유해물질 검출 등 직구 안전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소비자 안전과 수요를 모두 챙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규제 방안 내용에 오해가 있으며 점진적으로 국내로 수입되는 상품들의 위해성을 검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해외직구 대책 방안을 좀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80개 '위해 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80개 품목에 대해 집중적으로 사전에 위해성을 조사하고, 위해성이 확인된 품목을 차단하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C 인증에 대해서도 의견을 수렴해 법률 개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플랫폼만을 규제 대상으로 삼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알리·테무 외에도 위해 제품 판매가 확인되고 있다"며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안전하지 않은 제품은 모두 차단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어린이 제품 34종과 전기·생활용품 34종 등을 포함한 총 80종 제품군에 대해 KC 미인증 제품이라면 직구를 제한한다는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해외직구로 유아용품이나 취미용품 등을 구매해 온 소비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 플랫폼 등에서 판매된 위해 품목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안전성 검사를 통과한 제품까지 KC인증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차단한다면 정책의 효과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해외직구 전면 제한 정책은 사실상 철회됐지만 해외직구 상품의 안전성 우려는 여전하다. 식품·의료제품 불법유통, 유해물질 검출 등 소비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17일 해외 직구 플랫폼을 조사한 결과 식품·의료제품 불법유통, 부당광고 게시물을 699개 적발했다고 밝혔다.
식약처에 따르면 제조·유통 경로가 명확하지 않은 의약품, 구매대행이 불법인 의료기기, 일상생활 안전과 밀접한 치약과 여성용품 등 제품들이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어 구매 시 주의가 필요하다. 위반 건수가 많은 일부 플랫폼에 대해서는 상시·추가 집중 점검을 시행하고 테무, 쉬인과는 올해 게시글 차단 요청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식약처 측은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 16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 머리띠에서 기준치의 270배가 넘는 유해물질을 검출했다. 이 머리띠 제품에 정자수 감소·불임·조산 등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을 넘겨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어린이용 시계에서는 기준치 대비 5배 가량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나왔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한국소비자연맹에서 열린 '해외 온라인 플랫폼 자율 제품안전 협약식'에서 퀸 선 웨일코코리아 대표(왼쪽부터)와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가 기념 촬영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
정부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발 플랫폼의 무분별한 진출을 견제하고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14개 기관이 협력하는 '해외 직구 종합 대책 TF'를 구성했고 이번 직구 규제 역시 TF 논의 결과 마련된 대책이다. 최근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해외 직구 플랫폼이 무관세, KC 미인증 상품 등으로 가격 경쟁력 우위를 점하고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 퀸선 웨일코코리아(테무) 대표 등과 함께 위해 제품을 자체 차단하는 '자율 제품안전협약'을 맺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국내에서 제품안전에 대해 맺은 최초 협약이며 테무는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와 체결했다.
전문가들은 "해외직구 규제 방안이 TF 운영 과정에서 급하게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며 "무조건적인 직구 차단이 아닌 사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비자들의 구매를 막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에 제품을 유통하는 판매자들이 규제 정책을 준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플랫폼 사업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규제를 발표해서 소비자 반발을 샀다. 정부가 알리, 테무 등 해외 플랫폼과 판매 패널티 정책을 협의해서 판매자들이 안전한 제품을 유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현재 해외직구 제품은 인천 세관만 통과하면 택배를 통해 집으로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관세청 직원이 급격히 늘어나는 직구 물품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부처가 TF를 구성하고 협력한 지 3개월이 채 안됐는데, 조급하게 정책을 만들다 보니 각 부처 입장을 조율하지 못한 것 같다. 신중한 정책 개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