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5대 은행 정기예금 잔액 849조…전월比 19조 빠져
은행권 "안전자산 선호 등 오히려 정기예금 수요 늘어"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가 연 3%대로 떨어지면서 매력도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팩트DB |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금리가 정점을 지났다는 전망에 정기 예금 금리가 연 3%대까지 떨어졌다. 이에 지난 한 달 사이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20조 원 가까이 줄어들며, '머니 무브'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2월 말 정기예금 잔액은 849조2957억 원으로, 전월(868조7369억 원) 대비 19조4412억 원 감소했다.
5대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9월 약 842조 원, 10월 856조 원, 11월 869조 원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연말에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통상적으로 은행권 예금 잔액이 대출 상환 등 이유로 연말과 분기 말에 감소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감소 폭이 큰 편이다. 지난달 감소 폭은 전년 같은 기간 감소 폭(8조8620억 원)보다도 2배가량 많다.
사람들이 정기예금에서 돈을 빼는 이유는 떨어진 예금금리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예금금리의 매력이 떨어지자 예금만기가 돌아온 예금주들의 재예치율이 감소하면서 예금잔액이 줄어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고금리 시기 연 5%를 웃돌던 정기예금 금리가 대부분 연 3%대로 내려왔다.
이날 기준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만기 1년 정기예금 상품 36개의 최고금리(우대금리 포함)는 평균 3.625%였다. 특히, 5대 은행의 최고금리는 연 3.55~3.90%에 형성되며 평균 3.68%의 금리를 보였다. 연 4%가 넘는 상품은 DGB대구은행·Sh수협은행·전북은행·제주은행 등 모두 지방은행 또는 특수은행이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고금리 혜택을 누리며 안전 자산으로 대피했던 자금의 '머니 무브'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더팩트 DB |
정기예금 금리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를 시사하자, 이런 예측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은행채 등 국내 시장 금리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은행채 1년물 금리는 4.143%에서 3.714%로 내렸다.
미국 CNBC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셸 보먼 연준 의원은 지난 8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 은행가협회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우리 목표인 2%에 계속 가까워진다면, 결국 정책이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변하는 걸 막기 위해 정책금리를 낮추는 과정을 시작하는 게 적절해질 것"이라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또한 지난달 열린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올해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2022년 말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가 연 5%대까지 치솟으면서 나타난 '역머니무브'가 올해 '머니무브'로 전환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일부 대기성 자금은 증시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일평균 투자자예탁금은 50조8048억 원으로, 지난해 11월(47조3312억 원)과 10월(47조9096억 원)에 비해 3조 원가량 증가했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상반기 증시가 오를 거란 기대감에 예수금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연말에 이어 연초까지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도가 높은 상태"라고 전했다.
다만, 정기예금 금리가 더 떨어지기 전에 '막차'를 타자는 수요도 혼재돼 있다고 은행권은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안정한 대내외 환경 속 최근 홍콩 ELS 사태 등으로 투자 상품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오히려 안전자산인 은행 예금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레고랜드 사태 때 고금리로 유치했던 정기예금 만기 도래자금이 다른 투자처로 이탈된 부분이 있다"라면서 "다만, 연초 이벤트 등을 통해 우대금리를 더 주고 있는 만큼 새로운 고객의 수요가 되살아나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