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7일 2차 토론회서도 의견차 확인만
개미 "당국 개선 의지 필요" vs 당국 "어렵지만 방법 모색"
지난 11월 5일 공매도가 한시적(8개월)으로 전면 금지됐으나, 공매도 제도 개선과 전산화 시스템 구축 등을 이유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 | 이한림 기자]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지 두 달가량이 지났지만 화살은 공매도 '금지'보단 '제도'로 향하고 있다. 홍콩계 글로벌 투자은행인 BNP파리바와 HSBC가 지난해까지 국내 일부 종목을 대상으로 장기간 무차입 공매도한 사실도 적발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공매도의 역기능보다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공정거래로 규제하고 있는 무차입 공매도를 원천 봉쇄하는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해 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거래소) 사옥에서 열린 공매도 관련 2차 토론회(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화 토론회)에서도 개인 투자자들과 금융 당국(당국) 측 대립은 팽팽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무차입 공매도 근절을 위한 시스템 전산화 방안으로 증권사별 대여 차입(대차) 거래 플랫폼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시스템 구축을 해야 하는 당국이나 기관 등은 표준화된 플랫폼 사용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게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간 거래소 등 유관기관이 주최한 공매도 관련 토론회에서 제기된 패널 형평성 문제는 이날 다소 해소됐다. 앞서 금투협에서 열린 1차 토론회(공매도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 관련 토론회)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반발하며 당일 불참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를 포함해 명단에 이름이 없던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작가도 참여하면서다.
박순혁 작가(가운데)가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열린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화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유튜브 캡처 |
특히 박 작가는 그간 인터뷰나 유튜브 등 여러 자리에서 '공매도 전산화는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한 만큼 토론회에서도 당국은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는 입장만 내놓을 뿐 개선안을 도출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일갈했다.
박 작가는 "공매도 차입이나 무차입을 걸러낼 시스템을 갖출 의무는 증권사에 있다. 트루웹을 적용한 대표 증권사인 하나증권은 현재도 무차입 공매도를 걸러내고 있다"며 "금융위원회가 이 시스템 도입을 증권사에 의무화하면 될 일이다. 금융당국 결단 필요하다"고 잘라 말다.
그러나 올해 마지막 공매도 토론회 역시 1차 토론회처럼 각자의 의견 차이만 확인하고 끝났다. 관계기관 역시 한 증권사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트루웹 등 기술을 타 증권사나 외인 투자자까지 적용하기 어려울뿐더러, 실시간 잔고관리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도 매도자의 모든 거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등을 이유로 비현실적이라고 피력했다.
송기명 거래소 주식시장부장은 "대차거래 플랫폼을 쓴다는 건 거래 방식을 표준화하는 건데 공매도 차입이 거래 관계자 간 협상이 핵심인 장외에서 거래되는 특성과 맞지 않다"며 "외인과 기관은 잔고 관리에 대한 기록은 사무관리 회사, 자산 보관관리는 수탁은행, 공매도 주문을 받는 건 증권사가 하는 만큼 업무 수행 기관이 다 다르다는 문제도 있다. 개인에 대한 모든 거래 내역은 증권사가 관리하고 있지만 투자자 자신이 아니면 실시간으로 제3자가 투자자의 잔고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한 공매도 제도개선방향'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 해 넘긴 공매도 개선 방향 "완전한 전산화 어렵다면 단계적 구축"
당국이 추진하는 공매도 제도 개선은 기존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상환 기간과 대주담보비율을 각각 90일, 105%로 똑같이 적용해 투자자별 차별 논란을 불식하려는 게 핵심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지난달 23일부터 무차입 공매도 방지 전산 시스템 구축을 위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공매도 전산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 중이다. 김수영 금융위 부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여해 민정당 협의회를 거친 공매도 제도 개선안도 해를 넘겼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 구축은 시간이 더욱 걸릴 모양새다. 현재 공매도 주문은 최초 대차거래 시 대상을 찾는 부분이나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시스템 등은 전산화되지 않았으나, 나머지 사고파는 행위 등은 전산화가 돼 있다. 공매도 잔액 역시 한국거래소 정보거래시스템에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당국도 개인 투자자들의 요구하는 공매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공매도 시스템 전산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완전한 전산화나 의무화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특정 거래가 공매도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히 판단하려면 계좌 잔고나 대차정보, 계좌 미표시 매도 권한 발생 정보 및 결제 이전 매수·매도 주문량 등 매도자의 모든 거래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문제는 이 경우, 매도자가 아닌 제3자가 관련 정보를 모두 파악할 수 없으므 대여주식이나 투자자 집단계좌 등 공매도가 아닌 일반 거래 기법의 상당수가 '이상한 거래'로 발견될 여지도 높다. 완전한 전산화가 아니고서야 정확한 판단 여부가 어렵다는 의미다.
이에 단계적인 전산 시스템 구축을 통해 시장 신뢰 확보가 우선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공매도의 경제적 기능을 살피고, 당국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장하는 공매도가 불공정 거래 행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규제 수단을 자주 활용하는 것보다는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해석에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개인 투자자들의 비중이 절반 이상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큰 편이다. 또 한국처럼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자주 하는 나라도 없다. 공매도의 경제적 기능을 기관은 물론 개인도 스스로 인정하면서 합리적인 시장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면서도 "공매도 완전 전산화는 투입되는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동의하지만 가능한 부분은 단계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