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유치 실패…기업 별도 입장 없어
유치전 진심이었던 기업들 아쉬움 드러내
분위기 수습 나선 경제단체 "한국 위상 알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8일(한국시간)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콩그레 회의장에 도착하고 있다. 이날 최태원 회장은 마지막까지 부산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으나,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AP.뉴시스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열심히 했는데, 아쉽네요."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로 부산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선정된 이후, 그간 유치 총력전을 펼친 주요 기업들은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 18개월 동안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하는 등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진심'이었던 만큼, 기업 내부적으로 진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리를 다쳐 목발에 의지한 채 유치 활동을 벌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감기로 목소리가 잠겼음에도 막판까지 민간 외교를 이어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주요 기업인이 유치 활동을 위해 이동한 거리는 지구 197바퀴(790만㎞)에 달한다.
2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사우디 리야드를 택했다. 29일 새벽에 나온 결과는 사우디 119표, 부산 29표, 이탈리아 로마 17표로, 로마를 누르고 2차 결선에 올라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쓰겠다는 전략은 압도적인 표 차이 탓에 1차 투표에서 막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열화와 같은 국민 기대에 못 미쳐 송구스럽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재계 안팎에서도 진한 아쉬움이 감지된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왔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빙 승부'를 펼칠 것이란 투표 직전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 다소 허무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날 주요 기업들은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부산엑스포 결과와 관련한 별도 입장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한덕수 국무총리, 박형준 부산시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9일 새벽 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 결과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
주요 기업들이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18개월 전인 민간유치위원회 출범 이후다. 정부와 함께 원팀을 꾸려 기업별 중점 담당 국가를 선정, 교섭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 기업인들이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해 누빈 거리는 500여 일 동안 지구 197바퀴를 넘겼다. 대기업 그룹사 12곳은 총 175개국, 3000여 명의 정상·장관 등을 만났으며, 각국에서 부산엑스포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 연 회의는 총 1645회로 파악된다.
유치전의 중심에는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5개 기업이 있었다. 이들은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룹 내부에 엑스포 전담팀을 구성, 주요 경영진이 해외 출장 때마다 해당 국가 관계자를 만나 부산 지지를 요청하도록 했고, 이는 재계 총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최태원 회장, 이재용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은 BIE 투표 직전까지 파리 현지에서 교섭 활동을 벌이며 최후의 한 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27일 파리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취재진을 향해 감기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음을 알리며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부산엑스포 공식 리셉션에서 목발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민간유치위원장을 맡아 부산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뛴 최태원 회장의 아쉬움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테니스를 치다가 다리를 다쳤음에도 지난 6월부터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로 3개월 이상 주요 일정을 소화하는 등 엑스포 유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깁스와 목발에는 부산엑스포 로고를 새긴 홍보 패드까지 붙였다. 최태원 회장은 BIE 총회 리셉션에서 건배사로 '행운을 빈다'는 의미의 'break a leg'(다리가 부러졌다)를 외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의 투혼은 막판까지 이어졌다. 이달 초 회원국들이 몰려있는 중남미, 유럽의 7개국을 방문하는 등 비행 거리만 2만2000㎞, 지구 반 바퀴에 이르는 강행군을 펼쳤다. 이날 개최지가 결정될 때도 현장을 지켰다. 재계에서는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드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쏟은 최태원 회장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날 기업별로 엑스포 관련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경제단체들이 "한국의 위상을 알렸다"는 내용의 논평을 통해 다소 침통한 분위기를 수습했다. 대한상의는 "기업들은 글로벌 인지도 강화,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등 의미 있는 성과도 얻었다"고 설명했다. 한경협은 "엑스포 유치 노력 과정에서 이뤄진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는 향후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총은 "유치 활동은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들과 만남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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