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 '돈 잔치' 우려…"산업은행, '졸속 매각' 중단해야"
영구채로 인한 지배구조 불확실성도 여전
HMM 노동조합은 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졸속 매각' 중단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이승현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부위원장, 전정근 HMM해원연합노동조합 위원장,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 이기호 사무금융노조 HMM 지부장이 산은에 노조 의견서를 전달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허주열 기자 |
[더팩트ㅣ여의도=허주열 기자]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HMM 지분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HMM 노조가 9일 이번 매각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중단할 것을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매각을 반대하는 노조의 의견서 산은에 전달, 강석훈 산은 회장과 김양수 해양진흥공사 사장과의 면담 추진 등 지속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HMM 노조는 이날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HMM 매각 과정은 산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의 발전과 무관한 부실·졸속 매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의 HMM 지분 매각 작업은 전날(8일)까지 적격인수후보에 포함된 동원, 하림, LX가 실사작업을 마무리했고, 오는 23일 본입찰을 앞두고 있다.
HMM 노조는 먼저 적격인수후보에 포함된 3개 기업의 인수자금 조달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들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6000억~2조 5000억 원으로 시장에서 예상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HMM 최저 매각가인 5조 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노조 측은 "이들 3개 기업은 막대한 외부 자금의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사모펀드 등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오직 자본 수익 회수에만 몰두하는 투기자본의 (돈) 잔치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인수기업의 신규 투자 사업에 HMM의 유보자금이 유용되는 부실 경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의 HMM 지분 매각 작업은 전날(8일)까지 적격인수후보에 포함된 동원, 하림, LX가 실사 작업을 마무리했고, 오는 23일 본입찰을 앞두고 있다. HMM 컨테이너선. /HMM 제공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HMM의 유동 자산은 14조 원에 달한다. HMM 노사가 힘을 합쳐 고난의 시기를 지나면서 축적한 이 자산을 덩치가 작은 중견기업이 인수해 본업인 해운업이 아닌 다른 곳에 유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적격인수후보에 포함된 3개 기업은 인수자금의 절반 이상을 금융권 및 사모펀드 등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데, 이렇게 들어온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막대한 차익을 조기에 실현하면서 자본을 빼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3개 기업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동원그룹 측은 자금조달 계획에는 문제가 없고, 본입찰 전까지 실사한 자료를 토대로 입찰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노조는 매각 이후에도 HMM의 지배구조에 불확실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산은이 중도상환을 청구한 HMM 영구채 1조 원을 제외해도, 나머지 1조7000억 원 규모의 영구채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매각 이후에도 정부는 추후 새로운 주식 32.8%(2025년 말 기준)를 소유하게 된다. 여기에 국민연금 등 다른 정부기관 지분을 더하면 사실상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며 "다른 대기업들이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직 남은 영구채를 어떻게 처분할지 정부가 계획을 밝힌 후에야 HMM을 실질적으로 인수할 여력이 있는 현대글로비스 등 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고, 한국의 해운업을 위한 올바른 민영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재진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이 9일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HMM 졸속 매각 중단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허주열 기자 |
아울러 한국 해운산업 발전의 정책적 대의에 따른 매각 계획 수립, HMM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도 촉구했다.
노조는 "수출입 비중이 큰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상 국적선사를 중심으로 하는 해운업의 발전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며 "HMM을 졸속 매각하면 대한민국의 해운산업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HMM에 유보된 자본을 약탈하려는 그 어떤 자본의 개입도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산은의 이번 매각 작업이 유찰되도록 본입찰 전까지 지속적으로 매각 반대 의사를 표출할 계획이다.
이기호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HMM 지부장은 기자회견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계획에 대해 "산은 회장과 해양진흥공사 사장과의 면담을 추진해 다시 한번 저희들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라며 "필요하다면 현수막 게시, 조합원 결의대회 등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노조 조합원의 의지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