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5조2511억 원 규모 선박 17척 수주 쾌거
2015년부터 중동지역 방문…노르웨이 등 선박 박람회 참여 등 현장 경영 확대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통신(IT) 박람회 'CES 2023' 프레스 컨퍼런스 발표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바다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한다는 목표인 '오션 트렌드포메이션' 전략을 소개했다. /HD현대 |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져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이다. 한번 시작하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다."
정주영 선대회장이 1971년 9월 영국 바클레이은행에 차관 도입을 유치하려고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가 한 말이다. 당시 정주영 선대회장은 지갑에서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차관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주영 선대회장의 도전정신과 재치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정 선대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은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중동을 비롯한 전 세계 현장을 누비며 잠재력을 분출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중동 지역에 수 차례 방문하며 현지에서 입지를 다지고, 세계 주요 선박 박람회에 직접 참석해 HD현대 조선 계열사의 기술력을 직접 알리는 등 현장 경영으로 우수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카타르에너지와 5조2511억 원 규모의 17만4000입방미터(㎥)급 LNG운반선 17척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단일 계약 기준으로 한국 조선업계 사상 최대 수주 금액이다.
이번 카타르 LNG운반선 수주는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데 나온 성과다.
정 사장은 카타르 현지에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카타르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개최한 ‘한·카타르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양국은 카타르 랜드마크와 태양광 발전소 건설, LNG 선박 제조, 천연가스 수입 등에서 그동안 상호 호혜적 협력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기선 사장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서 조선을 비롯한 에너지, 정유 부문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해왔다.
정 사장은 지난 2015년 HD한국조선해양(당시 현대중공업) 기획실 총괄부문장일 당시부터 세계 최대 석유생산회사인 '아람코'와 관계를 다져왔다. 아람코는 사우디에 조선소를 짓는 '아람코 조선소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정기선 사장이 주도한 첫 해외사업이었다.
정 사장은 합작 조선소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챙기며, 사우디 현지에 수 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정 사장은 정유와 에너지 분야에서도 아람코와 협력 관계를 강화 해왔다. 지난 2019년에는 HD현대(당시 현대중공업지주)가 아람코에 HD현대오일뱅크 주식 4166만4012주(17%)를 1조3749억 원(1주당 3만3000원)에 매각하는 계약 하을 마무리짓기도 했다.
정주영 선대회장(왼쪽)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건설 현장을 둘러보며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
정기선 사장은 최근 조선업계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친환경 전환'을 위해 세계 유수의 박람회에 직접 참석하며 '기술 세일즈'를 펼치고 있다.
정 사장은 내년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정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기술 우선(Tech-First)' 전략을 공유할 예정이다.
그는 올해 초 열린 'CES 2023' 프레스 콘퍼런스에도 참석,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바다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오션 트랜스포메이션(Ocean Transformation)'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정 사장은 주요 경영진과 함께 싱가포르서 열린 '가스텍 2023'에 참석, 글로벌 기업들을 만나 HD현대의 첨단 기술을 소개했다.
HD현대는 글로벌 선사·선급과 친환경 연료 사용·운송과 관련된 인증을 진행하고, 자체 기술 세미나를 열어 △암모니아 추진·운반선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차세대 LNG 운반선 등을 선보였다.
정기선 사장은 지난 6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조선 해양 박람회 '노르시핑 2023'에 가삼현 HD한국조선해양 부회장, 안광헌 HD한국조선해양 사장 등 최고 경영진들과 함께 참가했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영국 로이드선급·노르웨이 해운사 크누센·HD현대중공업과 탄소배출량 산출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로이드선급과 라이베리아기국으로부터 다목적 가스운반선에 대한 기본설계 인증(AIP)을 획득했다.
재계 관계자는 "HD현대가 에너지 기업을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생산을 추진하고, 이를 친환경 선박으로 운송하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정기선 사장이 세계 전역에 걸친 세일즈 활동으로 선도적인 기술력을 알리고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