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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편 공급 증대 요구하는 UAE…국내 항공사는 '속앓이'
입력: 2023.10.12 09:24 / 수정: 2023.10.12 09:24

12~13일 항공회담 앞두고 업계 긴장

한국과 아랍에미레이트의 항공회담을 앞두고 국내 항공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더팩트 DB
한국과 아랍에미레이트의 항공회담을 앞두고 국내 항공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12~13일 이틀 동안 열리는 한국과 아랍에미레이트(UAE) 항공회담을 앞두고 국내 항공 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UAE 측에서 양국 간 항공편 공급 증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 업계는 난감한 모양새다. 이미 중동계 항공사들의 아시아발 유럽행 수요 점유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간 공급이 증대될 경우 그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항공 업계 관계자는 "중동 항공사들은 국가로부터 대량의 보조금을 받아 챙기며 시장을 교란해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며 "공정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UAE에 항공편 공급을 늘려주게 되면, 결국 국내 항공 시장이 중동 항공사들에 의해 잠식당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 한·UAE 노선에 국적사는 약자

현재 한국과 UAE 간 항공노선에 있어 한국 항공사들은 약자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양국 항공협정상 주 15회를 운항할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대한항공만 218석짜리 A330을 주 7회 운항한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수요 부족으로 올해 4월에서야 재개했다. 반면 UAE의 경우 에미레이트항공이 초대형기인 517석짜리 A380을 주 7회 띄우고 있고, 에티하드항공도 327석짜리 보잉787을 주 7회 운항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한·UAE 간 공급은 약 41만 석 규모였다. 하지만 실제 양국 간 수요는 공급의 36% 수준인 15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AE 항공사들이 공급을 공격적으로 늘렸던 것은 한국발 유럽행 환승 수요를 잠식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에미레이트항공 69%, 에티하드항공의 62%가 환승객일 정도다.

게다가 에티하드항공까지 A380을 띄울 경우 하루 중동노선 공급석만 1000석을 훌쩍 넘는다. 이미 에티하드항공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3월까지 A380을 매일 운항하기도 했다. 이렇게 될 경우 하루 공급석 기준으로 에미레이트항공과 에티하드항공의 단 하루의 운항편이 대한항공의 주 5회를 운항하는 편수와 맞먹는다는 의미다.

국내 항공사들은 만약 UAE의 증편 요구를 허용할 경우, 국적사의 중동 직항노선에 더욱 심한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UAE 간 주 7회가 추가 증편되면 연간 1300억 원 수준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중동 항공사들의 시장 교란 심각

UAE 등 중동 항공사들은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재정 부담에 대한 걱정 없이 국제항공노선을 확장, 단기간에 몸집을 부풀리며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 같은 보조금 수령·혜택은 공정 경쟁의 틀을 무너뜨리고 있다.

UAE와 카타르의 경우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여 년간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국영 항공사에 520억 불, 한화로 약 66조 원의 비정상적 혜택을 제공해 왔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더구나 노동조합 결성 금지, 근로자 권리 제한 등 제도적 장치로 낮은 인건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중동에 취항하는 다른 국적 경쟁 항공사들이 당연히 지출해야 하는 비용인 소득세, 유류세 납부 의무도 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 경쟁은 전 세계 항공사들의 막대한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 노선의 공급을 줄이거나 철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02년 UAE와 항공자유화 항공협정을 체결했는데, 중동 항공사들의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다. 델타항공의 경우 2016년 애틀랜타~두바이 노선, 유나이티드항공 또한 같은 해 워싱턴~두바이 노선을 단항했다. 올해 3월에 들어서야 유나이티드항공이 주 7회 뉴욕~두바이 노선을 띄웠지만, 이미 미주~중동 시장의 패권은 중동 항공사에 돌아간 뒤였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중동 항공사의 저가 공세로 구주 노선의 수송객이 매년 대폭 감소해 어쩔 수 없이 2003년 로마 노선, 2004년 파리 노선, 2013년 프랑크푸르트 노선을 폐지했다. 미국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지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동 항공사들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인해 유럽 항공사들의 실적 악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중동노선·아시아행 노선의 운항을 잇따라 중단했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2015년 동남아시아·아프리카행 노선 20여 개 운항을 중단했으며, 에어프랑스는 아부다비, 도하, 제다, 첸나이, 하노이, 프놈펜 등의 운항을 중단하는 등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 세계 각국 대책 마련에 나서

UAE 항공사들은 경쟁사들의 직항 노선에는 덤핑에 가까운 가격 정책을 구사한다. 대신 경쟁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노선에는 고가 전략을 고수한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두바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노선에는 대폭 할인된 가격의 항공권을 제시해 한국 국적 항공사들의 유럽 수요를 빼앗아 가고, 국적 항공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아부다비 노선 등에는 비싼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비정상적 경쟁 체제가 이어질 경우, 미주·유럽 항공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 항공사들이 노선을 축소하거나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UAE 항공사들의 무분별한 진입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비싼 항공권을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피해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매커니즘 아래에서는 국가 기간 산업인 항공산업의 몰락은 물론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세계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미국 항공사들은 2015년 2월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고, 정부에 오픈스카이 정책을 강력히 지지하나 공정하고 대등한 경쟁을 보장받기 위해 현재 오픈스카이 협정에 규정된 바와 같이 중동 국가들과의 재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재협상 기간 동안 중동 항공사들의 미국 내 신규노선 취항을 잠정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결정은 미국 의회에서도 지지한 바 있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2015년 3월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공동으로 중동 항공사의 보조금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이들과의 공급력 협상을 재추진하는 한편, 보조금 금지 규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정부도 같은 해 5월 EU와 중동 국가 간 공급력 개정 협상이 필요하며, 이와 같은 협상이 완료되지 않는 한 중동 항공사에 암스테르담 노선 추가 운수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중동 항공사들을 제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2015년 12월 EU 집행위원회는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이 정부 보조금 수령으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항공협정 개정 추진 의사를 밝혔다.

◆ 국가 기간 산업 보호 위한 조치 필요

일자리 상실도 문제다. 만약 중동 항공사에 주 7회 운항 횟수를 증대해 줄 경우, 한국에서 약 1900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미 미국의 경우 중동 항공사로 인해 1개 노선이 폐지될 때 15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바 있으며, EU 또한 중동 항공사 공세로 2000년 이후 EU 항공사 전체 직원의 약 18.5%인 8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에 UAE 항공협정 개정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항공 업계 관계자들은 국가 기간 산업인 항공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항공협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의 경제 협력이나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항공 등 국가 기간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나아가 다른 국가에서 중동 항공사들이 항공산업을 잠식해 나갔던 사례를 토대로, 국내 항공산업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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