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공사 무혐의' 결론에 하소연할 곳 잃은 유가족
지난해 8월 미군기지 캠프 잭슨 철거공사 현장에서 비계파이프(임시가설물)에 깔려 사망한 화물차 기사 곽모(50) 씨의 유가족이 발주처(사업주)인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 직원 A 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를 진행했으나 경찰이 이를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미국기지 캠프 잭슨 부지(164만2000㎡)./이승우 기자 |
[더팩트ㅣ이승우 기자] 지난해 8월 미군기지 캠프 잭슨 철거공사 현장에서 비계파이프(임시가설물)에 깔려 사망한 화물차 기사 곽모(50) 씨의 유가족이 발주처(사업주)인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 직원 A 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했으나 경찰이 지난해 11월께 이를 무혐의 처리한 사실이 <더팩트> 취재 결과 확인됐다.
유가족 측은 이번 사고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 중대 사안임에도 A 씨가 어렵지 않게 무혐의를 받았다며, 검찰에 이의신청을 내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의정부지검은 A 씨의 사건기록을 전달받아 불송치 결정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 중이다.
7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의정부경찰서는 지난해 8월 곽 씨 사망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과 함께 현장을 조사했다. 산업현장 재해의 경우 경찰을 대신해 노동부가 사법경찰권을 행사하다 보니 경찰은 A 씨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여부만 조사하고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의정부경찰서는 <더팩트>에 "사망 사고 직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현장조사를 했는데, 사망자가 피고용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조사를 종결하더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관련해서는 우리도 뭐라고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곽 씨는 시설물 철거 현장에서 지게차 운전자 B 씨가 반출 중이던 비계파이프가 낙하해 압사사고를 당했다. 당시 사고를 낸 B 씨는 중기 지게차 운전면허가 없는 무자격자로 드러났고, 사고 일시 철거 현장은 신호수가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곽 씨는 이날 철거물 반출을 돕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다가 봉변을 당했다. 용역계약을 맺지 못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준정부국기관의 공사현장이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을까. 노동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피해자 사례가 발생하면서 한국농어촌공사의 공사현장이 '근로자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약에 따르면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는 캠프 잭슨 시설물 철거를 위해 큐브 건축사무소와 대흥산업개발 주식회사에 각각 감리와 공사 하도급을 맡겼다. A 씨는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 소속으로 이들과 함께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와 제36조의 '안전조치 의무'를 부여 받은 실무책임자다.
그러나 A 씨는 하청업체의 철거 업무 현황을 정확히 파악 하지 못하고 그동안 현장을 관리·감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 진술 내용에 따르면 A 씨는 철거물인 비계파이프 반출작업 내용에 대해 아무런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고, 도급인인 대흥산업개발과 지게차 운전자 B씨간에 용역계약이 체결된 사실 조차 몰라 업무지시를 내릴 수 없는 존재였다.
이와 관련, 유가족의 변호를 맡고 있는 안용석 변호사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단지 수급인이나 감리업체가 선보고를 하지 않아 그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몰랐다는 식의 무책임한 변명은 결코 허락되어선 안 된다"며 "피의자 B씨는 중기 지게차 운전면허가 없는 무자격자다. 한국농어촌공사 담당직원 A씨가 발주처 소속 관리책임자로서, 각 공정에 투입될 인부의 수와 자격 여하, 구체적 공사시행 요령 등을 챙겨 나섰다면 이토록 어이없는 압사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는 이같은 유가족 측 요구에 대해 "사내변호사와 논의한 결과 유족 측 입장에 답변하지 않기로 결정 했다"고 말했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간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가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팩트 DB |
◆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적용이 가능할까?
유가족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 근거해 한국농어촌공사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관건은 수사기관이 수사 의지가 있는지 여부였다.
안용석 변호사는 "경찰에게 수차례 (A씨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식으로 시간만 끌면서 답변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뭐라도 (불송치에 대한)원인을 알아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응할텐데 피의자들의 무책임한 변명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니. 수사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 근로감독관의 산업안전보건법 관련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고도 덧붙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68조 제1호에 따르면 사업주 또는 도급인의 안전조치 등 의무를 위반한 경우 사업주 또는 도급인을 그 위반행위 자체로 처벌토록 하고 있어, 사망·부상 등을 당한 사람이 존재하느냐, 사망한 사람이 근로자이냐 여부와 관계없이 그 적용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곽 씨의 사망사고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중요한 근거다.
유가족 측은 "용역계약을 맺지 않아 근로자로 볼 수 없어 수사를 종결했다는 게 말이 되냐. 당연히 그 적용 여부를 검토하였어야 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중대재해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한 판단을 누락한 건 의지 없는 졸속 수사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곽 씨의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인, 사업주, 경영·정부 책임자가 안전과 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2021년 1월 8일 국회를 통과해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상태다.
법조계에 따르면 7월 현재까지 노동부에 접수된 230여 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20건에 불과하다. 이 중 법원 판결이 이뤄진 사건도 3건이 전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거의 대부분 불구속 수사로 진행하다 보니 근로감독관이 6개월 이상의 시간을 조사에 매달리게 되는데, 그만큼 같은 법률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부칙 제1조에 따르면 건설업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는 2024년 1월 27일까지 동법 적용을 유예하고 있어 당장의 동법의 처벌은 힘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반환 미국기지 캠프 잭슨 부지(164만2000㎡)는 의정부시 계획에 따라 향후 복합형 문화예술 단지로 개발될 대단위 사업 예정지이지만, 철거현장만 놓고 보게 되면 대략 20억 원가량의 공사금액이 투입된 사업장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일각에선 해당 공사 규모를 단순하게 철거만 놓고 볼 게 아닌 향후 대단위 공사까지 고려한 총공사규모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결국 법률가들이 해당 사안을 어떤 형태로 보느냐는 관점에 따라 수사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성룡 교수는 <더팩트>에 "어느정도 규모있는 기업체들은 로펌을 고용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대응하기 때문에 조사하고 기소하는데 1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은 검사지휘사건으로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고 있는 만큼 경찰이 수사를 하는 것에 비해 예방이 많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곽 씨의 사망 사고 사건 피의자 여섯 명 가운데 도급업체인 대흥산업개발 주식회사 임직원 두 명과 지게차 운전자 B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감리 업체인 큐브 임직원 두 명과 한국농어촌 경기지역본부 업무책임자 A씨는 혐의없음 처분했다. 다만 고소인의 이의신청에 따라 불송치 사건도 일단은 검찰에 송치됐다. 현재 의정부지검은 불송치의 사건기록을 전달받아 수사 결론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중이다.
곽 씨의 유가족은 6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두 딸 그리고 아내와 노모를 모시고 성실히 살던 사람이었다. 허리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계를 위해 집을 나섰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그런데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단 한명도 조문을 하지 않더라. 소통마저 거부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농어촌공사와 도급계약을 맺고 수문 관리를 해온 수리시설 감시원 오 모(67)씨도 지난달 27일 수문을 점검하던 중 실종됐다가 이틀 만에 숨진채 발견됐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사고 직후 "위험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작업했다"며 실종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돌려 논란을 야기했다. 노동단체는 5일 오 씨의 사망 사건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농어촌공사의 안전의식 부재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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