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호암상 시상식 참석
호암재단 관계자에 '90도 깍듯 인사' 눈길
호암상에 진심인 이재용…"인재제일 계승 의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2023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
[더팩트ㅣ중구=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시상식을 직접 챙기는 건 선대의 인재제일·사회공익 정신을 계승하고 국가 역량 강화와 관련한 후원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보로 해석된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호암상 시상식 시작 20분 전인 1일 오후 3시 40분쯤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 도착했다. 참석 소감 등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이재용 회장은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국무총리를 지낸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을 포함해 재단 관계자들을 찾아가 깍듯한 90도 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호암상은 호암 이병철 선생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려 학술·예술, 사회발전,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현창하기 위해 지난 1990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정했다. 호암재단은 올해 제33회 시상까지 총 170명의 수상자에게 325억 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이재용 회장은 과거 이건희 회장 등 가족들과 함께 시상식에 참석해 왔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홀로 시상식을 챙기다가 2017년부터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낸 건 6년 만으로, 올해까지 2년 연속 시상식에 참석한 건 선대의 인재제일·사업보국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재용 회장은 그간 삼성호암상 후원에 깊은 관심을 쏟아왔다. 2021년에 이어 지난해 호암재단에 개인 자격으로는 유일하게 2억 원을 실명으로 기부했다. 국가 과학 기술 역량 육성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2021년부터 삼성호암과학상을 물리·수학, 화학·생명과학 2개 부문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이재용 회장이 제안하면서 현실화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 가족·지인, 행사 관계자 등 약 250명이 참석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SAIT(옛 종합기술원) 회장,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사장,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 사장 등 삼성 주요 경영진도 총출동했다.
올해 수상자는 과학상 물리·수학 부문 임지순(72) 포스텍 석학교수, 과학상 화학·생명과학 부문 최경신(54) 미 위스콘신대 교수, 공학상 선양국(62) 한양대 석좌교수, 의학상 마샤 헤이기스(49) 미 하버드의대 교수, 예술상 조성진(29) 피아니스트, 사회봉사상 사단법인 글로벌케어 등 개인 5명, 단체 1곳이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호암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임지순 교수는 고체물질 형성에 필요한 총에너지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 실제 실험 없이 고체의 구조와 성질을 밝혀내는 '계산재료물리학' 분야를 새롭게 개척한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다.
최경신 교수는 빛을 이용해 물을 분해하는 광전기 반응에 필수적인 광전극 물질과 촉매의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통해 친환경 수소 생산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선양국 교수는 리튬이온 전지의 양극재로 주로 쓰이는 니켈·코발트·망간 화합물에 농도구배형 구조를 세계 최초로 적용해 전지의 안정성과 수명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배터리 분야의 선구자적 연구자다.
마샤 헤이기스 교수는 암세포가 암모니아를 영양분으로 재활용함으로써 증식을 가속화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 암 치료법 개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삼성 사장단 5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은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사업부 사장. /박헌우 기자 |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2015년 한국인 최초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 정상급 연주단체와의 지속적인 협연과 최고의 독주 무대를 펼쳐온 현대 국제 클래식 음악계의 젊은 거장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전속 계약, 2021년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세계 초연자로 선정되는 등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K클래식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글로벌케어는 1997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국제보건의료 비정부기구(NGO)다. 지난 26년간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현장을 비롯한 18개국의 각종 재난 현장에 긴급 의료팀을 파견하는 등 전염병 퇴치와 빈민 진료에 앞장서 왔다.
이날 임지순 교수는 "묵묵히 한가지 연구주제에 몰두하는 후배 과학자들에게 저의 수상이 격려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함께 진리 탐구와 인류 문제 해결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최경신 교수는 "과학자의 길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 함께 연구했던 제자들, 많은 도움을 준 선후배,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아직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과학자란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선양국 교수는 "젊은 과학자들이 도전적인 목표를 세워 우직하게 연구해 미래 먹거리들을 만들고, 과학기술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는 결과를 많이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자신의 연구 분야에 확신이 들었다면 긴 호흡으로 멀리 바라보라"고 조언했다.
과학상 물리·수학 부문 임지순 포스텍 석학교수(왼쪽부터), 과학상 화학·생명과학 부문 최경신 위스콘신대 교수, 공학상 선양국 한양대 석좌교수, 의학상 마샤 헤이기스 하버드의대 교수, 예술상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조성진 피아니스트 대리 수상), 사회봉사상 사단법인 글로벌케어 추성이 공동 대표, 박용준 회장이 '2023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 |
마샤 헤이기스 교수는 "항상 인류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퍼즐을 해결하기를 꿈꾸면서 미토콘드리아 대사물질이 인간 건강과 암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연구를 해왔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풀지 못한 퍼즐을 해결해 가겠다"고 밝혔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초심을 잃지 않고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더욱 정진해 나가라는,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용기를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글로벌케어 박용준 회장은 "현재 15개국에서 전염병 퇴치와 빈민 진료 등의 활동을 펼치며 인류의 건강을 위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세계 전역에 퍼지는 인류 구원의 태풍을 이루는 것을 꿈꾸며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암재단은 부문별 수상자에게 상장과 메달, 상금 3억 원씩 총 18억 원을 수여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해외 공연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스승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리 수상했다.
김황식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학술, 예술, 사회봉사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을 다하시어 인류사회 발전과 고귀한 인간 사랑 실천에 큰 업적을 이룬 훌륭한 분들을 수상자로 모시게 돼 큰 기쁨이자 자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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