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현 OCI 부회장 알고 보니 '외국인 총수'
'외국인' 김범석 쿠팡 의장은 또 동일인 지정 피해
이우현 OCI 부회장(왼쪽)이 미국 국적을 가진 동일인으로 공식 확인된 가운데, 마찬가지로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의장은 올해도 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OCI 이우현 부회장은 되고, 쿠팡 김범석 의장은 안됐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동일인(총수) 지정과 관련해 두 사람을 둘러싼 결과가 엇갈린 것이다. 김범석 의장이 올해도 동일인 지정을 피한 상황에서 이우현 부회장이 미국 국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같은 '외국인 총수'를 놓고 공정위의 판단은 왜 달랐던 것인지 재계 안팎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전날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공개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매년 5월 1일까지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 10조 원 이상인 집단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해 발표하고 있는데, 발표 내용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업집단의 동일인 국적 현황을 파악하면서 이우현 OCI 부회장이 미국 국적이라는 게 뒤늦게 확인돼 '외국인 동일인' 1명이 탄생한 점이다. OCI 관계자는 "과거 이우현 부회장은 이중 국적을 유지하다가 신고 절차상 놓친 부분이 있어 한국 국적을 상실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동일인'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재계의 시선은 김범석 쿠팡 의장으로 쏠렸다. 그동안 김범석 의장은 규제 미비로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동일인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올해 역시 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쿠팡의 동일인은 2021년 이후 3년째 쿠팡 법인으로 지정됐으며, 쿠팡은 '총수 없는 기업'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같은 외국인임에도 이우현 부회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고, 김범석 의장은 왜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는 것이다. 동일인 지정 이후 매년 공정위에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거짓·누락이 있으면 징역·벌금형을 받을 수 있으며, 친족과 관련한 정보가 관리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김범석 의장만 기업 총수의 책임·의무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공정위는 이우현 부회장과 김범석 의장의 사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먼저 회사의 대응에 차이가 있었다. 이우현 부회장은 고(故) 이수영 회장이 별세한 뒤 2018년 동일인으로 지정될 당시 반발이 없었고, 현재까지 동일인 변경 의사가 없지만, 쿠팡 측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는 설명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김범석 의장이 회사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동일인으로 지정하려 했으나, 쿠팡 측은 한국GM, 에쓰오일과 같이 외국계 기업일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통상 마찰 여지를 최소화하면서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팩트 DB |
이러한 내용은 전날 이뤄진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의 브리핑에서도 거론됐다. 한기정 위원장은 "쿠팡은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별도의 기준 없이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경우에는 가령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기정 위원장은 동일인 지정과 관련한 두 회사의 대응에 차이가 있다는 점과 함께 '규제 대상 회사의 범위'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OCI는 총수 친족이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라는 점에서 총수를 법인으로 변경하게 되면 규제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러나 쿠팡은 김범석 의장의 국내 개인 회사, 국내 친족 회사가 없다.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의 범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룹 정점에 있는 회사가 국내 법인인가, 아니면 외국 법인인가에 따라서도 동일인을 달리 지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기정 위원장은 "쿠팡은 의사결정 최상단에 있는 쿠팡Inc가 미국 법인이지만, OCI의 경우 국내 법인인 OCI 주식회사가 최상단 회사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동일인을 지정하는 절차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지정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기준은 없다. 이에 공정위는 현재까지 김범석 의장이 쿠팡을 지배하고 있고, 동일인으로 지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쿠팡 측에서 반발하는 상황에서 통상 마찰 가능성을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앞서 외국인을 대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 등을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공정위는 외국인 동일인 지정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추가 협의하며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동일인 2세가 외국 국적을 가진 집단이 16개(31명)에 달하는 등 명확하지 않은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은 추후에도 문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통상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면서 판단 기준도 더욱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