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승인 기기로 생산한 양극박 몰래 납품하고 '쉬쉬'
롯데알미늄 미래 먹거리 양극박 사업, 신뢰 회복 시급
2차전지용 양극박 제조 기업인 롯데알미늄이 제품을 생산, 납품하는 과정에서 고객사가 승인하지 않은 기기로 만든 양극박을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롯데알미늄 안산 1공장 전경. /더팩트 DB |
[더팩트ㅣ장병문·이성락 기자] 롯데그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2차전지 산업 육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2차전지용 양극박(알루미늄박)을 제조하는 롯데알미늄이 고객사가 승인하지 않은 기기로 만든 제품을 수년간 몰래 섞어 인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24일 <더팩트> 취재 결과 롯데알미늄은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 4곳과 양극박 납품 계약을 맺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나 최근 수년 간 글로벌 배터리 셀업체 2곳에 승인받지 않은 압연·단재기기로 만든 양극박 제품을 몰래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승인받은 압연·단재기기로는 계약 물량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자 국내외 글로벌 배터리제조사에 알리지 않은 채 미승인 기기로 생산한 일정 물량을 '끼워넣기'식으로 거래를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알미늄, 글로벌 국내외 배터리 제조사 4곳 중 국내 2개 업체에 미승인 양극박 납품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박은 2차전지의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양극 활물질을 지지하는 동시에 전자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한다. 열전도성이 높아 전지 내부의 열 방출을 돕는다. 양극박 소재로 알루미늄이 사용되고 있어 '알루미늄박'이라고도 하며 국내에서는 롯데알미늄과 DI동일(동일알루미늄), 동원시스템즈, 삼아알미늄 등 일부 업체가 생산하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사, 전지사, 소재사들은 2차전지 수요 증가에 따라 양극박의 안정된 공급망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2차전지의 급속한 성장세 속에서 롯데알미늄은 국내외 글로벌 거래처 4곳 가운데 국내 2개업체에 납품하는 물량에 대해 극소수만 미승인 기기 생산 정보를 공유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를 이어왔다.
'미승인 기기로 만든 양극박이라도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고 롯데 측은 주장하고 있지만 '화재 발생'에 민감한 배터리 소재를 고객사들이 승인하지 않은 기기로 생산하고 이 사실을 고객사에 알리지 않은 것은 친환경 전기차 시장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K-배터리의 신뢰성에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롯데알미늄, <더팩트> 취재에 내부 조사 돌입..."철저한 조사, 바로잡겠다"
롯데 측은 <더팩트> 취재가 본격화하자 내부 조사를 벌이는 등 수습에 나서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절대 인지하지 못 한 사안이다. 철저한 조사를 하고 있으며 잘못된 사항이 적발되면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더팩트> 취재진이 확보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 같은 행위는 지난 2021년부터 지난달까지 최소 2년 이상 이뤄졌다. 롯데알미늄은 3대의 압연기(51·53·54호)와 단재기(51·53·56호)를 보유하고 있으며 고객사들이 지정한 압연기와 단재기로 제품을 생산해 고객사에 납품한다. A 회사는 압연 51·53호기와 단재 53호기를 승인했다. B 회사는 53·54호기, 단재 56호기를 승인 기기로 정했다.
이처럼 승인 기기를 별도로 두는 것은 같은 양극박이더라도 제품의 모양을 만들고 자르는 과정에서 고객사 기준(특성·기기 제조사)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일종의 A사 전용 설비, B사 전용 설비를 따로 두는 셈이다. 배터리사들의 승인은 이 설비를 통해 생산되는 제품은 '믿을 수 있다'라는 확인 도장으로 간주된다. 배터리사들은 롯데알미늄의 설비가 자기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준에 맞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승인 절차'를 최소 6개월 이상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부터 최소 2년간 불공정 거래...미승인 단재기 생산 제품 납품
계약상 롯데알미늄은 각 기업이 승인한 기기로 생산한 양극박만 그 기업에 납품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알미늄 내부 문건을 보면, 롯데알미늄은 지난 2021년 2월 A사에서 승인받지 않은 단재 56호기를 사용해 생산한 양극박을 수 차례 A사 해외 법인에 납품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 미승인 상태인 단재 51호기로 양극박을 생산해 A사에 전달했다. 비슷한 시기에 B사에도 승인받지 않은 단재 51호기로 생산한 양극박을 납품했다.
또 롯데알미늄은 화재로 파손된 압연기를 재승인 절차를 밟지 않고 사용했다. 안산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4월 롯데알미늄의 압연 51호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회사 측은 해당 기기를 수리하고 그 기기로 생산한 양극박을 A사에 납품하면서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화재로 파손된 압연기는 다시 A사 기준에 맞게 맞춰야 하지만 이런 절차를 지키지 않고 생산, 납품했다.
롯데알미늄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롯데알미늄은 승인받지 않은 기기로 총 물량의 절반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압연기기 하나를 승인받으려면 6개월 이상의 시간과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등 상당히 까다롭다. 이런 상황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든 기기를 각 고객사 요구에 맞춰 승인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재 후 기기 수리 문제는 고객사가 알면 재승인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은폐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알미늄 내부 문건을 보면 단재기 'SEP51'에서 생산된 양극박이 A사로 납품됐다. /독자 제공 |
◆승인기기 생산으로 조작하기 위해 일련번호 조작 '의혹'
롯데알미늄이 미승인 기기로 생산한 양극박을 승인 기기로 생산한 것처럼 속이기 위해 일련번호를 조작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모든 제품에는 바코드가 찍히기 때문에 이 일련번호를 보면 어떤 기기에서 생산한 양극박인지 알 수 있다"면서 "롯데알미늄은 미승인 기기에서 생산한 양극박도 승인 기기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이기 위해 바코드를 조작한다"고 주장했다.
롯데알미늄 임원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양극박을 생산하고 납품하는 행태를 묵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내부 문건에 작업 처리를 허용하는 임원들의 도장이 찍혀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임원들이 주도했다고 의심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롯데알미늄 측은 <더팩트>에 승인받지 않은 기기로 양극박을 생산해 납품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다만 물량이 그리 많지 않고, 승인된 기기로 생산한 양극박과 비교해 품질에 전혀 차이가 없어 고객사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롯데알미늄 관계자는 "(미승인 기기는) 신규 도입 설비인데, 생산 비중은 전체의 35%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 설비로 생산한 제품 역시 다른 제품들과 마찬가지 조건으로 엄격한 전수 품질 검사 후 납품했다"고 말했다.
화재로 인한 압연 51호기의 파손과 수리 사실을 A사에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롯데알미늄은 "수리 완료 후 자체 검사 시스템을 통해 제품의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면서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공정상 변동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또한, 제품의 바코드 조작과 관련해서는 "현재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답했다.
◆글로벌 배터리 생산업체, 미승인 기기 제품 납품 사실 전혀 몰라
글로벌 배터리 생산업체인 A사와 B사는 승인하지 않은 기기로 생산한 양극박을 납품받은 사실을 <더팩트> 취재가 시작된 이후에야 알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두 회사는 롯데알미늄의 계약 불이행 문제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A사는 "자체 조사를 벌여 추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B사는 "지난주 롯데알미늄이 미승인 기기로 양극박을 생산했다는 사실을 자진 신고함에 따라 납품 예정 물량 전부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2차전지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양극박 수요는 앞서 2020년 9만2000t에서 2021년 13만5000t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47만5000t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그룹은 양극박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한다는 계획 아래 2020년 안산공장의 생산라인 증설 작업을 마쳤으며 지난해 1100억 규모의 헝가리 공장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의욕을 보여왔다.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과 함께 롯데그룹 화학군에 속한 롯데알미늄은 지난 1966년 설립된 국내 최대 종합 포장 소재 기업이다. 알루미늄박뿐만 아니라 인쇄포장재, 골판지상자, 캔, 자판기, 쇼케이스, 생활용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2차전지용 양극박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롯데그룹 화학군은 2030년까지 약 7조 원을 투자해 연간 매출 7조 원 달성을 목표로 배터리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와 차세대 배터리 소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화학군의 주축인 롯데케미칼은 분리막 소재(PE) 생산과 배터리 전해액 유기용매 4종(EC, DMC, EMC, DEC) 사업을 펼치고 있고, 최근 국내 1위 동박 제조업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결정했다.
jangbm@tf.co.kr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