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심 이어 "안진 평가보고서에 문제없다" 판단
교보생명, 2심 판결에 "유감"
교보생명의 고발로 재판에 넘겨진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임직원들이 2심에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교보생명 주주 간 분쟁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교보생명 |
[더팩트│황원영 기자] 교보생명과 풋옵션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어피너티 컨소시엄(어피너티)·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관계자들이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과 주주 간 분쟁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8년째 추진해오고 있는 교보생명 기업공개(IPO)에도 차질이 생기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1-1부(이승련 엄상필 심담 부장판사)는 3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딜로이트안진 임원 2명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딜로이트안진 직원 1명과 어피너티 임직원 2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어피너티와 딜로이트안진이 244건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치평가 의뢰 당시부터 평가방법, 평가인자, 주당 최종단가 등을 공모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가치평가보고서 작성할 때 안진 회계사들이 전문가적 판단을 한 것이지 FI의 일방적 지시에 의하지 않았다. 일방적 지시로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객관적 증거도 없다"며 "허위 보고라는 공인회계사법 위반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부정 청탁과 관련해서 "무죄로 선고한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교보생명은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너티가 보유한 풋옵션(주식을 특정 가격에 팔 권리) 가격에 해당하는 공정시장 가치(FMV)를 산출하며 딜로이트안진이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했다고 판단, 2020년 4월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와 어피너티 컨소시엄 관계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최고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어피너티와 딜로이트안진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어피너티는 교보생명 최대주주 신창재 회장과 2012년 9월 주주 간 계약(SHA)을 맺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재무적투자자들이 주당 24만5000원에 매입하되 3년 안에 기업공개(IPO)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IPO가 불발되면 풋옵션을 행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IPO가 계속 미뤄지자 FI는 2018년 10월 신 회장을 상대로 주당 41만 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교보생명은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에서 풋옵션 행사일이 2018년 10월 23일인데도 평가를 맡은 딜로이트안진이 공정시장 가치를 2018년 6월 30일 기준으로 산출해 풋옵션 행사가격을 의도적으로 과대평가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딜로이트안진이 적용 가능한 여러 가치평가 접근법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 어피너티 측에 유리한 방법만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지만, 법원이 어피너티와 딜로이트안진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FI와 신 회장의 갈등이 새 국면을 받았다.
2심 판결이 나자 어피너티 측은 "신 회장이 처음부터 풋옵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교보생명은 이번 판결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부적절한 공모 혐의가 분명히 있음에도 증거가 다소 부족한 것이 반영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재판 결과가 어피너티와 딜로이트안진이 공모해 산출한 풋옵션 행사 가격(주당 41만 원)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앞서 국제상사중재 판정에서 신 회장이 41만 원에 주식을 매수해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라는 게 교보생명 측 주장이다.
교보생명 IPO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7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교보생명이 IPO를 추진한 건 2015년부터 8년간 세 차례에 이른다. 한국거래소는 교보생명의 주주 간 경영 분쟁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점을 들어 경영이 안정화하기 전까지는 상장 심사를 승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정 시일이 걸릴 예정인 만큼 교보생명의 IPO 시기는 더욱 늦어질 전망이다. 교보생명은 IPO를 통해 시장에서 합당한 가치 평가를 받은 후 적정 풋옵션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FI가 기존에 산정한 주당 가격을 주장할 경우 신 회장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만 2조 원에 달한다. 2012년 당시 FI가 지분 24%를 확보하면서 투자한 금액은 1조2000억 원가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