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회장 취임 뒤 줄곧 실적 내리막길
박진규 에넥스 회장이 취임한 이후 줄곧 실적이 하락하고 있다. /더팩트 DB, 에넥스 제공 |
[더팩트|이중삼 기자] 창업주 장남으로 2019년 회장직에 오른 뒤 신년사를 공개할 때마다 줄곧 '수익성 개선'을 외쳐왔던 박진규 에넥스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도 '수익성 강화'를 키워드로 꼽았다. 하지만 매년 신년사에서 강조한 '수익성'이라는 목표는 실패했다. 2018년까지는 실적이 좋았다. 문제는 박 회장이 취임한 2019년부터다. 줄곧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몇 년 간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서 박 회장의 '경영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박진규 회장이 수장이 된 2019년부터 에넥스의 실적은 단 한 번도 반등한 적이 없다. 매출은 연결 기준 △3636억 원(2019년) △2336억 원(2020년) △2017억 원(2021년)이다. 해가 지날수록 매출은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2018년까지 이익을 보다가 2019년에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영업이익(손실)을 보면 △9억1000만 원(2018년) △-28억 원(2019년) △-85억 원(2020년) △-123억 원(2021년)으로 손실은 매년 커졌다.
2022년 실적도 '악화일로'였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누적 매출은 1716억 원을 기록했는데 2022년 상반기 누적 매출은 1529억 원에 그쳤다. 영업손실도 2021년 -62억 원이었는데 2022년에는 -153억 원에 달했다. 2019년 '오너 2세' 경영 시작이라는 업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매년 저조한 실적에 박 회장의 경영능력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박진규 회장은 에넥스 창업주 박유재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1986년 회사에 입사해 1990년 에넥스 하이테크 대표이사를 거쳐 1998년 에넥스 부회장에 올랐다. 30년 넘는 기간 동안 국내와 해외사업을 두루 경험하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의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일례로 금융위기로 실적이 급감했던 2010년에는 대리점·협력업체를 직접 만나 신뢰를 회복하는 '현장 경영'과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비중을 늘리는 '사업 구조 재편' 등을 통해 위기를 돌파한 이력이 있어서다. 하지만 2019년 이후부터 실적이 나빠지면서 박 회장의 경영능력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는 업계 분석이 나온다.
참고로 창업주인 박 명예회장은 1971년 서일공업사를 창업해 국내 최초로 입식 주방을 도입하는 한편 1980~1990년대 '오리표 싱크'로 국내 싱크대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1992년에는 에넥스로 회사명을 바꾸면서 업계 최초로 컬러 부엌을 선보이며 1세대 가구업체를 이끌었다. 50여 년 가까이 에넥스를 진두지휘한 박 명예회장은 2019년 장남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에넥스의 실적 부진 원인에 대한 힌트는 박 회장의 2020~2023년 신년사에서 찾을 수 있다. △원가·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 극대화(2020년) △강력한 원가·비용 절감(2021년) △강력한 원가·비용 절감, 수익중심 내실경영(2022년) △강도 높은 원가 및 비용 절감(2023년) 등 공통적으로 '원가·비용 절감'과 '수익성'이 나오는데 꾸준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실적 개선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것이 특판에 치중된 사업구조다. 특판은 주로 건설사 등이 짓는 신규 주택에 주방용 가구 등을 납품하는 형태다. 주택 거래량이 많을수록 특판 매출도 늘어나는 구조인데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줄면서 특판 매출이 급전직하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정보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넥스의 지난해 3분기 특판 비중은 83.3%에 달하는데 지난해 미분양 아파트 물량은 6만 가구에 육박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5만8027가구에 달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미분양 아파트 6만2000가구를 위험선으로 보는데 매달 1만 가구씩 미분양이 늘어나고 있다"며 "당초 예상보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심각한 만큼 규제 완화 속도를 더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박진규 회장은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사업부별 이익목표 필수 달성 △경영혁신을 통한 내실강화 △강도 높은 원가 및 비용 절감 △소통과 신뢰가 바탕이 된 새로운 조직문화 형성 등 4가지 경영방침을 내세웠다.
박진규 회장은 신년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부서별 판매 목표를 철저히 관리해 이익 목표를 달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상품과 마케팅, 물류시스템 등 전 부문에 걸친 경영혁신을 통해 내실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우수한 품질과 차별화된 전략을 바탕으로 주방가구를 비롯한 핵심 제품의 라인업을 확대하고 서브 브랜드를 육성하는 등 수익성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원가 투입 과정의 전 단계를 면밀히 검토해 비효율적인 관행을 개선하고 수주에서부터 시공,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비용 절감에 반드시 주력해야 한다"며 "모든 분야에서 원가 절감을 이루어 낼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을 모색해 차별화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에넥스는 특판 비중을 낮추기 위한 대책을 꾸준히 강구하고 있다. 2021년 12월에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의 물류시스템 강화를 위해 경기 안성시에 안성물류센터를 열었다. 이는 온·오프라인 다양한 품목의 재고를 확보하고 당일배송·익일배송 품목을 늘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즉시 공급할 수 있도록 수도권 지역의 물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특판 비중을 낮추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일에는 주방 4종, 드레스룸 1종 등 신제품을 출시했다.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구축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수익성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에넥스 관계자는 "가구에도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당사 역시 다양한 제품 라인업 확대를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패턴에 맞춰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