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최태원·구광모 등 4대 그룹 총수 올해 어땠나
내년에도 '위기 극복'·'미래 준비' 위한 숨 가쁜 행보 이어갈 듯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부터)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는 올해 '위기 극복'과 '미래 준비' 과제를 안고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더팩트 DB, 각사 제공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올해 4대 그룹 총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숨 가쁜 1년을 보냈다. 현장 경영을 통해 글로벌 경기 침체 충격과 관련한 해답을 찾으면서 미래 비전을 가시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곧 다가올 2023년에도 마찬가지 행보를 나타낼 전망이다. 급변하는 대외 환경에 대비하는 동시에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연말 인사에 담았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인 그룹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다. 취업제한으로 상반기 경영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경영 전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삼성 입장에서는 이재용 회장의 복귀가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3고 현상'과 경기 침체 등 불확실한 대내외 여건을 돌파하기 위한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룹 전반으로 확산된 위기의식을 의식한 듯, 이재용 회장은 복귀 후 주요 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하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특히 이재용 회장은 지난 10월 이사회 의결을 거쳐 부회장 승진 10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본격적인 '이재용 삼성 시대'를 연 것이다. 이후 이재용 회장의 광폭 행보가 이어졌다. 키워드는 '위기 극복'과 '미래 준비'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 다프라에 있는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등 해외 현장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했고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파트너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협력 관계를 재확인했다. 이재용 회장은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며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2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 삼성전자 법인을 방문해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삼성전자는 이달 중순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었다. 이재용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이 회의에서는 위기 극복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구체적으로 스마트폰과 가전 등 주력 제품의 수요 둔화 방어책, 반도체 한파 속 성장 전략 등이 논의됐고, 이재용 회장은 사업별 전략을 보고받은 뒤 중장기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사장들은 최근 비상 회의를 열고 경기 침체 대응 전략을 재차 논의하기도 했다.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가진 건 약 6년 만이다.
현재 이재용 회장은 해외 출장 중이다. 지난 23일 베트남 삼성R&D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방문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내년 주력 사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아세안 지역을 잇달아 찾으며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는 것이 재계 판단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의 비저너리' 수상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
올해 회장 취임 3년 차를 맞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발걸음도 분주했다. 코로나19 확산, 차량용 반도체 부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글로벌 복합 위기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북미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특정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수차례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비저너리'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해의 비저너리'는 향후 30년 이상 자동차 산업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업계 리더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정의선 회장이 최초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5대 그룹 총수 중 가장 많이 공식 석상에 섰다. SK그룹 회장으로서 불확실성 대응, 지속 가능 성장 모색 등 생존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국내 최대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탄소중립 실천 등의 재계 현안을 챙겼다. 대표적으로 SK그룹에서는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반도체(Chip) 등 이른바 'BBC'와 그린(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체질 개선 작업에 고삐를 죄고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유무형 자산, 고객 가치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 시스템을 혁신하는 작업에 나섰다. 대한상의에서는 "기업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이윤 창출,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도 기업이 꾸준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기업가 정신'을 발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5월 열린 신기업가 정신 선포식에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최태원 회장은 2030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위 공동위원장 겸 민간위원장도 맡았다. 직접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을 펼쳤고,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와 관련해 프리젠테이션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참여, 차별화 전략을 제시하는 등 주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 대한상의 회원사에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지원을 당부하는 동시에, SK그룹 차원에서는 '월드엑스포(WE) TF'를 꾸려 최고 경영진들이 직접 전 세계에서 유치 활동을 벌이도록 했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가진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기업이 열심히 뛰고 있다. 뭔가 협력하고 새로운 얘기를 해서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게 중요한데 그런 각도로 볼 때 우리가 경쟁국 사우디보다 우월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총수로 꼽혀왔다. 그러나 올해는 3년 만에 오프라인 그룹 사장단 워크숍을 재개하고, 폴란드와 미국 출장길에 오르는 등 보폭을 한층 넓혔다. 구광모 회장이 경영 활동을 펼치면서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건 '고객 가치' 실천으로, 올 한해 이와 관련한 구광모 회장의 발언도 적지 않았다. 구광모 회장은 창립 75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고객과 LG의 더 가치 있는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말했고, 사장단 워크숍에서는 "미래 준비를 미래 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구성원들에게 미리 보낸 신년사를 통해서는 "2023년에는 전 세계 모든 LG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객 가치를 모아 고객의 삶을 바꾸는 감동과 경험을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9월 열린 사장단 워크숍에서 경영진과 대화하고 있다. /LG그룹 제공 |
4대 그룹 총수들은 내년에도 경영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수 대부분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3'과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 일정을 챙기며 해외 사업장을 점검할 것으로 관측된다.
내년 경영 키워드도 '위기 극복'과 '미래 준비'다. 이미 총수들은 국내외 경제 상황이 내년에도 계속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연말 인사에서 경험 많은 최고경영자를 유임, 당분간 위기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래 사업과 관련해서는 '젊은 인재'들과 호흡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4대 그룹 모두 성과·능력주의에 따라 30·40대 젊은 인재들을 대거 기용해 본격적으로 신사업을 이끌 수 있도록 했다.
총수들은 현장 경영을 통해 미래 사업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채용 추진 현황도 적극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4대 그룹은 향후 5년간의 대규모 투자·채용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기업별 투자 금액만 살펴보면 삼성 450조 원, SK 247조 원, 현대차 63조 원, LG 106조 원에 달한다. 금액 대부분은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입될 예정으로, 이 투자에 대해 이재용 회장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발표한 대규모 투자 건은 총수 차원의 철저한 점검이 예상된다"며 "계획대로 차질 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