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경 사장 승진…금호석화 3세 경영 본격화
오너가 3·4세 내년도 역할 커져
경영 능력 입증 후 승계 속도 낼 듯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오너가 3세 박준경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다. /금호석유화학 제공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의 경영 승계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연말 임원 인사를 통해 재벌가 장남들이 속속 전진 배치되며 승계를 위한 세대교체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내년부터 중책을 맡게 된 오너 3·4세들이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박준경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하는 내용을 담은 임원 인사를 지난 21일 사내에 공지했다. 박준경 신임 사장은 금호그룹 창업주 고(故) 박인천 회장의 손자이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박준경 사장은 2007년 금호타이어 차장으로 입사해 2010년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 부장, 상무, 전무 등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 영업본부장(부사장)을 맡아왔다. 이번 사장 승진은 부사장 승진 후 1년 6개월 만이다.
박준경 사장의 승진을 놓고 금호석유화학그룹의 3세 경영 체제 전환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이사회 진입을 이뤄낸 데다, 초고속 승진으로 또 한 번 지배력을 굳혔기 때문이다. 박준경 사장은 박찬구 회장이 지난해 5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1년여 만인 올해 7월 사내이사로 선임됐고, 자사주 소각을 주도하는 등 주주가치 제고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 있어 큰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박준경 사장은 앞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하는 총괄사장 역할을 맡는다. 그룹 경영 책임자로서 입지가 확대될수록 경영권 승계 작업에도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지분율은 박찬구 회장(6.73%)보다 많은 7.21%다. 사촌인 박철완 전 상무(지분율 8.87%)에 이은 개인 2대 주주로, 수년째 경영권 분쟁을 유도해온 박철완 전 상무와 달리 주주와 회사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인사를 통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박준경 사장의 동생 박주형 부사장은 지분 1.01%를 보유하고 있다.
박준경 사장의 향후 과제는 경영 능력을 재차 입증하는 것이다. 영업 부문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으나, 그룹 경영 전면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위치에 섰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의 작은 불씨가 남아 있는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박준경 사장의 경영 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지난 15일 임원 인사를 통해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상무보가 롯데케미칼 상무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 제공 |
오너가 자제들의 전진 배치는 올해 연말 인사의 핵심 키워드였다. 마찬가지로 경영 승계를 위해 3·4세의 지배력을 강화, 세대교체에 속도를 내려는 의도로, 이들 역시 본격적으로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너가 3·4세들은 젊은 리더십을 요구하는 신사업 부문에서 성과를 창출하며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능력 있는 기업인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차세대 리더로 인정받기 위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세대교체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지는 기업은 한화그룹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가 올해 부회장으로 승진, 방산과 친환경에너지를 중심으로 굵직한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방산 부문 통합, 대우조선해양 인수, 태양광 사업 강화 등의 사업 재편을 통해 오너가 3세인 김동관 부회장이 '뉴한화'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미 오너가 3세 정기선 사장이 이끌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사장은 올해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 승계를 본격화했고 세계 무대인 'CES'에 참석해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핵심 인사들과의 미팅에서 재계 총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등 그룹 경영 책임자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코오롱그룹에서는 이웅열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오너가 4세인 이규호 사장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중요한 자리에 오르면서 차기 회장에 근접했다. 이규호 사장은 내년 1월 출범하는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대표이사로 내정된 상태다. CJ그룹에서도 이재현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가 4세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가 미래 핵심 먹거리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식품성장추진실장으로 새롭게 전진 배치됐다.
이 밖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상무가 지난 15일 임원 인사를 통해 승진, 한국 롯데케미칼 경영 수업을 시작하며 시험대에 올랐다. 지분, 국적·병역 문제 등 3세 경영 승계와 관련한 복잡한 숙제를 풀어내기에 앞서 기초소재 영업과 신사업 발굴 등에서 경영 능력을 증명하는 행보를 나타낼 전망이다. 지난해 출범한 LX그룹 구본준 회장의 장남 구형모 LX홀딩스 전무도 올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내년부터 검증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