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시장환경에 투자 계획 실종
삼성전자 DX 부문 비상경영체제 전환
SK하이닉스 내년 투자 올해 대비 절반 '뚝'
삼성전자는 오는 15일 DX(디바이스경험)부문을 기점으로 주요 사업 부문에서 글로벌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사업 계획에 관해 논의한다. /삼성전자 제공 |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 내년 우리나라 각종 경제 지표 전망치마저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주요 대기업들이 잇달아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 삼성전자, 15일부터 글로벌전략회의 열어…'생존전략' 모색
13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사장단과 임원인사를 마무리 짓고, 조직개편을 통해 실무진의 세부 역할을 조정했다. 오는 15일부터는 이번 인사에서 유임한 한종희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장(부회장)과 경계현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의 주재하에 부문별 글로벌전략회의를 갖는다. DX 부문은 오는 15일부터 16일까지, DS부문은 오는 22일 각각 회의를 열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6월과 12월마다 글로벌전략회의를 갖고 국내외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부문별 업황을 논의하고, 하반기와 다음 해 사업 계획을 비롯해 중장기 신성장 동력에 관해 논의해 왔다.
특히, 지난 6월까지도 대면으로 회의가 치러졌지만, 이달 회의는 비상경영의 일환으로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DX부문은 앞서 지난 7일 사내인트라넷을 통해 해외출장 비용과 사무용품을 비롯한 소모품 구매를 50% 이상 줄이는 등 비용절감을 골자로 비상경영 체제 전환을 공식화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 불황 여파로 올해 4분기 전년 대비 40% 낮은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제공 |
삼성전자가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선언한 데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불황에 따른 실적 감소 전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올해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31.4% 줄어든 영업이익 10조8520억 원으로 '어닝쇼크'를 기록했지만, 4분기 전망은 더 어둡다.
에프앤가이드는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 평균치)를 8조2577억 원으로 집계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13조8667억 원) 대비 40% 가량 낮은 수치다. DB금융투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절반 수준인 6조 원대 영업이익을 전망하기도 했다.
최근 가파른 내림세를 보이는 메모리 가격이 시장 전망치를 낮췄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메모리 D램의 고정거래가격은 평균 2.21달러로 전월 대비 무려 22.46% 급감했다. 낸드플래시 가격 역시 평균 4.14달러로 같은 기간 3.73% 내렸다.
여기에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올해 3분기 매출 55억8400만 달러로 업계 1위 대만의 TSMC(201억6300만 달러)와 격차가 벌어지며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글로벌전략회의 역시 사업 부문별로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큰틀에서는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대외 불확실성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위기 해법을 모색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점쳐진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올해 4분기 1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더팩트 DB |
◆ SK하이닉스, 4분기 '영업손실 1조' 전망 나와
SK하이닉스의 상황은 더 우울하다. 이미 지난 10월 그룹 차원으로 진행된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내년 생존전략을 모색했지만, 시장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밝지 않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3097억 원 적자로 집계됐다. 대신증권(-1조5400억 원)과 현대차증권(-1조4040억 원)의 경우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내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메모리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실적 반등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내부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모양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을 줄이고, 내년 투자 규모도 올해의 절반 이하로 줄일 방침이다.
삼성과 SK 외에도 주요 대기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방어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대외 불확실성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내년 투자 규모를 9조2000억 원에서 8조9000억 원으로 3000억 원가량 하향 조정했다. 구광모 회장 주재 아래 지난 9월 사장단 워크숍을 열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구상한 LG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인 LG전자가 지난달부터 각 사업부서와 본사 조직 일부 구성원으로 꾸린 '워룸(War-Room)'을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이미 지난 7월부터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선언, 최정우 회장 주재로 그룹 내 사장단과 전 임원이 한데 모여 '그룹경영회의'를 열고 사업별 리스크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아울러 현대제뉴인과 현대인프라코어, 현대건설기계 등 현대중공업그룹 건설기계 3사도 지난 9월 CEO 공동담화문을 통해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최근 각종 부정적인 경제지표 등을 근거로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더팩트 DB |
◆ 재계 "대외 불확실성 해법 찾기 어려워"
기업들이 앞다퉈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각종 부정적인 경제지표 역시 이러한 전망에 힘을 더한다.
실제로 국제금융센터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글로벌 9개 투자은행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1.1%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전망한 1.7%와 비교해도 0.6p 낮은 수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지난 7일 열린 '거시경제 전문가 간담회'에서도 '대외 불확실성이 심화할 경우 내년 성장률이 1%대에서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경제단체 조사결과에서도 나왔듯이 많은 기업이 내년도 투자 계획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비상경영에 돌입하고 있지만, 대외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뚜렷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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