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그룹 총수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위해 하늘길 오른다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2030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사진은 최태원(오른쪽)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26일 열린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2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2030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력투구에 나서고 있다. 그룹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지원 활동을 펼치다가 이제는 직접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모습이다. 부산엑스포는 61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격과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로 평가받고 있어 '사업 보국' 차원에서 그룹 총수들의 부산엑스포 관련 활동은 향후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5대 그룹 총수 직접 팔 걷었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중 영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차기 총리 유력 후보인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만남을 통해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이재용 부회장이 추석 연휴 기간에 멕시코, 파나마 등 중남미 지역도 방문해 현지 사업장을 점검하는 동시에 현지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유치 활동을 벌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한종희 부회장 등 삼성 주요 경영진이 세계 각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유치 협력을 요청해왔다. 재계에서는 유치전에 이재용 부회장의 탄탄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취업제한에 묶여 공식 행보가 쉽지 않았다. 최근 8·15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정상 경영이 가능해짐에 따라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에 시동을 거는 것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치 활동에 나설 전망이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위원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중 일본을 찾아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날 예정이다. 일본이 2025년 엑스포(오사카)를 개최하는 만큼, 엑스포 선정 배경과 준비 과정 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태원 회장은 다음 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SK의 밤' 행사에도 참석해 유력 정치인 등을 상대로 부산엑스포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최수연 네이버 대표를 만나 글로벌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를 유치전에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그룹 총수들도 유치 지원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베트남 출장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 등 주요 인사를 만나 사업을 논의하면서 부산엑스포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관측된다. 신동빈 회장은 다음 달 중소기업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해 독일과 미국에서 진행되는 '롯데·대한민국 브랜드 엑스포'에도 참여해 부산엑스포 홍보맨을 자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이달 중 유럽·미국 등을 방문해 주요 인사들에게 부산의 경쟁력을 설명할 전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곧 폴란드로 떠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5대 그룹 총수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그룹별 주요 계열사 CEO와 다른 그룹 총수들 역시 조만간 '부산 띄우기'를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5대 그룹 총수들은 해외 출장길에 올라 현지 주요 인사들을 만나며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당부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더팩트 DB |
◆ 유치 지원 전력투구 이유는?
그룹 총수들이 부산엑스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건 유치에 성공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부산엑스포의 생산·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사업비의 12배가 넘는 61조 원에 달한다. 고용 창출 효과도 50만 명에 이른다. 또 엑스포가 열리는 6개월 동안 5050만 명의 방문객이 찾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은 엑스포 기간 내내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엑스포는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국제행사로 불리며, '등록엑스포'와 '인정엑스포'로 나뉜다.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가 있었지만 모두 규모와 위상 면에서 한 단계 아래인 '인정엑스포'였다. 현재까지 월드컵과 올림픽, 등록엑스포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 부산에서 등록엑스포를 개최할 경우 세대 3대 이벤트를 모두 치른 일곱 번째 국가가 되면서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욱더 높아질 수 있다.
기업들은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국가 위상 제고를 위해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에 역량을 집중한다. 주요 그룹을 관통하는 기업가 정신인 '사업 보국'(기업 활동으로 나라에 보답한다)의 일환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올림픽 등도 당시 경쟁국에 비해 열세라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기업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힘입어 역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엑스포 개최지는 세 차례의 경쟁 프리젠테이션, 2023년 초 현지 실사를 거쳐 2023년 말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우선 정부 대표단은 공식 절차로 오는 7일 BIE에 유치 계획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재계는 유치 계획서 제출 이후 그룹 총수들의 부산엑스포 관련 활동 소식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2차 회의에서 "유치 계획서를 제출하고 나면 이제는 '실행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며 "남은 세 차례의 경쟁 PT와 내년 현장실사·국제심포지엄 등 계획한 일정이 차질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가 '오일 머니'를 앞세워 중동과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를 집중 공략, 지지 국가 면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 일가의 물량 공세를 막기 위해 'K 기업'이 각각의 콘텐츠와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추격하는 모양새다.
기업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심정으로 유치전에 돌입한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일부 국가가 저희 경쟁국을 지지 선언한 것 때문에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게 비밀투표다. 그래서 지금 지지 선언을 했다고 해서 그게 꼭 그대로 표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민관이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면 마지막 결승선에는 저희가 먼저 들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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