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물가·미국 '빅 스텝' 부담…총재 공석, 경기 하강 우려에 동결 전망도
오는 14일 사상 초유로 한국은행 총재가 공석인 상황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더팩트 DB |
[더팩트|한예주 기자] 오는 1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상 초유로 한국은행 총재가 공석인 상황에서 결정하게 되는 기준금리인 가운데, 금리인상 압력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자칫 적기에 통화정책 운용을 제대로 못하는 실책을 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1일 한은에 따르면 오는 14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회의가 진행된다. 이주열 전 한은 총재 임기가 지난달 31일 종료됐지만 이창용 차기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이 오는 19일로 결정되면서 이번 금통위는 총재 공백 상황에서 치러지게 됐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 열리는 금통위는 총재 없이 주상영 금통위원이 의장을 대행해 주관한다. 한은이 총재없이 금통위를 여는 것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직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이 다수결로 금리 인상 혹은 동결 여부를 결정한다.
금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과 올 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준 금리를 1.25%까지 끌어올렸다. 추가 인상은 2분기(4~5월)로 넘겨 놓은 상태다.
그간 시장 분위기는 4월은 건너뛰고 5월에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쪽이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기류는 확연히 달라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미 중앙은행의 매파적 쏠림 등이 3각 파고가 돼 우리 경제를 덮쳤기 때문이다.
특히, 5일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 쇼크는 결정타가 됐다. 이날 한은은 예정에 없던 물가상황점검회의까지 열어 당분간 4%대를 유지하고 올해 연간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인 3.1%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 연준의 이른바 '빅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커진 점도 변수다. 현실화된다면 미국 기준금리는 0.75~1.00%로 '제로(0)금리' 시대가 막을 내린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선제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미국 기준금리보다 높아 그동안 여유가 있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한은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비슷한 수준만 돼도 기축통화인 달러로 몰려들게 뻔하다.
달러가치 상승과 원화가치 하락에 이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우려 등을 감안하면 한은은 연준의 긴축 속도에 보폭을 맞춰야 한다. 한국이 미국 금리 인상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31억5000만 달러가량 순유출될 것이란 게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미 중앙은행의 매파적 쏠림, 과도한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4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모습. /더팩트 DB |
새 정부와의 정책 공조 측면에서 금통위의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관측도 있다. 앞서 6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물가를 포함한 민생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지시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이달 금통위가 금리 인상이라는 강수를 둘 수 있다는 전망이 세를 얻는 상황이다.
다만, 대외 악재로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는 점은 부담이다. 특히 급등하는 국채금리에 기름을 부으며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실제 이날 3년물 국채금리는 2.99%, 5년물과 10년물도 각각 3.1%, 3.17%로 마감해 또다시 연중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이런 이유로 이달 대신 5월 인상을 점치는 신중론도 여전하다.
이창용 후보자가 총재로 선임돼도 막상 금통위원들과 통화정책방향에 대해 소통을 나누고 공감대를 이끌어야 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금리 인상 시점이 하반기로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4%대 물가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큰 시점에 한은이 기준금리 결정에 머뭇거릴수록 통화정책 역사상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요 측면의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진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당분간 물가 오름세는 지속될 전망"이라며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미국의 공격적인 긴축으로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4월보다는 5월 인상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hyj@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