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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강추위에도 줄선다"…롤렉스 '오픈런 알바' 직접 해보니
입력: 2022.02.01 00:00 / 수정: 2022.02.01 00:00

명품 위해 노숙하는 소비자들…'리셀' 통한 차액 수 십만 원부터 수 천만 원까지

지난달 23일 오전 6시 50분, 해가 뜨기도 전에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은 롤렉스 오픈런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신정인 인턴기자
지난달 23일 오전 6시 50분, 해가 뜨기도 전에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은 롤렉스 오픈런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신정인 인턴기자

[더팩트|신정인 인턴기자] "23일(일) 영등포 롤렉스. 새벽 5시30분~9시30분 교대. 페이 5만원. 가능하신 분 개인톡 주세요."

지난달 22일 저녁, '줄서기 대행' 오픈카톡방에 입장하자 이 같은 구인 메시지가 연이어 올라왔다. 롤렉스 인기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 대신 백화점 개점 전까지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이른바 '오픈런' 알바였다.

오픈카톡방 방장에게 개인 메시지로 "롤렉스 하겠다"고 보내자 방장은 간략하게 알바 방법을 안내한 뒤 "내일 꼭 나오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곧이어 방장과 오픈런 의뢰인이 포함된 새로운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최근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하루빨리 제품을 확보하기 위한 오픈런 대란이 한창이다. 롤렉스의 경우 지점별로 1인당 구매 가능 개수를 제한하면서 희소성이 더욱 짙어져 오픈런이나 리셀을 통하지 않고는 구매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일부 소비자들은 대행 알바를 고용해 대기줄 앞자리 사수에 나섰다. 새로운 알바 자리로 떠오른 '오픈런 대행 알바'를 <더팩트> 인턴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왼쪽부터 오픈런 대기 번호 1~9번의 모습. 앞순서일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긴 만큼 침낭이나 텐트를 챙겨와 자는 사람이 많다. 노란색 동그라미 친 곳이 기자의 대기 자리. /신정인 인턴기자
왼쪽부터 오픈런 대기 번호 1~9번의 모습. 앞순서일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긴 만큼 침낭이나 텐트를 챙겨와 자는 사람이 많다. 노란색 동그라미 친 곳이 기자의 대기 자리. /신정인 인턴기자

23일 오전 5시 11분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의뢰인과의 약속 시각보다 20분 일찍 도착했으나 이미 9명이 줄지어있었다. 대부분 롱패딩에 핫팩, 모자, 귀마개 등 방한용품으로 무장했으며, 텐트나 침낭에서 자면서 기다리는 '노숙런'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앞순서 대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대기 번호 1번은 전날 저녁에 온 것으로 추정됐다. 0도 안팎의 추위와 미세먼지도 이들의 열기를 막진 못했다.

기자도 서둘러 단톡방에 도착 인증샷과 대기 번호 10번임을 올리고, 차가운 바닥에 깔고 앉을 신문지와 목도리를 꺼냈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롯본'(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두시간 기다렸는데 허탕 쳤다."

1년째 주말마다 오픈런을 하고 있다는 김모 씨(43·직장인)는 이날 오전 5시 30분쯤 매장 앞에 도착해 이같이 말했다. 고객들은 대기 중인 매장에 어떤 제품이 얼마나 입고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오픈런을 하고도 구매에 실패하는 일이 허다하다.

기자가 오픈런 알바 4시간 동안 서있었던 대기 번호 10번 자리. 집에서 신문지와 담요 두 개, 핫팩 세 개, 마실 것, 간단한 간식거리, 노트북 등을 챙겨갔다. /신정인 인턴기자
기자가 오픈런 알바 4시간 동안 서있었던 대기 번호 10번 자리. 집에서 신문지와 담요 두 개, 핫팩 세 개, 마실 것, 간단한 간식거리, 노트북 등을 챙겨갔다. /신정인 인턴기자

이 때문에 구입 성공의 여부는 순전히 '운'에 달려있다. 다수의 백화점 VIP인 김 씨 역시 입고 정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1년간 오픈런을 통해 산 시계는 8개다.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고객이 시계를 고르는 게 아니라 시계가 고객을 고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오픈런을 하고도 구매에 실패하면 허탈하지 않냐"고 묻자 김 씨는 "고생하다 한 번씩 '성골'을 하면 성취감이 들고 중독성이 생긴다"고 답했다. '성골'이란 백화점 매장에서 제품을 정가에 산다는 은어로, 리셀을 통해 프리미엄(premium)가가 붙은 제품을 구매할시 '피(p)골'이라고 부른다.

김 씨는 "오픈런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잠재적 리셀러'"라며 "매장에 본인이 원하는 제품이 없을 시 차선책으로 다른 인기 제품이라도 구매해 웃돈을 주고 되파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대부분 실착을 위해 사지만 때론 리셀을 하기도 한다"면서 "요새 적금해봤자 금리 얼마 안 되잖냐. 시계 하나 잘 건지면 주식이나 비트코인보다도 훨씬 나은 투자"라고 말했다. 리셀을 통한 차액은 적게는 수 십만 원부터 크게는 수 천만 원에 달한다.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Oyster Perpetual) 41㎜ 옐로우. 1월 26일 기준 롤렉스 권장가격은 780만 원이다.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Oyster Perpetual) 41㎜ 옐로우. 1월 26일 기준 롤렉스 권장가격은 780만 원이다.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실제 김 씨가 착용 중이었던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 41㎜ 옐로우는 출시가가 700만 원대였으나 1년 새 프리미엄이 붙어 리셀 시장에서 2000만~30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에는 백화점 측이 코로나19 확산세와 오픈런 과열 현상을 줄이기 위해 오픈런 인원 제한에 나섰다. 인원수는 지점별로 다르며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롤렉스는 45명까지,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롤렉스는 50명까지 허용 중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고객들은 매장 도착 시각을 앞당겼고 일부 지점에서 오픈런이 더욱 치열해지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5시30분까지 14명이었던 대기 인원은 6시쯤 26명으로 늘었고, 6시50분에 45명이 채워지며 마감됐다. 7시 20분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40대 여성은 "지금 줄 서도 소용없냐"고 반복해서 묻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갔다.

오전 9시가 넘자 곳곳에서 줄서기 대행 알바들이 의뢰인과 대기줄 교대를 시작했다. 이때쯤 기자의 통장에도 오픈런 수당인 5만 원이 입금됐다. 이어 약속 시간인 9시 30분에 맞춰 의뢰인이 도착했고, "고생하셨어요"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교대가 이뤄졌다.

지난달 25일 오전 8시에 찾아간 서울 중국 롯데백화점 본점 롤렉스 오픈런 현장. 대기 장소 앞에 오픈런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있다. /신정인 인턴기자
지난달 25일 오전 8시에 찾아간 서울 중국 롯데백화점 본점 롤렉스 오픈런 현장. 대기 장소 앞에 오픈런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있다. /신정인 인턴기자

오픈런 현장은 줄서기가 전부인 만큼 새치기가 일어나면 종종 싸움으로까지 번진다. 만약 구매 의사가 없는 사람이 오픈런 중인 지인의 대기 줄에 동참하게 될 경우에는 오해 방지를 위해 뒷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오픈런을 수년간 해왔다는 이 씨는 "새치기하는 인원만큼 뒷사람들이 못 사게 되니까 운명이 바뀌는 거다"라며 "때로는 직접 나서서 대기 줄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넘치는 수요에도 명품 브랜드들은 물량을 풀지 않는 걸까.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 브랜드들은 공급 관리를 통해 희소성을 유지한다"며 "단기적인 매출보단 명품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브랜드 가치만 해도 몇 조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이런 브랜드들은 매출을 늘리지 않아도 주식시장을 통해 투자 금액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은희 교수는 현재 과열된 오픈런 현상에 대해 "명품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소비자 스스로) 물질주의 가치관이 바람직한 건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며 "리셀러들은 이런 수익 창출이 자신의 장기적인 재산 형성에 있어서 바람직한 방법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righ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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