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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근의 Biz이코노미] 사퇴가 면죄부?...정몽규 HDC 회장의 '오산'
입력: 2022.01.19 00:00 / 수정: 2022.01.19 00:53

정몽규 회장, '면피용 사퇴' 비판 귀 기울여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임세준 기자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임세준 기자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콘크리트! 콘크리트! 콘크리트! 콘크리트 여기 뚫었냐? 지진 견디라고 해 놓은 거. 너 들락날락 편하려고 건물 척추뼈를 날려? 천장은 뚫어서 계단 내고, 보, 슬라브, 다 잘라먹고? 너 옥상도 잘 만들어 놨더라? 나무도 심고. 옥상은 설계할 때 하중을 적게 잡아, 뭐 있을 게 없으니까. 근데 거기에 흙을 1m씩 쌓아? 너 같은 XX들 때문에 삼풍이 무너진 거야!"

지난 2018년 종영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건축구조기술사인 박동훈 역을 맡은 배우 이선균의 대사다. 드라마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이 대사를 보면 박동훈이라는 인물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물주의 건축물이 불법 설계, 부실시공, 날림 공사의 결과물이란 걸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일으킨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를 보고 있자니 드라마 속 대사가 떠올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상식 밖의 참사로 지금까지 6명의 실종자 가운데 1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남은 5명은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회사 수장인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여기서 언급한 '회장'이란, 그룹 회장직이 아닌 그룹 내 건설계열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꼭대기다. 다시 말해 '대주주'이자 그룹 회장으로서 자리는 지키겠다는 얘기다.

전 사적 차원의 재발 방지책 마련을 공언하고,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것까지 7개월 전인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참사 당시 때와 조금의 차이도 없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고는 계열사 회장직을 버리겠다는 게 전부다.

기자회견 직후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광주시장과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다수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제히 "책임 회피 위한 '면피용 사퇴'"라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정 회장이 '사퇴 카드'를 꺼내든 정확한 속내까지야 알 수 없겠지만, 그룹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결연한 자세를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방향을 단단히 잘못잡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HDC 현대산업개발 본사 앞 광장에서 정몽규 회장과 건설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임세준 기자
안전사회시민연대는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HDC 현대산업개발 본사 앞 광장에서 정몽규 회장과 건설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임세준 기자

앞서 학동 참사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는 단순히 회장 명패를 버리는 제스처만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 참사다. 이미 사고가 발생한 주상복합 39층 콘크리트 타설 공정 과정에서 지지대가 모두 제거됐다는 증언이 나왔고, 경찰은 콘크리트 타설 장비 업체의 불법 대리 시공 정황을 포착해 재하도급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수사를 통해 각종 불법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면, HDC산업개발은 반드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정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번 사고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한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이 송두리째 날아간 사람들, '아이파크'라는 브랜드만 믿고 입주한 사람들, 'HDH현대산업개발'이라는 일터에서 사명을 갖고 일하는 수많은 임직원들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 회장 스스로 언급했듯이 연이어 발생한 두 번의 큰 사고로 아파트 안전은 물론 회사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한 번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아이파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전국 각지 아파트 단지에서 '단지명이라도 바꾸자'는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잘못한 것에 대한 사과는 '책임'이 아닌 '당연한 행위'일 뿐이다. 지난 1976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개발로 시작해 '아이파크' 브랜드를 가진 메이저 건설사로 자리매김해 온 역사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참담한 현실과 마주하기 싫다면, '뒷맛'이 남지 않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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