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주식 873만2290주 가운데 123만2299주(3.29%)를 칼라일그룹에 매각했다. 사진은 정의선 회장이 CES 2022에서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위로 등장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
정몽구·정의선 부자, 글로비스 지분 10% 칼라일에 매각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그룹에 매각한 배경과 관련해 현대차 측은 "주주가치 제고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회장이 보유 중인 873만2290주 가운데 123만2299주(3.29%),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251만7701주(6.71%) 전량을 전날(5일) 시간 외 매매로 칼라일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 리미티드'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처분 단가는 16만3000원으로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은 각각 20008억 원, 4103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
이번 주식 매매 거래로 최대주주인 정의선 회장의 지분은 기존 23.29%에서 19.99%로 낮아졌고, 정몽구 명예회장은 주주 명단에서 빠졌다.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확보하게 된 칼라일은 정의선 회장과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에이에스(11%)에 이어 3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칼라일이 현대차그룹의 대표적인 '우군'으로 평가받는 만큼 정의선 회장의 우호 지분율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사들인 칼라일그룹은 현대차그룹과 수년째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은 지난 2019년 칼라일그룹의 초청 단독대담에 참석해 미래 경영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정의선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 방향과 관련해 "투자자들과 현대차그룹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최대한 많은 투자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여러 옵션을 검토해 수익을 최대화해 함께 나눈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의선 회장(왼쪽)은 지난 2019년 칼라일그룹의 초청 단독대담에 참석해 고객 및 자본시장 주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대담형식으로 소통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함으로써 공정거래법 규제로부터 벗어나게 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 20%)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 기존 규제 대상 범위를 지분율 20% 이상으로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 매각 배경에 대해 "이번 지분 매각은 현대글로비스의 주주가치를 높이고,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주주의 지분매각으로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된 잠재적 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되고, 소액주주들이 우려했던 대주주 지분매각 관련 오버행 이슈를 완전히 해소했다"라며 "지분 인수자가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현대글로비스의 장기 비전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번 블록딜을 통해 현대글로비스의 잠재적 리스크였던 오버행 이슈가 해소된 것으로 판단되며 실적 개선에 따른 주가 재평가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번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6000억 원의 현금과 상장을 추진 중인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 추가로 확보하는 현금을 기반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3월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고 현대차와 기아차로 이어지는 단순 구조로 전환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주주 가치 훼손 등을 이유로 잇달아 반대 의견을 권고하면서 같은 해 8월 계획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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