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3일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롯데 제공 |
롯데그룹, 탄생 100주년 맞아 신격호 명예회장 삶 소개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일본에서 껌을 팔기 시작한 지 70년 만에 한국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키워낸 '신화'의 주인공 신격호 명예회장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3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롯데 안팎에서 그의 도전 정신과 국격을 높이기 위한 노력 등을 기리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인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 회고록을 출간하며 헌정사를 통해 창업주의 기업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청년 신격호는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 제공 |
1962년 국교 수립 전 한국에 도착한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 제공 |
◆ 日서 성공한 신격호, '잘사는 조국' 떠올리며 韓 진출
지난해 1월 19일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등본상 생년월일은 1922년 10월 4일이지만, 실제 생일은 1921년 11월 3일이다. 그는 일제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부친의 남다른 교육열 덕에 언양소학교, 울산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목양 지도기술원으로 일했다. 이후 청년 신격호는 보다 큰 세상에서 꿈을 펼치겠다는 의지에 따라 1941년 부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우유배달원이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고객을 유치, 우유 대리점 매출을 늘렸고, 증가한 배달 물량을 맞추기 위해 다른 배달원을 직접 고용할 만큼 탁월한 경영 능력을 일찌감치 드러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사업 자금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며, 화장품 사업 등을 거쳐 1948년 롯데를 설립한다. 롯데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고학생 시절 읽었던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여인처럼 모든 제품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라는 의미였다.
롯데의 뿌리는 '껌'이다. 껌이라는 단일 품목으로 사업을 시작한 롯데는 초콜릿, 캔디 등으로 분야를 확대하며 불과 20여 년 만에 일본 굴지의 종합제과업체로 성장했다. 성공 비결로는 약제사를 고용하고 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해외 기업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최상의 품질이 꼽힌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조국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한 기업인으로 기억된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 귀화의 유혹 등을 이겨낸 그는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소망을 키워나갔다. 출발은 매끄럽지 않았다. 1965년, 한일 수교가 이뤄지자 한국으로 향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정부로부터 제철업 진출을 제안받고 구체적인 사업 준비에 들어갔지만, 갑자기 정부가 직접 제철업을 추진하겠다고 전하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거액을 들여 준비한 제철 관련 자료를 대신 제철업을 준비하던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에게 조건 없이 제공했다.
이후 계획을 변경해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국내에 처음 진출한 신격호 회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반도호텔 자리에 새로운 호텔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큰 모험이었으나, 신격호 회장은 한술 더 떠 세계적 호텔 건립 이상의 목표를 세운다. 300~400실 규모면 일류 호텔 소리를 듣던 1970년대 초에 40층, 1000실 규모의 호텔에 백화점과 오피스타운까지 동시에 건설하는 전무후무한 복합개발을 구상한 것이다. 이로써 서울 소공동에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이 지어진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관광보국 신념에 따른 것이다. 한국이 관광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만큼, 관광을 통해 국력을 키우고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초고층 타워 롯데월드타워의 탄생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됐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다"며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새로운 한국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고 직접 롯데월드타워 건설을 진두지휘한 끝에 2017년 4월 그 꿈을 이뤘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에 참석하고 있다. /롯데 제공 |
신격호 명예회장이 1991년 5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식에 참석하고 있다. /롯데 제공 |
◆ 장학 사업 남다른 관심…외국인 근로자 지원에도 적극적
신격호 명예회장은 장학 사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우수한 자질이 있음에도 가난한 환경으로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사랑의 온정을 베풀어 학업에 전념하도록 하고, 성취한 학문적 지식을 국가와 인류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장학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히며 삼남장학회를 설립했다. 삼남장학회는 1996년 롯데장학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기초과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지원을 이어나가고 있다. 2020년 기준 지원 장학금은 약 800억 원, 수혜자는 5만 명에 달한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94년 외국인 근로자를 돕기 위한 롯데복지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청년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일구며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외국인 근로자들의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지원에 적극 나섰다. 현재 롯데복지재단은 산업재해로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지원과 외국인 근로자 상담소·쉼터 제공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사기 등 피해 지원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재단은 보육원, 경로원, 장애인 자활시설, 소년소녀 가장 학생, 결식 학생 등으로 지원 대상을 넓혀가고 있으며, 2020년 기준 10만여 명에게 165억 원을 지원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활동했던 한인 스포츠 선수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인 프로복서 홍수환 선수, '불멸의 승부사'로 불린 바둑기사 조치훈 9단,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인 장훈 선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홍수환 선수는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 임직원들을 모두 사무실로 모이게 해 내 주먹을 보여주며 '이 작은 손으로 일본을 이겼다'고 자랑을 하셨다"며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공장 점퍼 차림이었고, 집무실 정면에 소가 논을 일구는 한국 민속화가 걸려있었던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95년 한국 관광사업 진흥에 이바지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롯데 제공 |
신격호 명예회장이 2011년 롯데월드타워 부지를 방문해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롯데 제공 |
◆ 롯데 신동빈 "'신격호 정신' 새겨 사회적 역할 다할 것"
롯데그룹은 신격호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도전 정신과 열정을 기리고, 기업이 조국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뜻을 되새기기 위해 롯데월드타워에 흉상을 설치하고, 기념관을 만들었다. 또 신격호 명예회장의 삶과 철학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자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롯데벤처스는 '1세대 글로벌 청년 창업가'라고 할 수 있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도전 정신을 잇고자 우수한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날 선발된 스타트업 13개사를 대상으로 총 5억 원 규모의 지원금을 수여하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단법인 한국유통학회도 이날 '제3회 상전유통학술상' 시상식을 열고, 유통학 관련 연구를 통해 유통 정책과 산업 발전에 공헌한 학자들을 선발, 상금을 수여한다. 이 학술상은 지난 2019년 12월 한국 유통 산업의 선구자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공적을 기리고, 우수한 유통학 연구자를 발굴 및 양성하기 위해 제정됐으며 롯데그룹이 후원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신격호 명예회장을 기리는 기념음악회도 진행될 예정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1일 진행된 '신격호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신격호 명예회장이 중시했던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언급하며 새로운 롯데로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은 대한민국이 부강해지고 우리 국민이 잘살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사회와 이웃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만들고자 노력하셨다"며 "롯데는 더 많은 고객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가는 길에, 명예회장께서 몸소 실천하신 도전과 열정의 DNA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신격호 명예회장의 정신을 깊이 새기면서, 모두의 의지를 모아 미래의 롯데를 함께 만들어나가자"고 덧붙였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