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최종 의견서를 5일 공개한 가운데 양사가 의견서 내용에 대해 첨예한 견해차를 보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더팩트 DB |
업계 "LG·SK '배터리 분쟁' 합의 성사 불투명"
[더팩트 | 서재근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양사가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에서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애초 소송의 목적과 관련, 첨예한 견해차를 보인 양사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5일 공개한 '배터리 분쟁' 소송 관련 최종 의견서를 두고도 상반된 주장을 펴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 LG엔솔 "영업비밀 침해, 명백히 인정" vs SK이노 "ITC, 사실관계 검증 제대로 안 해"
ITC는 이날 최종 의견서를 통해 "예비 결정 검토 결과,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조기패소판결을 유지한다"며 LG에너지솔루션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11개 카테고리·22개 영업비밀을 구제 명령 대상으로 삼았다.
11개 카테고리는 △전체 공정 △원자재부품명세서(BOM) 정보 △선분산 슬러리 △음극·양극 믹싱 및 레시피 △더블 레이어 코팅 △배터리 파우치 실링 △지그 포메이션 △양극 포일 △전해질 △SOC추정 △드림 코스트 등이다.
ITC 측은 96페이지에 달하는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라며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면, 관련 기술·정보를 독자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 걸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ITC는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일부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해 10년간 제한적 수입금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다만 고객사들에 돌아갈 피해를 우려해 포드 공급 제품에 4년, 폭스바겐에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ITC 측의 의견서 공개와 관련해 LG에너지솔루션은 "개발과 생산, 영업 등 배터리 전 영역에 걸친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명백히 인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ITC가 SK이노베이션의 고위층이 개입, 조직적이고 전사적으로 증거인멸을 자행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배터리 소송의 경우 천문학적인 합의금뿐만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기술력 등 민감한 사안이 얽히고설켜 있어 양사 간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사 제공 |
반면, SK이노베이션 측은 입장자료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이 주장하는 영업비밀에 대해 ITC가 검증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은 ITC 결정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대통령 검토절차에서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거부권 행사를 강력하게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982년부터 준비해 온 독자적인 배터리 기술개발 노력과 그 실체를 제대로 심리조차 받지 못한 미 ITC의 결정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양사는 배터리 개발, 제조방식이 달라 영업비밀 자체가 필요 없고, 이미 40여 면 독자개발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의 전기차 '블루온', 최초 양산 전기차 '레이'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ITC가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에 대한 실체적인 검증이 없이 소송 절차적인 흠결을 근거로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ITC는 영업비밀 침해라고 결정하면서도 여전히 침해 되었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다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영업비밀 침해를 명분으로 소송을 제기한 LG에너지솔루션은 침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ITC 의견서 어디에도 이번 사안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증거는 실시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이 마지못해 줄인 22건의 영업비밀을 지정하면서도 그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개별 수입 물품이 실제 수입금지 대상에 해당될지에 관해서는 별도 승인을 받도록 명한 상황"이라며 "이런 모호한 결정으로 정당한 수입조차 사실상 차단되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저하, 시장 내 부당한 경쟁제한, 전기차 배터리 공급지연으로 인한 탄소 배출에 따른 환경 오염 등 심각한 경제적, 환경적 해악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배터리 소송 목적을 두고 LG에너지솔루션은 "침해된 영업비밀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받고, 지적재산권을 계속해서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반면, SK이노베이션 측은 "사실상 SK의 배터리 사업을 접게 하려는 것"이라며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팩트 DB |
◆ 업계 "소송 목적 인식차 너무 크다…합의 쉽지 않을 것"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극명한 인식차를 고려할 때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소송을 제기한 배경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을 흔들려는 것이 아니라 침해된 영업비밀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받고, 지적재산권을 계속해서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성실한 보상안 제시를 전제로 합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SK이노베이션 측이 사안을 장기화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 요구를 더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 측은 LG에너지솔루션 측이 제시한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근거로 이번 소송이 사실상 SK의 배터리 사업을 접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아직 양사가 공식적으로 합의금 규모에 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제시한 합의금 규모가 3조 원 안팎 수준일 것으로 전망한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수조 원에 달하는 성과를 내려면 수십 년이 걸려야 가능하다"라며 "이를 한 번에 달라는 요구는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시장의 극심한 침체,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수요 감소 등의 더블딥으로 인해 3조 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하며 창립 이래 사상 최악의 경영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같은 경영 성과로 재무구조 악화와 신용등급 강등까지 겹치면서 투자 재원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수조 원의 합의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게 SK이노베이션 측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ITC 소송에서 고배를 마신 SK이노베이션이 합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은 맞다"라면서 "그러나 사업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의 합의금을 내놓기란, SK이노베이션으로서도 쉽지 않아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국무총리까지 상호 합의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지만, 합의금과 회사 기술력 등 민감한 사안이 얽히고설켜 있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양사 간 이해관계에 간극을 줄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