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인 이재영(왼쪽)·다영(오른쪽)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흥국생명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남용희 기자 |
흥국생명, 뒤늦게 "이재영·이다영 무기한 출전정지"
[더팩트│황원영 기자]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인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학폭) 가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흥국생명과 모기업 태광그룹이 뭇매를 맞고 있다.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해당 선수들이 이를 인정하면서 그 충격이 일파만파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구단이 징계를 미루며 머뭇거리는 사이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공분은 커져가고 있다.
흥국생명은 15일 학폭 논란을 일으킨 이재영·이다영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폭로가 나온 지 5일이 지나서야 나온 징계 방안이다.
앞서 지난 10일 이재영·이다영 선수의 학폭 피해자가 이를 고발하는 글을 올리면서 공론화됐다. 해당 선수들은 짧은 사과문만 발표한 채 팀 숙소를 떠났다.
그간 흥국생명은 미온적이거나 오히려 선수들을 감싸는 태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흥국생명은 학폭 논란 이후 "현재 두 선수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징계라는 것도 선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 내려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심리치료 등으로 가해자인 두 선수의 회복을 돕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선수 보호라는 명목 아래 학폭을 용인하는 모습은 '2차 가해'와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구단이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이 추가 폭로가 나왔다. 피해자는 어린 시절 이들을 피해 도망간 사실을 털어놓으며 "너희 전재산을 다 줘도 피해자들의 상처는 하나도 안 없어진다"고 분노했다.
또, '징계도 선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상태가 됐을 때 내려야 한다'는 흥국생명 측 입장에 대해 "이런 식으로 조용히 잠잠해지는 걸 기다리는 거라면 그때의 일들을 하나씩 추가 폭로할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해당 사건과 관련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그 중 "여자 배구 선수 학교폭력 사태 진상규명 및 엄정 대응 촉구" 청원에는 이날 오후 1시 35분 기준 9만8260만명이 동참했다.
흥국생명은 15일 학폭 논란을 일으킨 이재영·이다영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댓글 등을 통해 불매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온라인 뉴스 댓글 갈무리 |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에 나서는 등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흥국생명은 부랴부랴 쌍둥이 자매에 대한 징계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학폭 선수 징계에 대해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스타 선수라면 폭력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는 비판이다.
그간 흥국생명은 구단 운영을 통해 여자배구단 운영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광고·홍보 효과를 누렸다. 흥국생명은 현재 17승 6패(시즌 50)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2020-2021시즌 V리그 개막 이후 일부 경기 케이블TV 시청률이 2%대를 넘어서며 V리그 사상 정규리그 최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 중 학폭 논란을 일으킨 두 선수는 국가대표에 매번 선발될 정도로 특출한 기량과 화려한 쇼맨십을 보유한 간판스타다. 흥국생명은 이재영과 이다영에게 각각 6억 원, 4억 원의 연봉을 지급했다.
이에 투자금과 V리그 흥행성적이 아까워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 뉴스 댓글이나 커뮤니티 등에는 소비자들의 성난 반응이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흥국생명 보험 불매운동 해야 한다. 선수 관리도 못 하는 회사가 무슨 보험이냐", "흥국생명과 거래하지 않겠다. 학폭에 이렇게 대응하는 회사가 고객은 얼마나 우습게 알겠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선수라는 이유로 감싸는 비윤리적인 기업인데 고객을 사람 취급하겠나"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보험을 해지하겠다는 글도 줄을 이었다. 보험 소비자들은 "흥국생명 보험 해지했다. 다들 흥국생명 보험 해지에 동참하자", "내일 해지한다", "흥국생명 보험에 절대 가입하지 않겠다" 등 적극적인 불매운동 동참을 독려하기도 했다.
학폭 논란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경우 타격이 클 전망이다. 흥국생명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순이익 711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1214억 원 대비 41.4% 대폭 감소한 수치다. 코로나19로 TM(텔레마케팅) 채널 신규 유입이 악화됐고 온라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못했다. 특히 흥국생명의 TM채널 초회보험료는 지난해 3분기 64억 원으로 전년(160억 원) 대비 64.4% 급감했다. 생명보험사 중 가장 큰 감소폭이다.
이에 흥국생명은 최근 박춘원 신임대표를 선임하고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올해 적극적으로 신규 가입자를 늘리고,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초부터 불매운동이 번지면서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이다.
흥국생명뿐 아니라 태광그룹 금융 계열사인 흥국증권, 흥국화재,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등에도 불똥이 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일부 소비자들은 "흥국생명뿐 아니라 태광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라며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구단 측에서 담당하는 문제인 만큼 섣불리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면서도 "(불매운동이 이어질 경우) 신규 계약에 대한 타격은 우려할 문제"라고 말했다.
won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