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생명 미지급금 반환 청구 소송서 원고 승소 판결[더팩트│황원영 기자] 8000억 원 규모 즉시연금보험(즉시연금) 미지급금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이 줄이어 패소했다. 선고를 앞둔 생보사 중 미지급금 규모가 수천~수백억에 달하는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은 좌불안석이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4단독 재판부(판사 명재권)는 동양생명 즉시연금 가입자 12명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미지급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에게 미지급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20일 판결했다.
이번 선고는 삼성생명 등 6개 생명보험사 대상으로 공동소송을 진행하는 즉시연금 공동소송 재판에서 원고가 승소한 두 번째 판결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즉시연금 가입자 2명이 미래에셋생명을 상대로 낸 미지급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미지급한 보험금과 지연이자를 합쳐 약 200만 원을 가입자에게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미래에셋생명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미래에셋생명에 이어 동양생명까지 줄줄이 패소하면서 삼성·교보·한화·KB생명 등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생보사들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이 2018년에 파악한 즉시연금 미지급금 분쟁 규모는 8000억 원, 고객 수는 16만 명에 달한다. 이 중에선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4300억 원(5만5000명)으로 가장 많다. 한화생명은 850억 원(2만5000명), 교보생명은 700억 원(1만5000명) 규모로 파악됐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일시에 낸 보험료를 투자해 얻은 수익으로 매달 연금을 지급하고 만기가 돌아오면 전액 돌려주는 상품이다. 문제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매달 지급하는 연금에서 조금씩 돈을 뗀 뒤, 이 돈을 모아 만기에 지급하도록 상품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이에 2018년 금융소비자연맹은 생보사들이 즉시연금 가입자들에게 보험금을 임의로 덜 지급했다며 가입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진행했다. 가입자들은 보험사가 약관에 내용을 명시하지 않고 가입자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하고 연금 월액을 산정했다며 공제한 부분에 대해 보험사가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재판의 쟁점은 해당 사실을 보험사가 고객에게 알려줬느냐다.
동양생명의 경우 보험 약관에 만기환급금 산정 방식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게 패소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래에셋생명 보험 약관에는 '매달 연금을 지급함에 있어 만기 환급금을 고려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만기 환급금을 고려한'이라는 약관의 문구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문구로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연금 계산 방식을 충분히 설명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한화생명 역시 미래에셋생명과 유사하게 '월 연금지급액은 만기환급금을 고려한 금액으로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판례를 고려하면 재판부가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결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생명의 경우 '연금계약 적립액은 이 보험의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 금액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산출방법서'의 내용을 두고 날 선 공방이 오갈 전망이다.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기초 서류인 '약관과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매달 연금지급 시점에 만기환급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가입자측은 "산출방법을 약관에 명시하지 않았고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며 맞서고 있다. 산출방법서는 약관처럼 고객에게 일일이 제공되지 않지만 고객이 요청할 경우 지급된다.
앞서 지난해 9월 같은 사안을 다룬 수원지방법원의 판결에서는 원고 가입자들이 농협생명에 패소했다. 이 재판의 차이는 약관에 적힌 문구다. 농협생명의 경우 다른 생보사와 달리 약관에 연금액 차감에 관한 설명을 담았다.
미래에셋생명이 항소한 만큼 동양생명도 판결에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즉시연금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소비자의 소멸시효가 도래하며 미지급액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며 "보험사들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미지급연금을 자발적으로 지급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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